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아오면서 만났던 책들 가운데, 특별히 더 좋아하는 책이 있을 것입니다. 이 파트리크 쥐스킨트(Partrick Suskind, 독일, 1949 - )의 저술이 저에겐 그런 것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비둘기"란 책을 쓴 저자의 몇몇 책들을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쥐스킨트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을 졸업 후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출퇴근 길에 즐거움 삼아 종종 들르던 집근처의 헌책방에서 "좀머 씨 이야기"란 책을 우연히 그렇게 만났습니다.
한 소년의 눈에 비친 이웃, 좀머 씨(아시겠지만, 여기서 씨는 호칭이 아닌 이름임)의 기이한 삶을 담담하고도 섬세하게 그린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들고다니기에도 꼭 좋을 만큼, 그리 두껍지 않은 크기여서 더 좋았습니다. 더불어 중간 중간 그림까지 삽입되어 있어, 더 부담없이 선택할 수 있었고, 그 내용에도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책은 빌려주지 말라"는 조언을 절감했던 책이기도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서 그 책을 건네주던 그 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이 좀머 씨 이야기"를 빌려갔던 지인에게 부탁합니다. 제발 제발, 돌려주세요!!"))
그렇게 만났습니다. 이 "좀머 씨 이야기" 외에도 쥐스킨트가 쓴 다른 책들을 새책방이나 헌책방에서 또 만날 때면, 같이 갔던 친구에게 권하기도 했고, 이미 읽은 그 책을 집에 갖고 있음에도 또 사곤 하였습니다. 읽기에도 부담없고 선물하기에도 부담없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좋아하게 된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책 가운데 또 다른 하나가 오늘 소개하는 이 책 "비둘기"였습니다. 이렇게 소개를 하자니, 너무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긴장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새삼 새롭게 느껴집니다. 요즘은 도심에서 더 쉽게 비둘기를 만나게 되면, 떠올게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쥐스킨트의 약력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그는 1949년 독일 암바흐에서 태어나 뮌헨대학과 엑 상 프로방스에서 역사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일찍 시나리오와 단편을 썼으나 특별히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34세 되던 해인 1983년에, 한 작은 극단에서 제의를 받아 썼던 "콘트라베이스"란 책이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남다른 평가를 받습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한 예술가의 고뇌를 그렸으며, 남성 모노드라마인 이 작품은 "희곡이자 문학작품으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 후 장편소설 "향수(1985)"를 발표하였습니다. 매우 향수란 감성적 소재를 살인과 결부시킨 매우 독특한 내용의 철학적인 소설입니다. 이는 그 후 영화로도 만들어진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종종 TV로도 방영되곤 하는 작품입니다.
냄새에 관한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광기어린 주인공 '그르누이'가 향기(냄새)를 쫒아다니며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다소 기상천외하고 섬뜩하기도 한 줄거리이지만, 발표되자마자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소설입니다.
특히 이 소설은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란 제목으로 톰 뒤크베어(Tom Tykwer) 감독, 벤 위쇼(Ben Whishaw) 주연의 영화로 재탄생했습니다. 다소 잔인할 수 있는 소재를 담백한 영상으로 부담없이 이끌어가는 매력이 있으며, 여기에 시종일관 긴장감으로 재미를 더한 영화입니다. 기회되면 꼭 찾아 감상해보실 것을 강력 추천합니다.
그 후, 세 번째 소설인 위 "비둘기"를 통하여 조나단 노엘이라는 한 경비원의 내면 세계를 심도 깊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매스컴에서도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대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모든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진 찍히는 일조차 기피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운명인지, 작품을 위한 창작 과정인지, 지금도 은둔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 1991년에 발표하여 전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 처음 제가 접한 "좀머 씨 이야기"입니다. 평생을 사랑과 죽음 앞에서 도망치는 별난 인물을 그린 그리 길지 않은, 단편소설 같은 중편소설입니다.
이 '비둘기(1996년판, 열린책들)'란 책은 그 표지도 비둘기 빛 회색이며, 총 92쪽의 짧은 소설입니다. 하루에 걸쳐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평생을 고립되어 살아온 사람에게 벌어지는 작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비둘기의 출현으로 인해 죽음까지 생각하게 되는 과정과 인간 내면의 깊은 심리를 아주 세세하고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동양적인 심리묘사에 탁월했던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독일, 1877~1962)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쥐스킨트의 심리묘사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어떤 특수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비록 중편의 길지 않은 글이지만, 글쓴이인 쥐스킨트의 깊은 관찰력과 통찰력이 놀랄만큼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인 좀머 씨의 모습은 은둔자로 살아가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또한 홀로 있을 때의 제 모습을 보는 듯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이는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을 잘 그려낸 그림 한 점을 보는 듯 하기도 합니다.
1949년 독일 암바흐 출생, 뮌헨 대학과 엑 상 프로방에서 역사학 공부
1983년 콘트라베이스 Der Kontrabass
1985년 향수 Das Parfum - Die Geschichte eines Moerders
1987년 비둘기 Die Taube
1991년 좀머씨 이야기 Die Geschichte von Herrn Sommer
1995년 깊이에의 강요 Drei Geschichten und eine Betrachtung
1996년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Rossini oder die moerderische Frage, wer mit wem schlief
1996년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로 독일 시나리오상 수상
▲ 아베이(Abbey, Edwin Austin, American, 1852-1911), 화향(Potpourri), Oil on canvas, 1899, Private collection
이런 점들이 쥐스킨트의 다른 소설들도 즐겨찾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그의 소설과 책들을 읽다보면, 대부분이 이런 경향이 짙게 베어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앙투안 드 생떽쥐베리(Saint-Exupery, Antoine-Marie-Roger de, 1900.6.29~1944.7.31)의 "어린 왕자"처럼,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며, 그 여운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어른 동화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그가 발표한 소설 가운데, '깊이에의 강요' 라는 단편집이 한 권 더 있습니다.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미사르의 유언" 등으로 엮어진 수필집입니다. 냉혹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따듯한 삶의 노래같은 책입니다.
그의 책들이 제 책장 어디에 꽂혀있는지 다시 둘러보고 살펴보고 있습니다. 먼지 쌓인 시집처럼 한결같이 얇은 그의 책들을 꺼내 보고 펼쳐봅니다. 오래된 책갈피에서난 느낄 수 있는 풋풋한 책 내음이 잔잔하게 전해져 옵니다.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좋아지는 책들...입니다.
** 덧붙임(08' 1, 22, 08 :19) ; 위 쥐스킨트의 작품들 외에도 제가 읽지 못하였지만, 국내에 번역, 출판된 책들이 더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것들 말고도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덧붙여 그 세 가지를 책표지와 함께 간략하게만 소개합니다. 읽어보신 분들이 계시면 소감을 글 엮어 나눠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랑과 죽음에 대한 사색을 풀어 쓴 수필집으로 1) "사랑을 생각하다(2005)"가 있고, 사랑과 죽음, 그리고 예술의 문제를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 있게 다룬 시나리오 원문, 2) "사랑의 추구와 발견(2005)", 그리고 1996년 독일 시나리오상 수상작으로, 소외되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 3)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하는 잔인한 문제(2002)"란 제목의 책입니다.
현재 시중에 판매 중이므로 관심갖고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 얇은 두께에 읽어보고도 싶지만, 책장에 나란히 꽂아두고 싶을 만큼 욕심나는 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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