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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또 다른 주말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를 구경 못하는 장마여서인지, 주변 어른들은 "마른 장마"라십니다. 오늘도 비를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 감상할 아래 그림은 처음으로 소개하는 로드 프레더릭 레이턴(경)(Lord Frederick Leighton, 영국, 1830-1896)의 작품입니다. 성경의 일화를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의 그림으로 함께 감상한 적이 있는 "다윗(David)"을 소재로 한 낭만적인 분위기의 종교그림입니다.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낭만적인 종교 그림    

   오늘의 그림과 레이턴에 관한 약력은 브래태니커 사전과 "ARC(http://www.artrenewal.org)", 그리고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을 참고하였으며, 원문을 번역, 정리한 것입니다. 직접 방문하시면, 작가의 더 다양한 그림들도 감상하실 수 있으므로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아래 작품은 본래 크기의 큰 그림으로 준비하였으므로 클릭하여 실감나는 감상을 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컴의 바탕화면이나 블로그의 첫 화면으로도 활용하여 감상하실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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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턴(경)은 칭송받던 영국의 고전주의 화가이자 조각가, 일러스트 화가였으며 작가로도 활동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예술(Victorian art)을 선도했던 인물이며, 귀족 출신의 첫 미술가였습니다.

   거의 20년 동안이나 그는 왕립 미술원(the Royal Academy of Arts)의 원장을 엮임했으며, 두터운 신망으로 그의 임기 동안에는 경쟁자가 없었을 만큼 성공한 화가였습니다. 그는 맡겨진 임무를 양심어린 공평함으로 당당히 수행하였던 것입니다.

 ▲ 쿠르츠(Don Kurtz)가 그림으로 제공한 레이톤의 초상화
 ⓒ 2008 Leighton
 

   그는 아래 그림의 달의 여신, "포이베(Phoebe)"나 동양학자이자 탐험가였던 "버턴(Richard Burton)"의 초상화에서 확인 수 있는 것처럼, 뛰어난 초상화가(portraitist)였습니다. 또한 초기의 젊은 시절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보냈던 지성적이며 국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레이턴은 1830년 12월 3일에 영국 북동부에 있는 요크셔(Yorkshire) 주, 스카버러(Scarborough, England)에서 태어났으며, 67세의 나이로 1896년, 영국의 런던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가족은 할아버지가 러시아 왕가에서 의사(physician)로 일했으며, 그의 아버지도 또한 의사(Doctor)였을 만큼 재정적으로도 풍족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예술을 선도했던 귀족 출신의 예술가

   그러므로 그의 나이 10대 초반에 베를린 예술 학교(the Berlin School of art)에 등록하여 미술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다음 해에 이탈리아의 중부도시, 플로렌스(Florence)에 있는 예술원(Art Academy)에도 등록하여 다양하게 수학하였고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나이 26세 되던 해인 1855년에도 플로렌스 지방과 로마에서 지내며 방대한 작품들을 생산하였습니다. 이런 국제적인 활동으로 나자렛(Nazarenes)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Italian Renaissance painters)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당대에 대부분 그의 폭넓은 영향을 받지 않은 화가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결과 왕립미술원에 전시되었던 "치마부에의 성모(Cimabue's  Celebrated Madonna)"라는 작품은 당시의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 구입하기도 하였습니다.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많은 후대의 사람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레이턴의 인상적인 고전주의 그림들을 "1870년대를 대표하는 장식미술"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레이턴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또한 그의 중년에는 난청이 발병하여 왕립 미술원장직을 퇴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생동안 정력적으로 활동하였으며,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그림에 몰두했던 화가였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성 바울 대성당(St. Pauls Cathedral)에서 치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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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의 여신, 포이베(Phoebe), 22 x 24 inches (55.88 x 60.96 cm), Collection of Fred and Sherry Ross, USA ⓒ 2008 Leighton



   무척 평화롭고 여유로워보이는, 아래 그림은 " 쉬고 있는 다윗(David at rest)" 을 소재로한 풍경화입니다. 주인공인 그림의 인물이 다윗이겠지요. 성경에 너무도 유명한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어 대부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다윗에 대해 간략하게만 되짚어 보겠습니다.  

     위대한 왕이요, 뛰어난 시인이었던 다윗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목동으로 자랐던 미소년 다윗은, 적국이었던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과 직접 맞붙어 싸우겠다고 나서는 용기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대결에서 양들을 돌보며 평소 닦았던 돌팔매질을 이용해 적장 골리앗의 이마에 돌을 정확히 맞힘으로써, 그 전쟁에서 자국을 승리로 이끌었던, 성실하면서도 용기있고 운도 좋은 사나이였습니다.

   그 뒤에도 출장하는 전쟁터마다 늘 승리로 이끌었으며, 그런 업적과 국민들의 신임이 두터워지면서, 결국 이스라엘의 왕위에까지 오른, 역사적으로도 위대한 인물입니다.  먼 훗 날, 예수의 조상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기도 하고, 그 지혜가 세상 곳곳 널리 알려진 솔로몬 왕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문학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성경의 시편 150 편 가운데 가장 많은 73 편을 지었을 만큼, 뛰어난 시인이기도 합니다. 또한 비파와 하프를 연주하고 즐겨 감상하였으며, 합창단과 연주단원을 조직하여 전장에서 돌아오는 병사들을 노래로 환영하였을 만큼, 감성이 풍부한 음악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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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식 중인 다윗(David at rest), Oil on fabric, 1865, Cleveland Museum of Art, Cleveland ⓒ 2008 Leighton



     그런 그에게도 그늘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준 사울왕의 존재를 늘 경계하며 살아야 했으며,  왕궁에서 우연히 훔쳐보게 된,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에게 반하여 그녀를 탐닉하기도 했던, 나약한 한 인간이었습니다.  생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신께 바치고자 소망하였으나, 그러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욕심많은 나그네였던 것입니다.

   위 그림을 감상하며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바닥의 양탄자, 전망 좋은 풍경, 벗어 한 켠에 기대어 놓은 왕관, 그리고 그의 다소 느슨해진 여유로운 자태 등이 맞춤인 듯, 마치 연출하여 사진을 찍어 놓은 듯, 적절하게 매우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다윗의 일상과 일생을 동시에 묘사한 인물화

   단색의 우아함과 고급스런 질감의 긴 옷이 다윗의 수염과 조화를 이루어 매력과 멋스러움을 더하였습니다.  하지만 배경으로 묘사된 노을진 풍경과 하늘을 바라보며 감상하는 다윗의 눈빛만은 그의 젊음과 열정을  연상시키는 듯 매우 또렷하게 살아있습니다.

   더불어 백성을 향한 정치와 관련 업무를 마친 뒤, 크나큰 왕궁의 외진 궁정, 옥상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쉼을 누리고 있는 다윗의 노곤한 일상이 잘 드러난 대작입니다.  또한 다윗의 일생을 연상하게 만들며, 우리네 인생의 뒤안길까지 떠올려보고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다윗이 왕위에 있던 말년의 어느날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지는 해와 노을진 하늘, 노을이 조명이 되어 더욱 풍성해 보이는 솜털같은 하얀 구름을 감상보며 명상에 잠겨있는 모습입니다.  살아 움직이고 있는 듯한 구름에서 그의 왕성했던 젊은 시절을 엿볼 수 있으며, 팔 벌려 세상을 품어 안고 있는 듯한 황금빛 하늘에서 평화롭고 여유로운 현재의 삶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 꾹 다문 입과 해 넘어가는 하늘로 비상하는 듯한, 비둘기 형상의 구름을 응시하고 있는 눈빛, 오므려 움켜 쥔 양 손, 상념에 젖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에서, 영화로운 그의 삶 뒤에 숨겨져 있는 인간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게 풍요롭고 화려해보일 것만 같은 다윗 왕에게도 서쪽 하늘로 지는 해나 노을과 닮아 있는 인간본연의 모습이 있음을 독자(관객)들에게 인지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를 깨닫고 있는 듯, 숙연한 다윗의 마음도 또한 엿볼 수 있습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왠지 쓸쓸하기도 한 장엄한 풍경 앞에, 감상하고 있는 독자들 모두 숙연해지게 만드는 그림입니다.  마치 우리 모두의 삶을 돌아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며, 내 인생의 뒤안길이 떠오르게 만드는,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같은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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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휴식을 취하는 다윗의 외로움은 노인의 노년기에서 느껴지는 외로움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군요. 절대자의 외로움이겠지요?


 


 
   이 글을 준비하면서 앞에서 종교그림으로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소개했던 작품들과 화가들을 다시 세어보니, 그림 관련 기억과 미리 짐작한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꼭 4편의 작품들과 그 작품의 4명의 화가, 곧 에밀 놀데(Emil Nolde, 독일, 1867. 8. 7-1956. 4. 15)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독일, 1774~1840), 조바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이탈리아, 1430-1516), 그리고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노르웨이, 1863-1944)"십자가"를 소개하였던 것으로 검색되었습니다.

   오늘도 그 동안 이 앞에서 감상해왔던 "십자가" 소재의 또 다른 색채의 그림을 더 소개합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의 목판 그림으로, 여류 화가인 한스 발둥-그리인(Hans Baldung-Grien, 독일, 1484-1545)의 그림 한 점을 함께 나누어 감상하려고 합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목판화, 한스 발둥-그리인의 "십자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결코 화려한 색채의 컬러가 아닌 흑백의 목판 그림이므로, 또 다른 독특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의 주변이 아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느낌과 그 단순한 목적만을 깔끔하게 전달하는 강한 매력이 있습니다.

   무색무취의 담백하고 정갈한 차 한 잔을 마신 듯, 강한 인상과 감동을 받게 될 것입니다. 흑백 사진 한 장을 보는 것 같기도 한, 아래 그림은 "
ARC"를 참조하였으며, 앞에 덧붙인 발둥 그리인에 대한 소개와 약력은 브리태니커사전과 "Olga's Gallery",  "WGA", 그리고 "Webmuseum"의 소개 내용을 번역, 다시 종합, 정리한 것이므로, 감상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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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츠(Don Kurtz)가 제공한 발둥-그리인의 초상

   사실, 우리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입니다. 하지만, 한스 발둥-그리인은 북부 르네상스 미술의 가장 뛰어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1484년, 지금 독일의 쉬배비쉬 그뮌트(Schwäbisch-Gmünd)에서 태어났습니다. 20살 되던 해인 1503년에서 1507년까지 뉘른베르그(Nürnberg)에서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독일,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의 제자로 미술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초기 작품에는 스승인 뒤러의 영향이 뚜렷이 보입니다. 그러나 악마적인 활력을 지닌 후기 양식에서는 오히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 독일, 1470-1528)의 영향에 더 가까운 화풍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명함은 화가이자 목판화가요, 도서 제조업자, 그래픽 디자이너, 스테인드 글라스 아티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을 만큼, 다양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그의 작품은 아담과 하와, 마리아와 아기예수, 십자가 등 종교화를 비롯하여 초상화에서 태피스트리(tapestries)와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 도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무척 다양합니다.

     뒤러와 그뤼네발트의 영향을 받았던 발둥-그리인

   앞으로 더 소개할 계획인데, 풍경과 인물, 빛, 색채를 고요함과 결합시킨 동정녀 마리아의 그림이 특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오늘 아래 소개하는 그림처럼, 원숙기의 초상화는 불길한 느낌을 담고 있기도 하며, 오히려 세련된 대가의 솜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1509년 이래로 작가는 거의 스트라스부르그(Strasburg)에 살면서 주로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후, 1512년에서 1517년까지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임 브라이스가우(Freiburg-im-Breisgau)서 살면서 활동하였습니다.

   이 때 발표하였던 가장 유명한 회화작품으로, 그 곳 대성당(Freiburg Cathedral)에 있는 중앙제단 그림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성가대석 스테인드글라스의 도안으로도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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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Crucifixion, 1511, Woodcut), 136 1/2 x102 1/4 inches(347x260 cm), Germanisches Nationalmuseum, Nuremberg, Germany ⓒ 2008 MBaldung-Grien



   이렇게 감상하고 있는 것처럼, 생기넘치는 그녀의 소묘와 동판화, 목판화 등도 오늘날까지 적쟎이 전해지고 있어서 그의 회화에 못지 않게 주목할 만합니다. 그의 판화 작품에는 '죽음의 무도' ,  '죽음과 소녀'라는 주제가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연필 스케치를 보는 듯, 정밀하게 묘사한 판화

   또한 종교개혁의 초기 지지자로서 마르틴 루터가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의 보호를 받는 내용의 목판화를 제작하였습니다. 1510년 즈음에 그뤼네발트가 청탁받았던 "성모 마리아의 수락(Assumption of the Virgin )"이란 그림이, 최근 뒤러에 의해 완성되기도 하였습니다.


   발둥 그리인은 또한 스트라스부르 시의회의 의원이었으며 주교관구의 공식적인 전속화가였을 만큼 당시에 화가로서도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엘자흐 교회와 바젤, 카를스루에, 쾰른, 프라이부르크, 뉘른베르크 등지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위 그림을 살펴보면, 묘사도 매우 정교하고 명암도 무척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처리되어 있어 연필스케치가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목판그림이 확실합니다. 이렇듯 판화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척 세밀하고 정교하게 묘사된 판화 작품입니다.

   이는 다채로운 컬러도 아니며, 결코 화려하지도 않은, 흑백의 단색 그림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눈물흘릴 수 밖에 없는 주변 사람들, 특히 앞에 배치된 세 주인공들의 슬픈 심경과 표정, 그 공포스런 분위기가 가장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양 손에 못을 박힌 채 화폭 중앙에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의 묵묵한 표정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또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그 바로 아래 여인으로 보이는 세 사람의 슬픈 표정이 극적으로 매우 강조되어 있습니다.

     주목받고 있는 목판 그림, 십자가에 못박힌 공포

   이 모든 상황과 전체적인 분위기의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짙은 명암으로 강조하였습니다. 성경에 묘사되어 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하늘도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내렸던 당시의 상황을,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눈에 선하게 직접적으로 펼쳐지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또한 화폭의 구성이 어색할 만큼, 예수와 애도하는 세 명의 주인공들의 거리를 1m 남짓 무척 가까운 구도로 밀착시켜 새겼습니다. 이렇게 구성함으로써, 멀게만 느껴지는 신이 아닌 인간 예수로서의 인자하고 애정어린 모습을 특별히 더 강조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보고 있으면, 무척 가깝게 느껴지고 친근하게 직접적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인간적인 느낌이 강하며, 사람 냄새가 짙게 베어 있습니다. 그래서 또한 부담없이 감상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더불어 채색화나 소묘가 아닌 판화, 곧 위 목판 그림을 통하여 한스 발둥-그리인이 강조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고난이 아닌, 인간 예수의 고통과 인간적인 공포"가 마치 지금 이 시대에 내가 직접 겪고 있는 "인간의 고통"으로 실감나게 느껴지고 생생하게 전해져옵니다.

   한스 발둥-그린의 그리스도에 관한 그림 한 점으로 인하여 인간 예수의 고난을 피부로 느껴볼 수 있는 감상이었습니다. 유화나 수채화와는 달리, 판화, 특히 목판화만의 특징을 살렸으며, 그 특징과 단순한 흑백의 강한 느낌을 활용하여 "극단적인 공포의 감정"만을 진솔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매우 극단적으로 묘사했던 "뭉크"의 표현주의 그림들이 겹쳐지기도 하고,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고통이나 고난에 대해서도 또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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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Bloger's Study - 예수, 십자가에 못박힌 공포 - 한스 발둥-그리인(독일, 1484-1545) - 초하뮤지엄.넷

    Tracked from 미술관에 놀러가자 - GalleryInfo.co.kr 2008/06/28 20:53  삭제

    GalleryinfoBloger's Column예수, 십자가에 못박힌 공포 - 한스 발둥-그리인(독일, 1484-1545)초하(初夏)초하뮤지엄.넷 chohamuseum.net 이 글을 준비하면서 앞에서 종교그림으로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소개했던 작품들과 화가들을 다시 세어보니, 그림 관련 기억과 미리 짐작한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꼭 4편의 작품들과 그 작품의 4명의 화가, 곧 에밀 놀데(Emil Nolde, 독일,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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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웅...이 느낌을 뭐라고 해야할지 원.....
    학교다닐때 나름 심취했었던 헤비메탈 밴드들의 앨범 재킷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실례가 될까요?
    하..느낌 참 묘하네요...^^

    • 한상천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오래 전의 앨범 자킷 생각들이 저도 스칩니다. ^^

      판화에 대한 생각들이 다 다르겠지만, 저에게 판화는 그리 의미 있는 그림이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충북 제천에 사시는 이철수님이나 위 발둥-그리인의 목판 그림을 만나면서 그런 치우친 편견에 충격을 받았고, 판화만의 독특한 특징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 따로 있다는 감동을 받았답니다.
      암튼 위 목판화는 그렇게 저에게는 그림의 또 다른 매력을 알게해 준, 무척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느낌이 남다르고 묘하면서도 멋지지요!!!!

  2. 와~ 정말 멋지고 알찬 블로그입니다.

    자주 방문하여 삶에 찌든 먼지를 털겠습니다.

    • 쓴소리단소리님의 과분한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자주자주 뵐 수 있길 기대하며, 놀러와 쉼 얻고 가시길 바랍니다.

  3. 많은 자료선택 참고문헌 -초하님의 열성
    본 받고 싶습니다

    • 우록님의 열정도 못지 않던걸요. ^^
      아직도 자료 선택과 참고목록에 있어서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답니다.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4. 오늘 올린 [신 이여! 독재에 맞설 용기와 힘을 주소서]란 포스트 제목은 어제 이 포스트 방문하였다가 생각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합니다.

    • 쓴,단님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제목잡기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뵐 수 있길 기대합니다.





   주말을 앞둔 주말 같은 금요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을 구별하여 지내시는 분들을 위해, 그리고 종교에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는 표현주의 대가의 그림으로 특별히 준비한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노르웨이, 1863-1944)의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의 예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도 무척 좋아하는 뭉크의 그림들 가운데서 특별히 한 점만 골라 소개하고 나눕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작품이어서 고이고이 간직하던 특별한 그림이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뭉크의 그림일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기회를 보아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와 마돈나"나 "푸른 채색의 우울한 그림"을 소개하려고 계획하고 있으므로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뭉크 그림과 약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CGFA(http://cgfa.sunsite.dk/munch)", "Olga'a Gallery(http://www.abcgallery.com/M/munch)", 그리고 "뭉크의 상징주의 그림(The Symbolist Prints of Edvard Munch:The Vivian and David Campbell Collection, Elizabeth Prelinger 지음, Yale University Press, 1996)",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였습니다. 더 관심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고 직접 방문해 살펴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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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병이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a Wine Bottle), 1906, oil on canvas, Munch Museum, Oslo, Norway ⓒ 2008 Munch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대표적인 화가로 뭉크를 꼽습니다. 이 표현주의에 대해 먼저 간략하게만 알아봅니다. 표현주의는 20세기 미술 운동 가운데 하나로, 자연주의적인 형태나 원근법적인 공간 묘사 대신 그림의 의미와 감정을 강조합니다.

     표현주의 예술과 뭉크의 미술 세계

   표현주의라는 용어는 주로 독일 미술의 브뤼케파(Die Bruche)와 청기사파(Blaue Reiter)와 관련이 있으며,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도 이에서 출발합니다. 또한 1911년 베를린의 야수파(Fauvism)와 입체파(cubism) 전시회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입니다.

   본래 20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으나, 나치의 탄압으로 해체되기 전까지 독일에서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이는 화가의 이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과장과 격렬한 화법, 그리고 강렬한 색채를 통하여 왜곡된 진실을 묘사하는 예술을 말합니다.

   다시 간략하게 정리하면, 표현주의란 마음의 상태를 그림으로 강력하게 묘사해낸 20 세기의 미술을 말합니다.
뭉크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인 불안과 공포, 애정, 증오 등을 격렬한 색채와 왜곡된 선이나 형태를 사용해 표현함으로써, 일찍이 표현주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선구자였습니다.

   뭉크의 미술은 깊은 불안과 공포, 불길한 전조, 음울한 빛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의 그림처럼 뭉크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감성을 표현해 내기 위해 강렬한 색채와 형태의 왜곡, 율동하는 듯한 선 등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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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는 담배를 들고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a Burning Cigarette), 1895,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slo, Norway ⓒ 2008 Munch



   뭉크의 약력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합니다. 맨 아래에 연대별 약력과 그의 작품활동에 대해 덧붙였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였던 뭉크(1863. 12. 12 ~ 1944. 1. 23)는 노르웨이의 뢰텐(Løten, Norway)이라는 작은 지방에서 5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군 의사였으나 심한  이상 성격자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병약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던 뭉크

   일찍이 어머니와 누이를 모두 결핵으로 여의었으며, 아버지와 남동생도 그가 어렸을 때 사망하였습니다. 누이동생은 정신병에 걸렸으며, 뭉크 자신도 무척 병약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어린 시절의 가정 환경과 육체가 그의 정신과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나이 17세 되던 해인 1879년에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Oslo, 그 당시 Christiania)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19세 되던 해인 1881년에서 1884년 사이에 오슬로 미술학교(Royal Drawing School)에서 수학하였습니다. 급진적인 그룹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초기 작품, "병든 아이(The Sick Child , 1881-86, Nasjonalgalleriet)"에서 볼 수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응시는, 그 후의 작품에서도 계속됩니다.

   1885년 국가에서 주는 상을 받음으로써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주로 파리(Paris)와 베를린(Berlin)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처음에는 인상주의(impressionism) 와 후기인상주의(postimpressionism)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개인적인 양식과 내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점차 질병과 죽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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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규(The Scream), 1893, oil, tempera and pastel on cardboard, National Gallery, Oslo, Norway ⓒ 2008 Munch



   1890년, 뭉크는 파리로 갑니다. 파리에서 그를 사로잡은 것은 일본의 목판화()와 피사로(Camille Pissarro, 프랑스, 1830-1903),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프랑스, 1864~1901)의 작품이었으며, 세잔(Paul Cézanne, 프랑스, 1839-1906), 고갱(Paul Gauguin, 프랑스, 1848~1903)과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의 매력이었습니다.

   1892년 가을에는 베를린미술협회전에 출품하였는데, 초기의 애수 어린 서정적 성격을 더욱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출생과 죽음, 사랑과 관능, 공포와 우수를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고 있어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많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실존의 고뇌와 불안을 표현한 뭉크

   그러나 여기서 뭉크의 독자적인 세계가 확립된 것입니다. 게다가 베를린에서 스트린드베리와의 만남은 그 깊이를 더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파리에서는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 등과 사귀고 헨리크 입센
을 알게 되었습니다. 명작 "생명의 프리즈" 연작()을 완성하고, 1894년부터는 에칭, 판화를 시작하였습니다.

   1908년에서 1909년에는 신경병으로 코펜하겐(Copenhagen, 덴마크의 수도)에서 요양하였으며, 그 후부터 색채가 밝아지고, 문학적, 심리적인 정감이 두드러집니다. 1910년부터 노르웨이에 정착하였으며, 그의 초기 작품이 소모적이고 내성적이었다면, 후기작품은 삶의 기쁨과 자연의 풍요로움 등 긍정적인 면을 보여줍니다.


   1937년 나치스는 독일에 있는 그의 모든 작품을 퇴폐예술이라 단정하여 몰수해버렸고, 말년에 뭉크는 은둔생활을 하였습니다. 한편 판화가로서도 근대의 대작가이며, 표현물주의 미술의 선구자이자, 노르웨이 근대회화의 가장 뛰어난 인물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뭉크의 작품은 인간실존의 고뇌와 불안을 표현한 "절규(The Scream, 1893, Nasjonalgalleriet, Oslo)"입니다. 그 밖의 대표 작품으로는 "봄", "질투", "다리 위",  "저녁시간", "죽음의 방(The Death Chamber", "별이 있는 밤", "백야()"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뭉크는 말년을 오슬로 근처 집에서 지내며 사망할 때까지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림과 판화, 소묘 등 모든 작품을 그가 나고 자랐던 오슬로 시에 기증하였으며, 오슬로 시는 1963년 "뭉크 미술관"을 건립하여 그의 작품들을 관리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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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크(Edvard Munch) - 골고다 언덕(Golgotha) 1900, Oil on canvas, 80 x 120 cm, Munch Museum, Oslo, Norway ⓒ 2008 Munch



   오늘 감상하는  "십자가 위,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한 그림은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의 성화입니다. 그러므로, 아래 관련글로 소개한 다른 그리스도의 모습과 비교, 감상하시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표현주의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뭉크의 푸른 빛과 표정들

   위 그림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뭉크의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는 화폭 중앙의 맨 위에 그려졌지만, 이 그림에서 만큼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저 전체적인 형체만을 표시했을 뿐, 얼굴의 표정이나 못자국, 옆구리의 창에 찔린 자국 등,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른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십자가 위 예수의 양 옆, 두 강도의 모습도, 물론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밑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부각되어 있으며, 또렷하게 묘사한 주인공들입니다. 많은 군중들이 한결같이 독자를 응시하고 있으며, 그들의 표정도 역시, 하나같이 놀라움, 침울, 우울, 절망의 느낌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극단적인 공포의 감정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또 한가지 주목해 감상할 부분은, 위 그림의 전체적인 채색은, 뭉크가 다른 그림들에서도 즐겨 그렸던 "푸른 빛"입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뒷 배경으로 보이는 짙푸른 하늘과 옆으로 흐르는 붉은 채색의 구름이며, 절망하는 군중들의 푸른 빛과 대조를 이룹니다. 이 붉은 빛의 구름이 그림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역할과 부활 의미의 상징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그린 다른 작가들의 그림들과는 달리, 위 예수는 뭉크만의 독창적인 십자가 위,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뭉크만의 독특한 느낌으로 그 때 그 상황의 놀라움과 나약한 인간의 심리 불안과 극단적인 공포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위 예수의 성화는 뭉크의 그림 가운데에서도 표현주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죽는 날까지도 마치 자신인 듯, 영혼의 고통을 녹여내는 지속적인 작품으로 열정적인 활동을 보여줬던 뭉크와 그 그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 *  연대별 뭉크의 약력과 작품활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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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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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그림이 달라보입니다. 그런데 왜 마지막 사진에서 푸른 빛이 저토록 강조되었을까요? 의미를 명확하게 써놓지 않으셨지만 제가 느끼는 저 파란 빛은 오히려 밑의 사람들의 표정과 대조되는 "희망" 같아 보입니다.

    • 가별이님, 설명이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가별이님 보시기에 푸른 빛의 느낌이 그렇다면, 뭉크의 의미도 그럴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생각해보고, 상상해보았답니다.
      새롭게 시작된 한 주,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 뭉크하면 절규, 절규는 수많은 패러디로 오히려 웃겨 보이기만 했었는데.. 이리 친절한 설명과 함께 다시 그림을 보니 그간 웃기만 했던 저를 비웃을 수 밖에 없게 되네요. - -;
    자주 오겠습니다. 많은 가르침 주세요.

    • julis 님, 반갑습니다.
      부족한 위 설명이 그림 이해에 도움이 되셨다니, 제가 더 고맙고 기쁘답니다. 저도 도움 주고 받으며 오래도록 소통할 수 있길 기대하고 바랍니다.
      약속하신 대로, 자주 찾아오셔서 둘러보고 감상하며 쉬어가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저도 자주 찾아가겠습니다.

  3. 뭉크의 절규는 너무 유명하죠. 그런데 저는 자화상부터 먼저 봐서 저게 좀 더 친근하게 느껴져요.

    혹시 오마이뉴스 블로그도 운영하시나요? 고흐 관련해서 비슷한 글을 본적이 있어서요.!

    • 아도니스님도 그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셨쬬?
      저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 글들은 사실 여기저기 많이 펌되어 돌아다니기도 한답니다. 물론 제가 글 관련하여 그런 나눔(저작 표시, 비상업적)을 지향하고도 있지만, 오마이뉴스에 (2005/7/17일부터) 연재해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더불어 오마이뉴스 컨텐츠 내에 있는 블로그도 함께 운영을 해왔답니다. 요즘은 그곳은 거의 관리를 못하고 있으며, 현재 여러 이유로 이곳으로의 이전작업을 계속 진행 중에 있습니다. 글 갯수도 적진 않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쉽게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 표현주의가 자기 마음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군요.
    『절규』라는 그림은 정말 "Scream"이라는 영화를 보는 것 같네요.
    (무식한 비유인가요?)
    뭉크는 병약하였지만 작품활동을 오래하셨네요.
    말년에는 독일군때문에 고생도 했고요.
    전쟁은 순식간에 그의 작품을 퇴폐예술로 만들었네요.

    • 나무님처럼, 저도 영화를 떠올렸답니다. ^^
      독일군이 있었어도, 후에 그 예술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래서 우리도 이렇게 감상할 수 있어 감사하구요.

  5. 전 그림은 잘 모르지만, 그림속에 숨겨진 의미를 알땐..
    탄성이 정말 저절로 나오더라구요...ㅋ

    블로그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 개념막막님, 진짜 반갑고 댓글로 인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뵐 수 있길 기대합니다.
      저도 시간나는 대로 찾아가겠습니다.

  6. 뭉크의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신기하네요.

    • jyudo123 님, 반갑습니다. 그리고 댓글로 의견나눠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실제로도 위 그림들은 모두 각기 다른 화가가 그렸다고 말해도 믿을 만큼, 각기 다른 느낌이 나기도 해서 저도 신기하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과 뭉크의 마음을 읽고는 더 가슴 따듯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그림들이었답니다.
      앞으로도 종종 볼 수 있겠지요?시간되실 때마다 놀러와 쉬어가는 "여유있는 감성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 그치고 나니, 햇살마저 투명한 맑고 고운 아침입니다. 좋은 일 가득한 화욜되시길 바랍니다.

  7. 그림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뭉크하면 워낙 잘 알려져있는 '절규' 정도만 알고있었는데요,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이때 생뚱맞게도 노르웨이 사람들은 감수성이 남다른가보다하는 생각이 문뜩드네요. 어릴적 좋아했던 '아하'라는 밴드가 노르웨이 출신으로 아는데요, 팝밴드였지만 영국이나 미국쪽 밴드와는 뭔가 다른 아련한 감성이랄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 있었거든요...흠...
    아무튼 뭉크라는 분은 예사로운 사람은 아닌것이 확실한가 봅니다...^^

    • 한 상천님, 무척 반갑고 댓글로 생각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뭉크에 대해 알수록, 다소 거친 그의 그림에 비하면, 그는 무척 여리고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참 솔직한 그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구요.
      앞으로도 종종 뵐 수 있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