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 곧 성탄일을 사흘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곳저곳 길거리에서조차 흥겨운 캐롤송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 맘 때 즈음이면 그런 즐거움과 호사도 누렸었는데, 세계적인 경제공황과 금융위기를 맞고 있는 상태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여서인지 올해의 거리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오늘의 주제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저작권에 관한 인식의 변화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2000여 년전 이 즈음, 이 땅에 오셨던 성인을 기리는 날, 즉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을 기리고자 정한 날이, 바로 며칠 뒤에 올 성탄일입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분 가운데에도 예수와 관련한 종교를 가진 분도 계실 것이고, 그 와는 전혀 다른 종교를 가진 분도 계실 것이며, 또한 종교와는 전혀 상관 없이 무교인 분도, 또는 신을 믿지 않거나 부정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처럼, 이웃블로거들이나 정기 독자들, 또는 방문자들 가운데에는 종교도 다 다를 것이며 "예수가 오신 성탄일"에 대한 생각도 각기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반가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쓴 글 하나를 발췌해 올려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듣고 부담없이 의견을 달아주시길 바랍니다.
아래 내용은 "성탄절과 노는날(한 창기, 1974년 <배움나무> 12월호)"의 머릿글 가운데에서 일부만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성탄과 관련하여 바뀐 상황이 별로 없는지, 30 여년 전의 글임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생각의 여지가 많습니다. 읽다 보면 공감하기에 충분하지만, 한편 가혹하다 싶을 만큼, 과감하면서도 냉정한 평가가 압도적인 글입니다.
▲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바로크 시대 화가, 벨기에 태생, 1577-1640), 화환 속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The Virgin and Child in a Garland of Flower), Oil on canvas, 1621, Musée du Louvre, Paris, France ⓒ 2008 rubens
성탄절은 신앙이나 믿음과 얽힌 쉬는날이다. 나라가 무언가 생각을 하며 믿음과 얽힌 쉬는날을 사람들에게 주려거든 사람들이 자기가 골라서 믿는 종교마다 중요한 날짜를 쉬는날로 누리도록 함이 더 옳겠다. 불교를 믿는 이에게는 `성탄절'에 일하게 하고 `부처님오신날'에 쉬게 함이 얼마나 더 괜찮은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는 그들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날이 쉬는날로 인정받는 공평성을 살리자.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쉬는 날이 한 해에 하루 또는 이틀이면, 마찬가지로 믿음을 가지지 않는 이들에게도 하루 또는, 이틀 동안 `믿음을 가지지 않은 믿음'에 따른 쉬는날을 인정하자.
한 나라의 사람들마다 가진 갖가지 믿음은 생각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노는 우리 나라의 도시 속 성탄절은 역겹기 그지없다. 해마다 이 성스런 날이 오면, 모든 사람이 예수님이 하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타이르던 일만을 골라서 하는 듯한 미친 짓거리를 우리는 되풀이해서 보아 왔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성탄절을 하늘이 굽어 보시면, 얼마나 꾸중이 많을까 두렵다.
한국에서 `성탄절'이라는 날은 이제 깊숙히 상업화하고 말았다. 해마다 11월에 접어들자마자 예수님 가르침의 `가'자도 여느 때엔 나 몰라라 하던 많은 사람들마저 가게 앞에 "메리 크리스마스"를 내걸고 파는 물건마다 비싼 값을 매겨 놓고서는 가장 싼 값으로 판다고 거짓으로 외치는 구실로 굴러떨어진 것이 바로 성탄절이다.
지난 서른 해 동안 이 명절 `성탄절' 때문에 일어난 너무 많은 물질 낭비도, 정신 방종도 생각해 볼 일이다. 성탄절은 믿음을 달리하기에 따라 다른 날에 오는 쉬는날이면 더 좋겠고 `즐거운' 날이 아니라 자기 뉘우침과 명상으로 채울 수 있는 날이면 더 좋겠다.
참 많이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특히 맨 마지막에 "뉘우침과 명상으로 채울 수 있는 날"이었으면 좋겠다는 지은이의 말에 지금까지 성탄절을 맞았던 제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게 만듭니다. 이 번 성탄절은 그 의미만을 새기고 전하는 조그만 카드만을 간소하게 준비하고, 그 외에는 가까운 주변을 한 번 더 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리치(Ethel Pennewill Brown Leach, American, 1878-1959), 크리스마스 선인장과 프리지어(Christmas Cactus and Freesia), 1950, oil on canvasboard, private collection ⓒ 2008 leach
이와 관련하여,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또 하나의 다른 글을 덧붙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래 글은, 윗 글과는 무려 30년 뒤인, 지난 2004년 12월 24일에 김진홍 목사가 "슬픈 성탄절, 불행한 새해맞이"란 제목으로 아침에 쓴 명상 글입니다.
이맘 때만 되면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즐거운 성탄절을 외치고, ‘해피 뉴이어’라며 행복한 새해맞이를 말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즈음에서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성탄절이 정말로 즐겁기만 한 성탄절일까? 물론 성탄절을 맞아 즐거운 사람들도 많다. 우선 백화점들이 즐겁다. 평소보다 매출이 월등하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관 주인들이 즐겁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관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집들도 마찬가지로 즐겁다.
그러나 "성탄절이 왔기에 평소보다 더 슬픈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아가야 하는 가난하고 서러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탄절이라고, 새해를 맞는다고 주위가 흥청거리고 떠들썩하면 할수록 더욱 슬프고 더욱 외롭다. 그래서 불행을 느끼게 된다. 실제 성탄절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들을 위하여 오셨거늘 오늘 날에 우리가 맞는 성탄절에는 이들이 여전히 소외되어 외롭고 슬프고 아프다.
그러므로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이번 성탄절과 새해를 맞으며 고민하고 기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도 즐거운 성탄절이 되며 또 행복한 새해맞이를 할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기도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진정코 열린 마음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노래하고 '해피 뉴이어'를 합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인은 달라야 한다. 교회와 공동체운동은, 처음 세워지던 때부터 이런 서민들이나 민초(民草)들과 설움도 기쁨도 함께 나누자는 뜻을 가지고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탄절과 새해를 맞으며 우리들만의 기쁜 잔치가 되고만다면 우리 기독교는 그 존재 의의가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제 곧 맞이할 성탄절과 새해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 얀 브뤠헬(BRUEGHEL, Jan the Elder), 성스러운 가족(The Holy Family), Oil on panel, Alte Pinakothek, Munich, Bavaria, Germany ⓒ 2008 brueghel
이처럼 성탄이나 연말의 의미를 촉구하는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도 금융위기를 맞은 불안한 가운데 대부분의 우리들 모두 성탄이나 연말의 진정한 의미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저 또한 자신이나 가족 뿐만 아니라, 가까운 지인이나 이웃을 돌아보는 일에도 미처 마음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기쁨이나 슬픔, 또는 고통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 맘때가 되면 평소보다 더 슬프고 서러운 사람들을 돌아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올 해는 성탄절이 목요일이어서 특별히 노는 날로 맞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에서도, 한창기의 윗 글처럼, 믿음을 달리하여 쉬는 날이 달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신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는 누구에게나 노는 날이라는 전제가 불편한 분도 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저의 이 번 성탄일은, 물론 그럴 여유도 없지만, 물질 낭비에 정신 방종은 아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에 앞서 덕분에 뉘우침과 명상의 시간도 가져봅니다. 더불어 성탄과 새해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 관련 글 : 성탄, 예수의 서민적인 삶을 예언한 그림 - 블로히(덴마크, 1834-90)
마리아와 예수의 탄생 이야기 - 젠틀레스키(이탈리아, 1563-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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