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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추(立秋) 절기가 지난 지 2주일 정도가 되었고,제가 처서(處暑)였습니다. 이제 따가운 햇살도 한풀 꺾이고 초목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아침, 저녁으로는 다소 시원해진 공기와 그 기운이 느껴집니다.

   우리 속담 가운데 "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이 삐뚤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고도 합니다. 이는 더위도 한풀 꺾이고 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 오기 때문에 생긴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주까지만 해도 창문 다 열어놓고, 이불도 차버린 채 잘만 자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부터 밤 공기는 쌀쌀하게 느껴지기 까지 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창문 단속을 하게 되고, 방문단속까지 단단히 확인하게 되네요.

     고흐에게 인내와 희망을 가르쳐 준 해바라기꽃

   이 달, 8월이 가기 전에, 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소개해야 할 그림입니다. 바로 커다란 꽃,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는 해바라기꽃에서 인내심을 배웠으며, 고흐에게 해바라기 꽃은 인내와 희망의 상징이자, 기쁨과 행복의 상징이었습니다.

   고흐의 작품들은 이미 앞에서 여러 번 소개하였고 약력과 창작 활동에 대해서도 이미 여러 번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세한 약력은 "주요 작품 활동"과 이전의 들을 참고하시고, 아직 그 그림들을 감상하지 못한 분들은 이 기회에 챙겨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고흐의 그림과 약력, 작품활동에 관한 글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위키백과, "A R C(http://www.artrenewal.org)", "반고흐 미술관(http://www.vangoghmuseum.nl)"에서 발췌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책으로, "반고흐 미술관((Paola Rapelli 지음, 하지은 옮김, 2008, 마로니에북스)"과 "고흐, 영혼의 편지(Dear Theo: The Autobiography of Vincent Van Gogh, 도서출판 예담, 1999)", "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민길호 지음, 2006, 학고재)",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였습니다. 더 관심있는 분들은 직접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고흐의 자화상(Self-Portrait), Oil on canvas, 1887, 여름, Wadsworth Atheneum, Hartford, Connecticut, USA ⓒ 2009 Van Gogh

   할아버지의 뒤를 이은 개신교 목사의 아들이었던 고흐는 젊었을 때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후, 런던, 파리, 헤이그에서 그림 공부를 하면서 미술계에 진입하려는 시도를 여러번 하였으나 허사였습니다. 그래서 벨기에 남부의 탄광지대보리나주(Borinage)로 떠나 그 곳에서 설교를 하며 지냅니다.

   이때부터 고흐의 미술적 재능이 본격적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남긴 작품들은 어두우면서도 정감있고 인간적인 시골 풍경들이 많습니다. 1885년, 미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고흐는 벨기에 브뤼셀(Brussels)을 거쳐 안트웨르펜(Antwerp)에 있는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라는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아를에서 특유의 정열과 꿈틀거리는 붓질의 화풍을 완성한 고흐

   동시에 이 때부터 정규 교육과 전통적인 원근법이나 기법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고흐의 본능적인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오노에 도미에(Honore Daumier, 프랑스, 1808-1879)의 영향을 받은 고흐 초기의 작품은 하층 계급의 사회와 경제적인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886년, 파리에 정착한 고흐는 동생
테오(Theo van Gogh, 네덜란드, 1857-1891)의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도움으로 파리로 돌아가 정착하게 됩니다. 당시 파리에서는 새로운 인상주의(impressionism) 양식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으며, 고흐의 화풍도 밝고 강렬하며 다채로운 색채로 변화합니다.

   1888년, 파리를 떠나 다시 아를(Arles)에 정착하여 후기 인상파 화가인 고갱(Paul Gauguin, 프랑스, 1848-1903)과 함께 어울립니다. 두 사람의 특별한 만남과 연대의식에서 많은 걸작들이 나왔지만, 몇 달간 지속된 그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이 기간 동안 고흐 특유의 정열적이고 개성적이며 살아 생동하는 붓질의 화풍을 창조해 냈습니다.

   이 시기에 고흐는 신경증과 발작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성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 했는데, 결국은 병원에 입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으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도리어 급속도로 악화됩니다. 결국 스스로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어 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15송이 해바라기가 있는 꽃병(Vase with Fifteen Sunflowers), Oil on Canvas, 1888, National Gallery, London, United Kingdom ⓒ 2009 Van Gogh
   (고흐의 오늘 네 그림들은 저작권이 만료된 작품들이므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며, 고흐의 작품들을 바탕그림으로 저장해 큰 그림으로 감상하시면 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습니다.)


   고흐가 해바라기꽃을 처음 본 것은 고향 '포르트쮠데르트(Zundert)'에서입니다. 고흐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한 형의 비석을 발견하던 때입니다. 교회 무덤을 둘어싼 해바라기 꽃들이 한여름을 온통 노랗게 물들였고, 언제 보아도 태양을 향해 서 있는 커다란 그 꽃과 큰 잎사귀들, 그리고 그 노란 꽃 속에 갖고 있는 수많은 씨들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 씨가 여물면 찾아가서 동생들과 같이 까먹곤 하였습니다.

     고흐 평생의 기억 속에 희망의 상징이었던 해바라기꽃

   고흐는 한여름 내내 그 뜨거운 태양을 향하여 묵묵히 서 있는 해바라기꽃이 대견스러워 보였습니다.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해바라기꽃은 더욱 활기를 찾았고, 구름이 끼고 비가 오면 고개를 땅으로 향하여 슬픈 듯히 태양을 기다렸습니다. 그 꽃에 맺힌 씨앗 하나하나는 태양을 흠모하다 태양을 참고 이기는 고통이 잉태된 생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곧 고흐에게는 해바라기꽃이 인내와 희망의 상징이자, 기쁨과 행복의 상징이요, 고통의 상징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고흐가 해바라기꽃을 처음 그린 것은 파리에 있을 때인데, 그야말로 노란색의 하모니가 울려퍼지는 교향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쪽 꽃병은 밝은 노랑에 위쪽은 붉은 색이 가미된 진한 노랑색 꽃병에 15송이 해바라기 꽃이 꽂혀 있습니다.

   일곱 송이를 앞을 향하여 기쁨의 웃음을 짖고 있으며, 다른 8송이는 사방으로 손을 뻗치고 얼굴을 흔들며 흥에 겨워 춤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꽃들을 받치고 있는 녹색 잎사귀들은 춤의 장단에 맞추는 사람의 손가락 같아 보입니다. 모든 것이 더욱 빛나도록 뒷배경을 온통 노랑색 환희, 태양의 축복으로 그렸습니다.

   고흐도 이 그림은 고흐 인생의 목적을 상징하며 기쁨에 겨운 합창이라고 고백합니다. 고흐는 이 그림으로 고갱을 맞이하는 기쁨을 표현하였습니다. 이 그림 이후에도 7번에 걸쳐 거의 똑같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슬픔과 고통을 이기지 못해 그린 것도 있으며, 꽃들이 바닥을 향하고 있는 꽃들은 희망차게 솟아오르던 기운이 실망으로 변했을 때 그린 것입니다.  

  
    고흐의 자화상(Self-Portrait), Oil on canvas, 1887, 여름, Van Gogh Museum, Amsterdam, Netherland ⓒ 2009 Van Gogh


  동생 테오에게

   마르세유(Marseille) 사람이 부이야베스(Bouillabaisse) 생선 스프를 먹는 것처럼,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커다란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에 너도 놀라지는 않겠지.

   캔버스 3개를 동시에 작업 중이란다. 첫번 째와 두번 째는 초록색 화병에 꽂힌 커다란 해바라기 세 송이를 그린 것인데, 배경은 밝고 크기는 15호와 25호 캔버스야. 그리고 그 가운데 세번 째는 노란색 화병에 꽂힌 열두 송이의 해바라기이며, 30호 캔버스야. 이것은 환한 바탕으로 가장 멋진 그림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단다.

   어쩌면 여기서 끝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갱과 함께 우리들의 작업실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어졌거든.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로만 말이다. 내 가게 옆에 있는 레스토랑이 아주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것을 너도 알지. 나는 그 곳 창문에 있던 커다란 해바라기를 늘 기억하고 있어.

   이 계획을 실천해 옮기려면 12점의 그림을 그리려고 한단다. 그 그림을 모두 모아 놓으면 파란색과 노란색의 심포니를 이루겠지. 꽃은 빨리 시들어버려서 단번에 전체를 그려야 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이 곳 남부지방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

                                                                      1888년 8월에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는 것처럼, 이 커다란 해바라기꽃 그림을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그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릴 적 놀던 형의 비석 근처에서부터 보기 시작했던 해바라기꽃과의 인연이 길고 길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 더 소개하는, 테오에게 보낸 또 하나의 편지에도 그런 고흐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동생 테오에게

   네번 째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고 있어. 한 다발로 묶인 네 송이 해바라기를 그리는데, 예전에 그린 마르멜로 열매와 레몬이 있는 정물화처럼 노란 바탕이야. 이번 그림은 아주 큰 그림이기 때문에 독특한 효과가 난단다. 마르멜로 열매와 레몬을 그릴 때보다 더 단순하게 그렸어.

   언젠가 드루오 호텔(Hotel Drouot)에서 마네(Edouard Manet, 프랑스, 1832-1883)의 훌륭한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너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환한 바탕에 분홍색의 커다란 모란 몇 송이와 녹색 잎이 그려졌고, 꽃에도 색을 섞어 두텁게 그렸던 그림 말이야. 그게 바로 내가 '기술의 단순성'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요즘은 점이나 간단한 붓질만으로 채색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어.

   우리는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림을 팔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갱을 봐도 알 수 있듯, 완성한 그림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일도 불가능하고, 아주 중요한 그림으로 얼마 안되는 금액을 빌리지도 못하다니 말이야. 이런 일이 우리 다음에도 계속될까 두려워.

   다음 시대의 화가들이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발판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너무 짧고, 모든 것에 강하게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한 힘과 용기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불과 몇 년 되지 않음을 나도 알고 있어.

                                                                      1888년, 8월에


     4송이의 해바라기(Four Cut Sunflowers), August-September 1887, Oil on canvas, Rijksmuseum Kröller-Müller, Otterlo, Netherlands ⓒ 2009 Van Gogh
   (고흐의 오늘 네 그림들은 저작권이 만료된 작품들이므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며, 고흐의 작품들을 바탕그림으로 저장해 큰 그림으로 감상하시면 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습니다.)

 
   고흐도 좋아한 이와 같은 꽃은 정물화의 가장 지속적이고 주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무엇보다 꽃은 분명히 아름답다는 특성 하나만으로도 좋은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 고흐의 편지에서도 고백했던 것처럼, 실제 꽃의 아름다움은 일시적이고 덧없습니다.

   하지만, 꽃 그림은 꽃의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포착하여 보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더욱이 어떤 꽃은 종교적으로나 세속적으로 풍부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화가들은 이런 순수하게 시각적인 아름다움에서 뿐만 아니라, 고흐가 희망을 생각했던 것처럼 상징적인 목적으로도 꽃이란 주제를 연구하였습니다.

     꽃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상징성을 포착하여 보전한 꽃 그림

   음식이나 값비싼 물건들을 그린 다른 유형의 정물화처럼, "최초의 꽃 그림" 역시 16세기 말에 등장하였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꽃은 주로 중세 필사본의 가장자리 장식에 사용되었습니다. 상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띄기도 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주로 종교화나 신화화의 작은 세부 사항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던 꽃 그림 정물화가 16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꽃 자체에 대한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오래 감상하려는 관객들의 욕망이 점차 커지면서 그림의 중심적인 주제로 등장한 것입니다. 17세기 초에는 식물학과 원예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새로운 종의 수많은 꽃들이 처음으로 서부 유럽에 수입되었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 비싼 값에 거래되었으며, 그렇게 그림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17세기 초 대부분의 꽃 그림들은 실제 꽃 값보다도 훨씬 저렴하게 거래되었습니다. 화가들은 꽃 그림에서 매우 값비싼 꽃들을 식물학적인 정확성으로 묘사하였으며, 꽃을 시들게 하는 시간의 흐름은 최절정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을 포착하여 멈춰 있는 것처럼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아름다움의 덧없음이 그림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꽃이 시들거나 꽃잎이 떨어져 있는 모습을 사실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존재의 유한함"에 대한 상징성을 담기도 합니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유명한 이 해바라기 연작에서 고흐는, 해바라기 꽃의 모든 성장단계를 그려 넣음으로써 인생의 전 과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흐에게 해바라기는 개인적으로 매우 깊은 의미를 갖는 꽃으로, 1888년에 살았던 프로방스(Provence) 지방의 따듯한 햇살과 희망까지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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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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