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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뮤지엄.넷 chohamuseum.net





    24절기 가운데 내일이 벌써 듣는 것만으로도 생소한 입추(入秋)이고, 모레가 한 해 가운데 가장 덥다는 말복(末伏)입니다. 한 낮에는 30도를 넘게 오르내려도 이 곳 중부지방의 이른 새벽과 해가 내려앉은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기운을 느낍니다. 심지어 한 밤 중에는 때이른 가을 기운마저 느껴지고, 생각은 한참을 앞서 성급하게도 낙엽 떨어지던 낭만과 추억 속으로 달려가기도 합니다.

     자물쇠로 문을 반드시 잠가야 하는 이유

   이 곳 "초하뮤지엄.넷 chohamuseum.net"을 우연한 기회에 들렀거나 거의 매일 찾아주시는 단골 독자들을 비롯하여,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을 왜 잠그십니까?" 질문하고 싶고 사실 궁금합니다. 오늘의 질문으로 던져 그 생각 함께 나눠보고 싶습니다.

   처음엔 그냥, "그렇군...." 하며 읽었는데, 오늘 읽은 탈무드의 글 한 꼭지가 자꾸만 뇌리를 맴돕니다. "정직한 사람들의 정직함을 위하여, 정직한 그들을 유혹하지 않기 위하여, 못된 유혹이 생기기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반드시 문을 잠글 필요가 있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들의 가르침이 잠시 제 생각을 멈추게 했습니다. 더불어 저의 행실과 그동안의 습관들도 다시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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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영국, 1774-1851), 솔즈베리 대성당의 내부(Interior of Salisbury Cathedral), Watercolor on paper, 1802-1805, Public collection ⓒ 2008 Turner



사람들은 집을 비울 때

왜 자물쇠로 문을 잠그는 것일까요?

이것은 정직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나쁜 사람이 그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려고 한다면

 문이 잠겼던, 그렇지 않던 간에 집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문이 열려 있다면,

정직한 사람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유혹이 한번쯤은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집을 비울 때나 차에서 내릴 때에 자물쇠로 문을 잠그는 것은

정직한 사람에게 못된 유혹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유혹해서는 안됩니다.

러기 위해서 문을 꼭 잠글 필요가 있습니다. 

== 탈무드 가운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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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영국, 1774-1851), 솔즈베리 대성당의 수도원(The Chapter House Salisbury Cathedral), Watercolor on paper, Public collecion ⓒ 2008 Turner



    매일 출근하고자 집을 나설 때면, 가장 먼저 열쇠를 챙겨야 하고, 또 꼭 문을 잠그게 됩니다. 열쇠를 챙길 때와, 또는 열쇠를 놓고 왔거나 잃어버렸을 때, 그래서 특히 몇 시간씩 집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귀가하는 다른 식구들을 기다려야 할 때마다 절실하게 느끼는 것인데, "참, 되게 귀찮다"는 생각이 매번 듭니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타인을 향한 배려심

   도둑 없는 몇몇 시골 동네를 제외한다면, 아마 집을 비울 때 문을 잠그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요즘은 굳이 열쇠를 챙기지 않아도, 지문인식이나, 비밀 번호인식, 또는 전파인식 잠금장치를 이용하여 쉽게 집의 대문을 잠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드나드는 모든 문이나 책상, 서랍장, 직장의 중요 문서와 서류보관함 등 중요한 모든 문을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닙니다. 귀찮아도 어쩔 수 없이, 이런 주변 환경때문에라도 열쇠 꾸러미들을 반드시 챙기게 만듭니다.


   물론 저도 지금까지는 자물쇠를 챙기고, 문을 잠그는 행위를 귀찮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또한 중요한 물건이나 서류, 책, 돈, 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만 그 문을 잠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왠지 그 문과 함께 내 마음의 문도 잠가 버리게 되는 것 같아 기분도 썩- 좋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던 제 생각이 탈무드의 위 가르침으로 달라졌습니다. 더불어 제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누군가는 유혹 받지나 않을까를 생각해봐야 하며, 본의 아니게라도 누군가를 유혹해서는 안된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 깊은 그들의 가르침에 문을 잠그며 들던 괜한 자책감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문을 잠그며 들던, 알 수 없던 마음의 무거움을 떨쳐버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공공기관의 퇴근 후 주차장이나 교회나 성당, 절과 같은 봉시기관의 굳게 잠긴 대문을 보며 들던 서운함이나 제 개인적인 씁쓸함도 이젠 다소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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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영국, 1774-1851),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성 에라스무스(St. Erasmus in Bishop Islips Chapel, Westminster Abbey), Watercolor on paper, Public collection ⓒ 2008 Turner



   여름방학도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무더위만큼이나 종일 맑고 쾌창한 날의 연속입니다. 말복인 주말을 앞둔 한 주일을 보내고 있는데, 아직도 피서 다녀오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가까운 곳이라도 자연이 쉼쉬는 곳을 찾아 심신의 피로를 씻어버리시길 바랍니다~    

   오는 주말, 종로에서 저는 "블로그의 댓글과 의사소통"에 대한 주제로 서울의 모 대학 학생들과의 인터뷰(?) 약속이 잡혀 있습니다. 사실 부족한 글을 좋게 보아준 순수함과 그들의 열정에 넘어가 해버린 무모한 약속이었지만, 걱정이 더 큽니다. 이 한 주는 그 준비도 좀 해야할 것 같습니다.

   밑글 달아 안부 전해주신 분들을 대충 둘러보니, 오랜만에 뵙는 반가운 얼굴도 있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들르지 못하신 분도 계시네요. 매일 소통할 수는 없겠지만, 댓글을 통한 소소한 생각나눔은 매일매일 글을 올리게 만드는 제 에너지입니다. 각 누리방에 방문까지는 쉽지 않아도, 지금부터 밑글에 대한 답글로 인사 먼저 드려고, 그 뒤 최대한 신속하게 각 블로그로 찾아 뵈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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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탈무드의 이야기 무척 좋네요.
    어렸을때 탈무드 많이 읽었었는데 ㅎㅎ

    • A2 님도 탈무드 많이 읽으셨었군요. 그래도 그 때 읽었던 것과 지금 읽는 내용의 느낌은 또 다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자주 뵙길 바랍니다. 건강도 먼저 챙기시구요.

  2. 초하님 블로그를 이쁘게 새단장 하셨네요~ ^^ 저도 블로그 새단장하고 싶은데, 손대는 걸 엄두를 못내고 있네요.
    정직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문을 잠근다는 역발상이 재미있네요. 부정적인 방향 보다는 긍적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

    • ㅎㅎㅎ 리브님, 반가워요~~
      새단장이라기 보다는 너무 오랫동안 바탕화면을 어두운 촛불에 의지해온 터라,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시원한 그림으로 바꾸고 싶었는데, 용량이 제한적이이서 사실 등록하고 싶은 그림으로는 못바꾸었답니다. 잉...
      주인장의 기분 전환을 위해서라도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정직한 사람을 위한 배려는 중요한 문제 같아요. 유혹받을 수 있는 여건에는 누구나가 처할 수 있으므로... ^)^

  3. 저도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고 있오요.. ㅎ

  4. 훔치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문이 열렸던 잠겼던 상관하지 않을테니 내 것을 지키려고 문을 잠그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의 유혹을 잠그는 것이었군요.
    그래서 그런가요. 내 앞에서 마음의 문을 잠그는 여인들은 적어도 저를 정직한 사람으로 여기나 보네요. ㅋㅋ

  5. 전 열쇠가 있어서..잠급니다. ㅋㅋ
    그리고 안 잠그면 어머니한테 혼나거든요. -_-;

    • 맨큐님, 말씀처럼 습관적으로 문을 잠그게 되는 거 같습니다.
      공부할 때 공개했던 방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혼자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가 봅니다. 어머님과 식구들과 함께 사시는군요. 말 잘 듣는 아들 같습니다. ^^





    헌책방에서 숨은 보석을 찾은 듯, 뒤지고 골라 즐거운 마음으로 사들고 들어온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비교적 두께도 얇아 출퇴근 길에 들고 다니며 읽기에 딱 좋았고, 그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아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새 것으로는 만나기 어렵지만, 그 제목이 "선과 성서(禪과 聖書)"라는 책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역동적인 영성생활을 제시

   이 책의 내용은 지은이가 이 두 가지의 구도방법을 직접 체험한 데서 우러나온 증언이며, 동양과 서양의 만남에 관한 새로운 제시이기도 합니다. 즉 선승들의 생활양식과 사상이 가톨릭 수도자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되면서 출발합니다.

   책의 제목처럼, 불교의 선에서는 좌선과 공안 참구를 통해 해탈의 길을 추구하는 반면,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서의 중요성과 묵상을 강조하고 있음을 쉽게 풀이하며, 그 내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합니다. 선의 역동성을 활용하여 성경의 실존적 이해와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합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읽던 가운데, 잊혀지지 않고 오랫동안 머리에 맴돌던 글귀가 있어 접어 표시해 두었다가 옮겨 적은 것이, 바로 아래의 짧은 글입니다. 이는
 수도원 안에서 40년 동안이나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묵묵히 해 왔던 이탈리아 태생의 한 수사가 한 말입니다.


     " Quale vita, tale morte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은 살아 온 모습과 같다) "

   = ( 門脇佳吉(문협가길)지음, 김윤주옮김, "선과 성서(禪과 聖書)"  분도출판사, p. 129-30. ) =



   이 말의 뜻을 더 생각해 보고, 그 깊은 의미를 정리해 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의 철학이나 가치관과 그에 따른 생활 태도나 습관은 매우 다양할 것이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갖가지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인생의 목표로 삼거나 나눔을 최대의 실천으로 옮길 수도 있으며, 또 더러는 돈이나 재물을 최우선에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죽을 때에도 생전에 살아온 태도와 같은 모습으로 죽는다"는 말의 앞에서는 잠시 제 생각이 멎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위 이야기의 핵심은, 생전에 제 멋대로 굴던 사람은 제멋대로의 태도와 표정으로 죽어가고, 행복하게 살던 사람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죽어갈 것이며, 또한 생전에 거룩하게 살던 사람은 거룩한 모습으로 죽는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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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드 프레더릭 레이턴(경)(Lord Frederick Leighton, 영국, 1830-1896), 노랑머리 아가씨(The aid with the Yellow Hair), Oil on canvas, 1895, Private collection ⓒ 2008 Leighton 


   병자를 돌보는 일은 표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도 않으며,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과정입니다. 어느 수사가 말한 앞의 이 이야기는 40년 동안의 고된 세월을 겪어낸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입니다. ''오랜 병환에 효자 없다" 란 우리의 속담이 있을 만큼,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삶이 반영된, 죽을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

   혹자는 "나이를 먹어(?) 갈수록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각자 삶의 양식과 가치관에 따라 개개인의 표정과 얼굴 모습도 그렇게 닮아가며, 그렇게 변해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 수사의 말과 같은 맥락의 문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저에게 더더욱 적쟎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위 한 수사의 말은 인생이란 여정이 살아 온 지금의 내 얼굴을 닮게 됨은 물론이요, 훗날 죽을 때의 내 모습은, 자신이 살아 온 삶의 모습과 살아가는 생각, 애써 꿈꿔 온 꿈 등 그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위 짧은 글귀를 읽으면서, 내 삶이 두렵기도 하고, 자신 앞에 숙연해지기도 하며, 살아가는 나의 태도와 습관들을 돌이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제
노년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문득,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죽을 때의 나의 모습이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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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수, 예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다, 2002, 이철수의 집 소장 ⓒ 2008 이철수


   위 그림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30 평생을 목수로 살았던 예수가 죽음을 앞에 두었던 당시 십자가 위에 있던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따가운 햇볕에 피가 말라가며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그 과정을 어머니를 비롯하여 마리아와 마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을 인간 예수의 "죽을 때의 모습"입니다.

     죽음을 맞이하던 예수의 모습

    위 그림은 이철수 화가가 당시의 상황을 다소 가볍게 만화적으로 그려낸 목판화입니다. 그래서 고통과 슬픔보다는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림이며, 예수의 모습과 표정도 무척 평온해 보입니다.  

   평민으로 살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으로 지켜 보았으며, 또 애도했던 가장 "거룩한 죽음"이 바로, "죽을 때의 예수의 모습" 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참을 수 없는 울부짖음과 목이 타는 고통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순간이지만, 그 고난 받고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입니다
.

   그러나 그렇게 고난 받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성스럽고, 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바로, 이 예수의 "죽을 때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죽을 때 나의 모습은...과연 어떨까요?? 다소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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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진정한 인간관계가 그리운 날

    Tracked from 나무사이 2008/08/11 17:34  삭제

    인간관계는 결혼식을 보면 안다. 얼추 세 부류로 나뉜다. 축의금 봉투만 인편으로 보내는 사람. 축의금 내고 재빨리 갈비탕을 먹으러 가는 사람. 사회자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리에 제일 먼저 앉고 제일 나중에 일어서는 사람. 나는 몇 번의 결혼식을 생깠을까? 인간관계는 사람이 죽어보면 안다. 얼추 세 부류로 나뉜다. 조의금 봉투만 인편으로 보내는 사람. 조의금 내고 영정 사진 앞에서 절하는 사람. 밤새 향불이 꺼질까 곁을 지키며 고스톱을 쳐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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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Quale vita, tale morte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은 살아 온 모습과 같다) "

    삶이 곧 죽음과 통한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는 군요. 죽음의 모습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삶을 다시 되돌아 보게 하는군요. 특히 개인적으로, 삶을 긍정하고 낙천적인 사람들, 또 종교의 내세를 믿는 사람들의 죽음의 순간의 모습은 참 평화롭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컴 속의 나님, 삶과 죽음은 통한단 말씀이겠지요...
      종교에 귀의했던 사람들의 죽을 때의 표정이 무척 편안하게 밝아진다는 얘길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2.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글이로군요. 흐음...

  3. 철학적으로도 그렇지만, 의학적으로 죽음은 한 순간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하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조금 더 확장하면, 삶 역시 죽음의 과정일진데...
    그렇다면 죽음에서 삶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텐데, 전 왜 저 죽을 때 옆에 있을 사람들에게 괜히 미안해지는걸까요?

    아.. 사람들에게 그만 상처주고 살아야겠습니다.
    죽고 난 후 신 앞에서가 아니라, 죽을때 사람들에게 참 못할짓입니다. =ㅅ=

    • Julis 님 말씀처럼 죽음의 과정이 길어진다면, 분명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

      저도 상처주는 일 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이 한 주는 저도 무척 바쁠 것 같아요, 좋은 한 주 사시길 바랍니다~~

  4. 음, 아직 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본 적은 없지만..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 맨큐님 잘 지내셨는지요? 반갑습니다.
      죽음에 대한 고찰이라기 보다는 한번쯤 생각해보아도 좋겠다는 취지의 글이고 책소개였습니다. 후회없도록 이 한세상 열심히 살아보자구요.

      복날에 더위 잘 이겨내고 계시죠?
      맛난 점심 드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5. 저도 내 사진 앞에서 몇이나 밤을 지새워 줄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 하나 봅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두 아시지요? 정확한 날짜로는 5월 15일(목요일)입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고민하면서 관심갖고 준비했을 "스승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이 오월 십오일이 스승의 날이 되었는지도 아시나요? 오늘 5월 15일이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탄생일이기도 하며, 우여곡절 끝에 1965년에 오늘을 스승의 날로 제정했다고 합니다.(저도 이번에서야 새롭게 안 사실입니다. ^^*)


   일년 내내 거의 한 두 통화의 전화로도 제대로 안부조차 전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이 때 즈음이 되면 그립고 더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마음이 더  바쁜 오월이지만, "스승의 날"을 맞고 보니, 그리운 사람들이 더 어른거립니다.   

   저에게도 그런 몇 분 가운데 한 분이 계신데, 오늘 바로 소개하려 하며, 대전에 살고 계신 스승님이십니다. 지난 토요일에 결혼식 주례 설 일이 있어서 김포공항에 올라오셨다며 안부를 전해주셨습니다. 뵙지 못한 서운함이 내내 아쉬움으로 맴돕니다.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 누에넨의 교회,
       1884년 10월, 누에넨, 오일 캔버스, Amsterdam, Van Gogh Museum, Netherlands


  전화로나마 인사치레도 못하고 산다며 늘 타박을 하시던, 어릴 적 한 선생님의 음성이 요 며칠 전부터 귓가를 맴 돌았습니다. 대전으로 전화번호를 누르자, 한 번의 따르릉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여보세요” 하는 낮고도 조용한 음성이 먼저 저를 맞이합니다. 이제 “너가 사람이 되었나 보다” 라며 무안을 주시는 꾸짖음이 전화를 기다렸다는 반가움으로 들려 오히려 감사하고 송구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연례 인사를 간단히 전화로 대신하려고만 했는데, 토요일 하루는 설교 준비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통화하기 좋다는 너그러우신 배려의 말씀에 영화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습니다. 5-6학년 즈음으로 기억되는 초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들었던 선생님의 설교가 필름으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8절에 있는 “범사에 감사하라” 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어린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말씀이었기 때문인지, 선생님 자신의 경험담을 예화로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날 아침, 자전거를 타고 교회로 오는 길에 미끄러지면서 넘어졌는데, 그 순간 옷이 더렵혀질 것과 다칠 것이 염려되어 “에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하는 불평이 먼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전거는 나동그라졌고 선생님은 튕겨져 나가 굴렀는데,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커다란 돌덩이가 바로 머리 밑으로 1 cm 정도 아래에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순간에는 “아이구 머니나, 참 다행이다....” 하는 감사의 말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오더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일이 생겼을 때뿐만이 아니라, 갑작스런 불행이나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라도, 항상 언제나 늘 순간순간의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는 결론의 짧고 재미있는 실화의 말씀이었습니다.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 오베르의 교회,
           1890년 6월, 오베르, Oil on canvas, Paris Musee d'Orsay, France


  대강의 제 이야기를 듣고도 선생님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며 멋쩍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모태 신앙으로 태어난 제 영혼과 뇌리에 맨 처음으로 꽂힌 신의 음성이었고, 성장하고 생활하면서도 기억에서 쉬이 잊혀지지 않는 설교였으며, 세월과 함께 신앙이 자라갈수록 더 더욱 말씀을 갈급하게 만들었던 영적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나의 이러한 고백에 허~허 소리 내어 웃으시며 내일의 설교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35장 1절에 있는, 야곱에 관한 이야기로, “벧엘로 올라가라”는 제목의 말씀을 준비 중이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설교자가 범하는 어리석음 가운데 하나가 예배하는 자들에게 지나치게 자세한 내용의 말씀을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자책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설교자는 예배하는 회중이 들을 수 있는 적절한 창(통로)을 열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자문으로 깨우침을 하나 더해 주셨습니다.
 

   이래저래 통화가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성탄 인사와 함께 서둘러 전화를 끊었지만, 야곱에 관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여 어느새 성경의 창세기를 따라 읽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아버지 이삭의 축복기도를 받은 후,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에게로 도망하여 가던 도중,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든 채 하늘로 연결된 사닥다리 꼭대기에 서서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던 땅, 벧엘("야곱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로다"하고 고백한)에 제단을 쌓고 기름을 부어 신을 정결케 하였다는 내용입니다.
 

   20년 동안을 삼촌 밑에서 일한 댓가로 그의 두 딸 레아, 라헬과 결혼하였으며,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양떼들, 노비, 약대 등 모든 짐승과 소유물, 그리고 자식들과 아내들을 데리고 조상의 땅,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와 에서와 화해했던 야곱의 도전적인 축복이 부럽게 다가왔습니다.


  지금 이 한 주간에도 스승님은 오는 일요일 예배의 말씀을 위해 기도하며 이모저모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멀리서 그 설교를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마음에서는 이미 매주 하실 선생님의 말씀이 기대가 되고 애틋한 그리움으로 쌓여갑니다. 새삼스럽게도 창원에 있는 그 교회의 회중들과 예배자들이 부러워졌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인연이 된 스승님의 설교를 내가 살아 있는 한은, 내내 늘- 그리워하며 살게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내내 아주 어릴 적 이런 인연과 말씀으로 찾아오신 신께, 그리고 적잖은 가르침을 주심으로 내 영혼의 지침이 되고 있는 스승님께 늘- 감사를 드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여유롭게 만나 잔잔한 삶의 이야기들과 더불어 속내를 풀어놓을 수 있을 날을 그려봅니다. 이러한 내 영혼의 스승님이 존재하고,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날입니다. 더불어 그런 스승님으로 인하여, 고흐의 영혼을 담은 "교회 관련 그림", 2 점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되어 행복한 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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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초하님. 사춘기 소년입니다. 깊이 있는 글 잘 읽었어요. 후. 스승의 날이라는데, 저는 마땅히 인사 드릴 분이 없네요. 딱 한 분 기억이 나긴 하는데, 왜 그런 거 있죠, 나를 특히나 예뻐해주셨는데, 동시에 워낙 또 두들겨 맞았던 터라, 지나고 보면 애증이 느껴지는 분. 후. 그래도 나중에 성공하면 한번 찾아뵙고 싶어요..

    • 사춘기 소년님, 반갑습니다.
      ""나중에" 성공하면,"이란 단서를 붙이지 마시고, 생각날 때 바로바로 찾아뵙거나 전화라도 한 통 드리는 것은 어떨까요? ^^
      앞으로도 자주 뵐 수 있길 바랍니다.

  2. 정신을 딴데 두고 있다가 스승의 날에 지도교수님께 전화도 못드렸는데, 초하님 글 덕분에 퍼뜩 떠올랐네요. 컥 -.-a
    스승의 날도 지나버려 전화드리기도 민망하고...대신 메일이라도 드려야겠네요. ^o^

    • ㅋㅋ 동대문구 정보화 도서관이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분들이 많은, 무척 바쁜 곳이란 얘길 전해 들었답니다. 우수 도서관이란 평가도...
      늦은 메일로라도 안부를 전해 들은 그 스승님은 행복하셨을 것 같습니다. ^^

  3. 너무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스승의 날도 그냥 지나쳐버린 제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럽네요.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 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별일 없이 잘 지내시는지요?
      잊지 않고 종종 찾아와 안부까지 전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저도 준님이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인생의 봄 날은 언제일까요....?  

    돌이켜 보면,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뒤를 돌아볼 여유도, 앞으로 다가올 먼 미래에 대해서도 그다지 많은 생각을 해볼 기회나 계기란 것도 없이 살아온 듯합니다. 아주 멀게만 느껴지는 나의 미래나 노년보다는, 지금까지는 어쩌면 과거나 뒤를 돌아보는 것에 더 익숙했던 듯 합니다.

    잠시, 머-언 미래로 날아가 내 노년의 한 때를 잠시 상상해 보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러할 듯 싶은데, 저도 조금은 여유 있을 삶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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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 아베마(Louise Abbema, 프랑스, 1858-1927), 피아노 앞에서(At The Piano), Private collection ⓒ 2008 Abbema(저작권 시효 말료된,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그림)



   낯 설면서도 푸근한 아르장퇴유(Argenteuil)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1840~1926)의 정원이나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의 생레미(Saint-Remy)에 있는 측백나무(삼나무)가 있는 밀밭이나 또는, 엊그제 청명에 소개한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 네덜란드, 1632-1675)의 델프트 풍경과 같이 다소 한적한 세월을 찾아 여행하고 있을 주름진 한 노인의 모습...

   양지 바른 마당 한 켠, 흔들의자에 앉아 두꺼운 안경 너머로 세월을 넘기듯 책장 한장한장을 여유롭게 더듬을 모습... 그래서 쭈글쭈글 주름 가득한 손이 더 여유로워 보이는 어느 노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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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John White Alexander, 미국, 상징주의, 1856-1915), 피아노 앞에서(At the Piano aka Helen Hopekirk Wilson), 1894 ⓒ 2008 Alexander(저작권 시효 말료된,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그림)



   갸냘픈 어깨에 디지털 사진기보다도 훨씬 둔탁한 아날로그식 무거운 카메라를 둘러 메고는 세월을 담아내 듯 성큼성큼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는 모습... 그래서 눈꺼플 내려앉은 눈으로 사람 냄새나는 뒷골목을 뒤지며 이곳저곳 세월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 등등.

   이러한 모습과 함께 또 하나의 영상이 스쳐갑니다. 미래의 지금은 멀어만 보이는 그 날에, 적어도 노쇠해진 내 손가락이 리듬에 따라 춤을 추지는 못하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자작곡이라면 더 좋을 듯 싶은 멋진 연주곡 하나 함께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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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유보트(Caillebotte, Gustave,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1848-1894), 피아노를 연주하는 젊은 남자(Young Man Playing the Piano), Oil on canvas, 1876, Public collection ⓒ 2008 Caillebotte(저작권 시효 말료된,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그림)



   내 그 먼 날에도 그런 감성만은 지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 멀지 만은 않을 내 훗 날, 위 세 화가들의 각기 다른 그림처럼, 그런 감성과 그런 모습으로 "내 삶의 마침표"를 찍고 싶습니다!!

  양지 바른 창가에 앉아 있는 듯, 잘 관리된 마당 한 켠에서 쭈그리고 앉아 풀을 뽑고 있는 듯, 투명한 햇살 가득한 조그마한 정원에서 세월을 낚는 것처럼 햇빛을 즐기듯, 저녁 무렵 석양의 햇살이 눈부신 담벼락 앞에 앉아 지나는 행인이나 동네 꼬마들을 관찰하듯...
 
   그-렇게 마-냥 여유로울 내 "인생의 봄 날"을 잠시 그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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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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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ㅎ 저도 저렇게 하고싶으나.. 돈이 많아야 할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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