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가운데 요즘처럼 시간이 빨리 가는 시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요즘처럼 뒤를 자꾸 돌아 보게 되는 시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지난 11개월 동안이 왜 이렇게 짧게 느껴지고 아쉽기만 한 걸가요.
새해들어선 이제야 자신을 돌아보는 시 한 편을 읊으며 묵상의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실험정신이 돋보여 재미있으면서도 내면의 깊이를 들여다보고자 노력했던 이상의 거울을 통해 제 모습을 성찰해봅니다.
아래 존 화이트 알렉산더의 그림은 "The Art Renewal Center"에서 옮긴 것이며, 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시인 이상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약력은 한국브리태니커사전과 위키백과를 참고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감상에 참조하고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새해들어선 이제야 자신을 돌아보는 시 한 편을 읊으며 묵상의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실험정신이 돋보여 재미있으면서도 내면의 깊이를 들여다보고자 노력했던 이상의 거울을 통해 제 모습을 성찰해봅니다.
아래 존 화이트 알렉산더의 그림은 "The Art Renewal Center"에서 옮긴 것이며, 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시인 이상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약력은 한국브리태니커사전과 위키백과를 참고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감상에 참조하고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상(李箱)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서울, 1910, 9, 23-1937, 4, 17)이며, 1910년 아버지 연창(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의 2남 1녀 가운데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3세 때인 1912년부터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큰집에서 장손으로 살았는데, 권위적인 큰아버지와 무능력한 친부모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이 겪었습니다. 이런 체험이 그의 문학에 나타나는 불안의식의 뿌리로 자리 잡게 됩니다.
큰 아버지의 양자로 살다 만 26세로 짧은 생을 마감한 이상
1927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했습니다. 졸업하던 해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技手)로 취직하였습니다. 그 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는 등 그림과 도안에도 재능을 보였습니다.
24살이 되던 1933년 폐병이 심해져 각혈로 퇴직한 후, 황해도 백천온천에서 요양하며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고,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금홍을 만났습니다. 그 뒤 다방 '제비', 카페 '쓰루', 다방 '식스나인' 등을 경영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1934년 김기림, 이태준, 박태원 등과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했으며,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 "시와 소설"을 편집했습니다.
1931년 처녀작으로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하고, 1932년에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했습니다. 이상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은 공사장 인부들이 그의 이름을 잘 모르고 '리상(李씨)'이라고 부르면서 그대로 '이상'이라고 했다고도 하며, 학교 때 4살 많은 구본웅(具本雄)이라는 불구였던 친구와 함께 지은 필명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1934년 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됐다고 합니다. 1936년 '조광(朝光)'지에 "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고 같은 해에 "동해(童骸)", "봉별기(逢別記)"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폐결핵과 싸우다가 불온사상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으며, 병보석으로 풀렸으나, 1937년 만 26세의 나이로 도쿄대학교 부속병원에서 마침내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날개" 외에 "지주회시(鼅鼄會豕)",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 등 20편 정도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해지는 시에는 "이런 시(詩)", 오늘 아래에서 소개할 "거울", "지비(紙碑)", "정식(正式)", "명경(明鏡)" 등 30여 편이 있으며, 수필에는 "산촌여정(山村餘情)", "조춘점묘(早春點描)", "권태(倦怠)" 등이 있습니다. 1957년 80여 편의 전 작품을 수록한 '이상전집(李箱全業)' 3권이 간행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큰 아버지의 양자로 살다 만 26세로 짧은 생을 마감한 이상
1927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했습니다. 졸업하던 해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技手)로 취직하였습니다. 그 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는 등 그림과 도안에도 재능을 보였습니다.
24살이 되던 1933년 폐병이 심해져 각혈로 퇴직한 후, 황해도 백천온천에서 요양하며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고,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금홍을 만났습니다. 그 뒤 다방 '제비', 카페 '쓰루', 다방 '식스나인' 등을 경영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1934년 김기림, 이태준, 박태원 등과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했으며,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 "시와 소설"을 편집했습니다.
1931년 처녀작으로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하고, 1932년에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했습니다. 이상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은 공사장 인부들이 그의 이름을 잘 모르고 '리상(李씨)'이라고 부르면서 그대로 '이상'이라고 했다고도 하며, 학교 때 4살 많은 구본웅(具本雄)이라는 불구였던 친구와 함께 지은 필명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1934년 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됐다고 합니다. 1936년 '조광(朝光)'지에 "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고 같은 해에 "동해(童骸)", "봉별기(逢別記)"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폐결핵과 싸우다가 불온사상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으며, 병보석으로 풀렸으나, 1937년 만 26세의 나이로 도쿄대학교 부속병원에서 마침내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날개" 외에 "지주회시(鼅鼄會豕)",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 등 20편 정도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해지는 시에는 "이런 시(詩)", 오늘 아래에서 소개할 "거울", "지비(紙碑)", "정식(正式)", "명경(明鏡)" 등 30여 편이 있으며, 수필에는 "산촌여정(山村餘情)", "조춘점묘(早春點描)", "권태(倦怠)" 등이 있습니다. 1957년 80여 편의 전 작품을 수록한 '이상전집(李箱全業)' 3권이 간행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이상의 '거울'이라는 시 한 편을 감상하겠습니다. 이 이상의 거울을 통하여 지난 2009년의 11개월 동안의 나 자신을 돌아 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 쉬어 가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 거 울 > --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고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읽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더 생각하며 읽게 됩니다. 우리 모두 몇 십 년씩 띄어 쓰기와 띄어 읽기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온 탓입니다. 그래서, 저도 띄어 쓰기를 전혀 무시한 위 이상의 시를 타자로 옮겨 쓰는 데에도 몇번씩 다시 붙여 쓰느라 불편을 많이 겪었고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이상이 타자로 치는 글씨와 띄어 쓰기까지도 염두하고 창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만으로도 실험성 짙은 이상의 창작력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독자들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읽고 마음과 생각으로 음미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 시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조용하고 말을 못 알아 듣는, 그리고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왼손잡이의 모습을 돌아 보고 성찰하는 이상의 마음과 기발한 성찰이 돋보입니다. 또한 이상의 재치와 생각에서 현재 제 모습과 생각도 보이는 듯 합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진찰하거나 치료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참 안타까운 시인의 마음이 꼭 제 마음같이 느껴집니다.
이상의 시 한 편을 통하여 거울을 바라보듯 거울에 비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2달 정도의 기간도 역시 제 모습을 돌아 보고 반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의 거울을 마음에 간직하고 생각하면서 2009년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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