돌아가는 국제 정세와 일본의 지칠줄 모르는 야욕을 지켜 보면서, 우리의 어떠한 울분이나 다소 무모한(?) 반응이라 할지라도 우리들 각각의 대처는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권이 바뀔 때나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할 때면, 어김없이 드러나는 그들의 전략을 대하는 우리 블로거의 글들도 이젠 대체로 다소 진중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벌써 독도 기념 우표와 연대별 역사, 지형과 보유자원에 이어, 오늘은 우리 독도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냈던 "독도 의용수비대"의 활동에 대해 살펴 보려고 합니다. 아래의 내용은 "한국외대 독도연구회"와 동북아 역사재단에서 운영하는 "사이버독도역사관"의 글들을 종합하여 다듬고 정리한 것입니다.
사이버독도역사관의 경우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도 소개되고 있으며, 고지도와 관련 문헌, 학술간행문, 학술논문을 비롯하여 독도 관련 사진과 영상, 그리고 역사까지 자세하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또한 관련 뉴스나 견문록, 자유게시판을 통하여 참여도 할 수 있으므로 관심있는 분들은 직접 방문하실 것을 권합니다.
독도 의용수비대의 활동 내역(요약 정리)
1952년 1월 18일 : 정부에서 주권선언
1952년 8월 10일 : 2회에 걸쳐 일본측 불법 영토비 설치(즉시 제거)
1953년 4월 20일 : 독도 의용수비대 조직, 경비 개시(수비대장 홍순칠 임명)
1953년 6월 24일 :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 출몰, 귀향 조치
1953년 7월 12일 : 일본 해상 보안청 순시선 출현, 의용수비대의 발포, 격퇴
1953년 8월 5일 : 대한민국 영토비 건립
1954년 8월 5일 :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침입, 총격전 격퇴
1955년 11월 21일 :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3척 침입, 항공기 1대 발포, 격퇴
1956년 4월 8일 : 경비임무 전환(민간수비에서 → 국립경찰로)
1966년 4월 12일 : 독도 의용수비대장 홍순칠, 근무 공로훈장 수여
자신들의 가족과 꿈을 포기한 채 목숨을 걸고, 3년 8개월 동안이나 독도를 사수해온 독도의용수비대의 대원들은 모두 33명이었습니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까지 계속 독도를 주장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6.25 한국전쟁이 끝난 후, 그 혼란 속에서 일본의 독도 침범이 잦아졌습니다. 일본은 1953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3차례에 걸쳐 미군기를 도용하며 독도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48년 6월 30일에 미군의 폭격연습 과정에서 희생된 우리 어부들의 위령비까지 파괴하고, 일본의 영토 표지를 하는 등 불법 행위를 자행합니다.
홍순칠 대장을 중심으로 한 순수 민간조직
이에 1953년 4월 20일, 홍순칠 대장을 비롯하여 유원식, 정원도, 김병열, 양봉준, 이규현, 이필영, 김영호, 서기종 등 33 명이 중심이 되어 순수 "민간조직"인 '의용 수비대'를 결성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국전쟁의 참전 경험이 있는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었으며, 무단으로 상륙한 일본인들을 모두 축출하였습니다.
또한 그런 과정에서 불법으로 자행된 일본의 '영토 표지'를 철거하였고, 일본 순시선과도 여러 차례의 총격전을 벌여야 했습니다. 1953년 8월 5일에는 동도의 암벽에 '한국령'이라 새겨 넣음으로써, 독도 수비의 결의를 새롭게 다지기도 하였습니다.
의용수비대는 2 개의 전투분대와 보급대, 수송대, 후반지원대 등으로 편성되었습니다. 이들은 0.5 t의 보트 한 척과 미군과 정부에서 구입한 박격포, 직사포, 경기관총 각 1 정, M1 소총 20 정과 실탄 2 만 4천 발로 무장하였습니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오가며, 이 2 개 분대가 한 달씩 교대로 근무하였습니다. 독도 근해에 나타난 일본 순시선을 10여 차례나 물리쳤으며, 이들의 활약은 일본이 한국정부에 수차례의 항의 각서를 보낼 정도로 용맹을 떨쳤습니다.
무기와 식량의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던 최악의 조건
각자가 무기를 모았으며, 집에서 식량과 땔감도 준비하였습니다. 3-4 일씩, 굶는 일이 예사였을 만큼, 악조건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보급선의 왕래가 쉽지 않아 빗물을 받아 마셔야 했으며, 독도의 해초로 연명할 때도 있었습니다.
일본 전투기가 공격해 올 때에는, 울릉도에서 실어온 큰 나무에 검은 칠을 해서 만든 '대포'의 위장술로 물리쳤습니다. 의약품도 턱없이 부족했으며, 여름에는 '깔다구'라는 곤충에게 시달리기도 하였습니다.
의용수비대의 이런 생활은, 1956년 4월 8일 울릉 경찰에게 수비 임무를 인계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인계 후에도 독도 방파제 설치를 정부에 건의하기도 하였고, 독도 지키는 일도 역시 꾸준히 계속하였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방위 활동과 업적이 인정되어, 1966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홍순칠 대장이 공로훈장을, 대원들이 방위포장을 각각 수여받았습니다. 1996년 4월, 이들의 공로가 재조명되어, 고 홍순칠 대장에게는 보국훈장 삼일장을, 나머지 33명의 대원들에게는 광복장이 수여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독도가 우리 땅으로, 우리 역사로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역사의 주인인 우리 민중들의 주인의식에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혹시라도 정부가 지켜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바로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안용복 개인이 그러했으며, 1953년에 조직되었던 바로 위 "독도 의용수비대"가 그러하였습니다. 일본의 독도 빼앗기 작업이 지겹도록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또다른 의용수비대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 개개인 각자의 역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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