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새해 첫 달의 초순도 거침없이 내닫고 있습니다. 며칠 전,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과제와 단계적 절차에 대해 의견 나눈 적이 있습니다. 동북아의 관계도 지리적 요인과 지정학(地政學)적인 조건과 가장 관련이 깊습니다.
국내의 모든 지역들과 땅 이름 역시 동북아의 관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땅 이름들의 역사와 유래를 살펴 보면 재미있는 사연들도 많고, 오늘 소개할 '영등포구 문래동(文來洞)'처럼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도 합니다.
영등포구 문래동의 역사와 유래
오늘 소개할 문래동에 관한 이야기는 주간한국 9월 20일자(1889호)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던 글인데, 지금은 삭제되고 없는 상태입니다. 문래동은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동쪽의 영등포동과 서쪽의 양천구 신정동, 남쪽의 도림동, 북쪽의 당산동과 접해 있는 동네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금천현(衿川縣) 상북면 도야미리(道也味里)였습니다.
1914년에는 시흥군 북면 도림리에 속하였으며, 1936년에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도림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 방직공장이 들어서면서 일본인들이 사옥동(絲屋洞)이라 부르기 시작하며 마을이 형성되었고, 8·15 광복 후에는 문익점의 목화가 전래된 곳이라는 뜻에서 문래동으로 불렸습니다.
문래동은 원래 1940년까지도 경기 시흥군 북면 도림리(道林里)였습니다. 같은 해, 일제가 이 지역을 서울에 편입, 오늘의 도림 1, 2동을 도림정회(道林町會)라는 일본식 행정편제로 바꾸었다가 1942년 경인선 철도를 사이에 두고 북쪽지역을 영등포 일부로 포함시켰습니다.
그 당시 이 일대에는 종연(鍾淵), 동양(東洋) 등 큰 방직회사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하여 사옥정(사屋町)이라 불렀습니다. 그로부터 1945년 광복이 되고, 이 일대는 일제때 방직공장 밀집 지역이었던 데다가 일본사람들이 붙인 ‘사옥(絲屋)’이란 땅이름을 따고, ‘방직기'와 같은 '물레’라는 뜻을 빌려서 ‘문래(文來)동’으로 부른 것이 오늘의 땅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문래동 3가 지역에는 뽕나무 식재농장이 있었던 ‘권농회사밭’이라는 땅이름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또 나이 드신 노인들은 문래동 4가 지역을 ‘오백채’라는 말로 회고하기도 합니다. 1940년대 일본인들이 방직공장 종사원을 위한 주택을 오백채 가량 지었다는 데서 비롯된 재미있는 땅이름입니다.
한강은 멀리 금강산과 태백산에서 발원해 흘러오면서 영등포 지역에 이르러 강폭이 넓어지면서 유속도 느리게 됩니다. 그래서 생긴 땅이름이 ‘뻗은 갯벌’이라는 뜻의 ‘버등개’입니다. 이 ‘버등개’를 한자로 뜻을 빌려 쓴 것이 '영등포(永登浦)'입니다. 운현궁에 속했던 벌이라고 하여 '운현궁벌'이라고도 전해집니다.
더구나 안양천, 도림천이 흘러와 이 한강과 합류하였으니, 이 지역이 꽤나 넓은 벌판이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공업용수가 풍부하고 넓은 벌에 주변의 노동 인력이 풍부한 점을 일찍 감안했던 일제는 이곳에 대규모의 군수 방직공장을 지어 개발하였으며, 영등포하면 우리나라 굴지의 방직공장 지대로 교과서에까지 등장했던 것입니다.
나이든 세대들이 영등포 문래동 하면, 머리속에 또 하나 떠올리는 것이 6관구 사령부입니다. 그 6관구 사령부 연병장에서 구호를 외치면서 발맞춰 뛰던 푸른 제복의 구리빛 얼굴들의 흔적은 사라지고, 지금은 잎이 무성한 문래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문래공원의 한 켠에 육군 소장 군복 차림의 흉상이 대석 위에 얹혀있습니다. 5,16군사 쿠테타를 일으킨 장본인 박정희(朴正熙) 소장의 모습입니다. 이 흉상 뒤에는 모순되게도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나니
차마 부정(不正), 불의(不義), 무능(無能)의
나라를 구하려는 일편단심(一片丹心)
침착, 용단, 발산 면면히
이곳에 칼을 뽑아
창공을 향하여 성화를 높이든다.
그러니까 1961년 5월 16일 아침, 서울시청 앞에서 박종규와 차지철의 살벌한 경호 속에 권력의 무대에 데뷔했던 5,16 쿠테타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총칼로 권력을 잡고, 그 총에 맞아 역사속으로 사라진지 벌써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역설적이게도 ‘사후(死後) 경호’ 또한 삼엄하기만 합니다.
푸르른 공원 안임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뛰어들지 못하게 쳐놓은 높은 철책, 그 안에 이중으로 설치된 전자 감응 보안시설까지 둘러쳐 있습니다. 육신은 이승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그가 살았을 때에 외치던 것처럼 ‘보안(保安)’과 ‘안보(安保)’의 베일에 쌓여 있는 셈입니다. 세월은 물레(文來)바퀴처럼 돌고 돌아도.
이처럼 우리의 역사와 함께 했던 문래동의 흔적은, 이제는 예술가들이 만들어 놓은 조형물들로 가득한 문래 문화 예술촌으로 탈바꿈되어 있습니다. 사진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사진 찍기 좋은 곳, 출사하기 좋은 거리, 산책하기 좋은 곳, 연인들이 데이트하기에 좋은 곳으로 추천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본래 1980년대의 이 문래 3가는 서울에서도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 산업구조가 변하고 철공소의 직공과 상인들이 공단을 떠나면서 그 빈자리에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마련하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확장된 예술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70여 개의 작업실에 160여 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문래 문화 예술공단'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지금은 매년 다양한 예술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변화되어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사진기를 메고 찾아가도 좋으며, 주변에 칼국수집으로 유명한 영일분식을 비롯한 맛집들도 즐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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