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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월 들어서면서 기쁜 마음으로 "봄 맞이 대청소"를 했습니다. 그래서 비좁은 제 방도 넓혔고, 해 묵었던 물건들도 들어내었으며, 내 마음에도 봄바람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런데 봄 빛을 질투라도 하는 듯, 오늘 이른 새벽부터 흩날리던 눈발이 오전 내내 온 대지를 적셨습니다. 거기에 반갑지 않은 황사의 흔적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창문을 열어놓기도 어려워졌고, 많은 분들의 바깥 출입도 어려워졌습니다.

      하늘 풍경을 주제로한 그림들

   지난 주말부터 이따금씩 가랑비도 지나갔습니다. 그 뒤로는 하늘이 종종 흐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랬냐는 듯 그 하늘이 또 맑습니다. 이렇게 쉽게 변하는 변덕스러운 자연을 요즘 봄 하늘에서 자주 봅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습관처럼 드넓은 하늘풍경을 자주 올려다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오늘 감상할 그림의 하늘 풍경들이 꼭 요즈음의 우리 하늘풍경 같습니다.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 보니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 네덜란드, 1632 ~ 1675)의 아래 그림과 영락없습니다. 그러다가는 또 반 린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의 폭풍우 몰아치는 풍경이 되기도 하고, 어느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모네의 폭풍 같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아래 베르메르의 그림과 글은 "브리태니커백과사전"과 "천년의 그림여행(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Essential Vermeer(
http://essentialvermeer.20m.com)", "About Vermeer Art (http://www.about-vermeer-art.com/vermeer/index.html)"을, 렘브란트에 대해 앞붙인 약력과 자화상, 그림은 "브리태니커백과사전"과 "천년의 그림여행", "Web Gallery of Art(http://www.wga.hu)", "ARC(http://www.artrenewal.org)", "가톨릭마당(http://www.pauline.or.kr)"을, 그리고 모네의 그림과 약력, 그 설명은 "브리태니커사전"과 "Claud Monet Life and Art(http://www.intermonet.com)", "Monet Cyber Gallery(http://www.monet.pe.kr)"를 참고하였으며, 영문을 발췌, 번역,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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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프트의 풍경(View of Delft), 1659-60, Oil on canvas, 98,5 x 117,5 cm, Mauritshuis, The Hague
ⓒ 2008 Vermeer



   위 그림의 작가
베르메르는 옆 소녀의 그림으로 앞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대중적인 화가는 아니지만 애호가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으며, 17세기 북구 유럽화단을 대표하는 네덜란드의 사실주의 화가입니다. 빛으로 그려낸 일상이 영혼을 그려낸 것처럼 평화롭다하여 "빛의 화가"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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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 Kurtz가 제공한 베르메르의 초상화

   베르메르는 1632년에 네덜란드의 델프트(Delft)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655년에 화가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 직업을 계승하였습니다.

   1653년에 델프트의 화가협회에도 등록하여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짧은 생애를 델프트에서 보내면서 마을 여인숙의 주인이자 미술상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으므로 그리 많은 그림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현존하는 작품은 많지 않으며 겨우 40여 점 정도입니다. 거의 소품들로서 한 두 사람의 가정생활과 일상의 실내풍경을 주제로 한 그림이 대부분입니다. 오늘의 그림을 포함하여 몇 점의 풍경화도 볼 수 있으며, 종교를 제재로 한 초기 작품과 매우 정교하며 생생하게 담아낸 초상화, 정물화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야기와 추억까지 그려넣은 베르메르의 하늘풍경

   위 델프트의 풍경그림은 베르메르의 많은 실내 그림들보다도 더 널리 알려져 있으며,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더욱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의 고향을 그린 이 풍경그림이 계기가 되어 일반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중심지였던 이 델프트 풍경은 성벽 밖, 운하 건너편 자리에서 그린 것입니다. 실제 건축물 가운데 몇몇 건물 만을 기록하였으며, 배경의 2/3를 하늘로 넓고 시원하게 배치하였습니다. 그래서 현실과 과거에 대한 환상, 델프트에 대한 애정과 자유로운 기억을 뒤섞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래 전경으로 밝게 채색한 강가와 몇 척의 배와 운하, 고풍스러운 건물과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하늘이 시적인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얘기 나누고 있는 앞 쪽 두 명과 네 명으로 무리진 사람들의 모습이 위 하늘 풍경에 많은 이야기와 사연까지 함께 불어넣었습니다.

   베르메르의 그림 대부분이 빛을 주제로 한 양식화된 실내그림들입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위 하늘 풍경은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풍경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시대의 더 많은 이야기들과 자유로운 추억까지 상상하여 떠올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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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우 몰아치는 풍경(Stormy Landscape), 1638, Oil on wood, 52 x 72 cm, Herzog Anton-Ulrich-Museum, Braunschweig
ⓒ 2008 Rembrandt



   위 그림을 그린 작가 렘브란트도 '돌아온 탕자'와 '다윗왕의 간음'이란 작품을 이미 앞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과 그가 직접 그린 자화상에는 렘브란트의 인생역정이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초기의 이 자화상 작품은 빛을 빨아들이는 두껍고 무거운 후기의 붓질에 비해 반사된 빛을 놀랍도록 작고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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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브란트는 바로크 시대와 17세기 유럽 회화사상을 대표하는 대중적인 화가입니다. 1606년 7월 15일 조이트홀라드주 레이덴에서 제분업자(방앗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으며 1632년 암스테르담에 정착하면서 명성이 점차 높아졌습니다. 더불어 경제력도 갖게 되었으며 아내와의 결혼생활도 가장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사망과 파산선고의 위기를 겪었는데, 1668년 사랑하는 아들 디도(Titus)가 죽음과 더불어 그의 말년으로 접어든 작품들은 매우 인간적이면서도 심오한 감정을 담아내게 됩니다. 그의 모든 작품의 특징은 색이나 모양이 모두 빛으로 표현되었으며, 명암이야말로 생명을 불어넣는 흐름입니다.

▲ 렘브란트의 젊은 날의 자화상, 1634,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 2008 Rembrandt


   렘브란트는 유화 약 600점, 에칭 300여 점, 소묘 천여 점 등 많은 작품을 제작한 화가입니다. 종교화, 신화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정물화 등 모든 종류를 포함하는 다양한 작품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감상하는 위 작품처럼 빛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종교적 정감과 인간심리의 깊이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경건함과 인간심리까지 담아낸 렘브란트의 하늘풍경

   렘브란트는 1930년 중반 후부터 풍경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현존하는 그의 풍경화는 넓은 계곡이나 산맥, 거대한 나무, 환상적인 건물이나 폐허가 된 옛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 특징을 바로 이 폭풍이 몰아치는 풍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이 그림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넓은 계곡이 있는 어느 높은 언덕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그린 그림입니다. 폭풍이 몰려오는 구름과 계곡의 주변이 하나가 된 듯한 풍경입니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밝은 언덕을 제외하고는 폭풍을 몰고오는 검은 구름으로 온통 휩싸여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 매우 극적인 상황입니다. 따듯한 빛이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반면에 암흑이 땅에 가득차 있어 종교적인 감정을 이입시켰습니다.

   세밀하게 살펴보면 어느 특정 대상이나 사물이 하나의 선으로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구름이나 계곡의 흐름 등 무엇 하나 정확하고 사실적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명암을 배합한 극적인 효과는 기상상태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절제된 색체를 사용하였으며 황금빛 노란색과 갈색의 빛을 대비시켜 표현함으로써, 하늘과 땅의 신비한 힘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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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풍우 몰려오는 풍경(Landscape With Thunderstorm),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2008 Monet



   인상주의 화가인 모네의 작품들도 '바다가 보이는 교회'와 내 생애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아르장퇴유,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으로 이미 앞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모네는 순간 순간 변화하는 빛의 흐름을 일순간에 포착해 캔버스 위에 옮겨내고자 노력했던 화가입니다.

   희뿌연 아침 안개와 빛으로 물드는 일출의 바다, 은비늘처럼 빛에 반짝이는 포플러나무, 정원에 있는 연못의 수련 등, 야외에 펼쳐진 풍경의 빛, 색체, 대기를 표현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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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네는 1840년, 파리의 류라피테(rue Laffitte)에서 태어나 소년시절을 르아브르(Le Havre)에서 보냈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화가 부댕(Boudin, 프랑스, 1824-1898)을 만나, 외광(外光)묘사에 대한 초보적인 화법을 배웠습니다.

   초기에는 쿠르베(Gustave Courbet, 프랑스, 1819-1877)와 마네(Edouard Manet, 프랑스, 1832-1883)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점차 물감과 캔버스, 이젤을 들고 밝은 야외와 생생한 현장에 직접 나가서 그림을 그렸으며, 넓은 풍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됩니다.

▲ 모네의 베레모를 쓴 자화상, 1886
ⓒ 2008 Monet


   1870~1871년에 런던에 머물렀으며 그 이후에는 파리 북부 아르장퇴유(Argenteuil)와 베퇴유(Vetheuil)에서 살았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해체되자 1883년에 고향인 노르망디의 지베르니(Geverny)에 정착했으며, 만년에는 눈병을 앓다가 1926년 86세의 나이로 이 곳 지르베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연의 생생한 현장감까지 화폭에 담아낸 모네의 하늘풍경

   모네의 작품 대부분은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외광을 받은 자연의 표정을 어두운 색감 위에 밝은 색체를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지 않는 대신 '색조의 분할'이나 '원색의 배열'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상파의 전형적인 기법은 모네가 새로 개척한 것입니다. 색체의 효과와 빛의 굴절에 주목하여 윤곽선이 점차 사라졌음을 위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 모네 고유의 화법을 통하여 자연의 생동하는 느낌과 현장감을 화폭 전체에 풍부하게 표현했습니다. 폭풍을 동반한 빗방울이 지금 막 떨어지기 시작한 풍경과 그 느낌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을 감싸고 있는 대기의 미묘한 기운과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빛을 받아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인 분위기나 그 느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폭풍에 흔들리는 나무나 출렁이는 물결, 그 물에 비친 검푸른 구름이 지금도 매우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순간과 그 벌어진 상황이나 느낌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습니다. 높은 교회나 집 벽의 흰 건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검푸른 채색이어서 매우 인상적입니다.


     다양한 표정과 성격을 보여주는 구름과 하늘풍경들

   이상으로 지금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광활한 공간의 하늘과 폭풍우가 몰아칠 하늘, 그리고 비오기 직전의 풍경을 위 유명한 세 화가들의 세 그림으로 비교하여 감상하였습니다. 사실적이면서도 드넓고 환상적인 느낌의 베르메르의 하늘과 빛과 명암으로 주무른 듯 경건하고 고요한 느낌의 렘브란트의 하늘,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듯 요동치고 있는 모네의 하늘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였습니다.

   이렇듯 자연의 다양한 표정과 정취를 베르메르와 렘브란트, 그리고 모네를 통해 실감나게 느낀 후, 오늘날 우리의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하늘 풍경을 통하여 위 세 화가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의 하늘은 마치 살아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마치 그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대기의 느낌들이 생생하고 실감나게 느껴집니다.

   비내리기 직전의 구름들도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음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메르메르의 구름처럼 시원하고 풍요롭게 느껴지기도 하며, 렘브란트의 구름처럼 부드럽고 경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모네의 구름은 화면 가득 생동하는 것처럼 인상적으로 표현되어 어두우면서도 밝은 자연의 양면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 관련글 보기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 베르메르
                                "
돌아온 탕자를 품에 안은 나의 아버지" - 렘브란트
                                "다윗 왕의 간음과 우리아 장군의 죽음" - 렘브란트(1606-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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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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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슷한 소재의 그림을 보며 작품속에 화가들의 일생이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늘을 보면 쨍쨍하다, 흐렸다, 비가 오네 정도로 밖에는 생각 못하는 한 사람은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을 한 번 쳐다 봅니다.

  2. "폭풍우 몰려오는 풍경"
    그림은 볼 줄 모르지만, 느낌이 굉장히 좋은데요

  3. 하늘 사진찍는걸 좋아했는데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네요.
    초하님 글과 올려주신 그림 보면서 다시 생각났어요.^^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 찍을 수 있으면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림으로 보는 하늘 모습은 또 다른 맛이 있네요. ;)

  4. 아마도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하늘을 나는 꿈을 지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꿈의 실현이 되었지만...인간의 꿈은 계속 커지는 것 같아요. ^^:

    • mono 님 저도 동감합니다. 하늘을 보면 없던 꿈이 생기기도 하구요... ^^
      그동안 잘 지내셨죠?
      제가 요즘 제대로 관리를 못해서 무척 오랜만인 듯 생각됩니다.




  보편적으로 우리가 "성화(聖畵, holy(religious) picture)"라고 말하는 그림들의 대부분은 그 느낌이나 분위기가 경건하고 신비하며 엄숙하고 장엄합니다.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종교와 관련한 대부분의 그림들이 그렇습니다. 그런 그림을 감상하고 나면 마음이 차분하고 경건해지며 자신의 모습과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느낍니다.

  기독교와 관련한 성화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틀 전에도 소개했던 지미라즈키(Henryk Hector Siemiradzki, 폴란드, 1843-1902)나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 네덜란드, 1632 ~ 1675)의 그림처럼, 친숙한 일상을 담은 그림도 일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예수의 죽음이나 부활, 이적이나 병고침고 같은 신비한 이야기와 어제 소개한 "다윗과 우리아"의 이야기처럼 역사에 관한 내용이 많습니다.

    상상 속의 교훈적인 이야기를 실재로 불러낸 그림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예수의 일화나 비유에 관한 이야기처럼, 더러는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재미있으면서도 교훈적인 내용들도 종교그림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감상할 작품도 솔로몬의 이야기처럼, 널리 알려진 "탕자의 비유"를 주제로 한 교훈적인 이야기의 한 순간을 화폭에 담아낸 렘브란트(Harmenszoon van Rijn Rembrandt, 네덜란드, 1606-1669)의 그림입니다. 각 그림을 클릭하여 더 큰 그림으로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의 배경은 예수께서 장성하여 여러 마을을 돌며 모여든 자들과 함께 아마도 양지바른 곳에 모여앉아 담화를 나누던 한 때의 상황이며, 그 때 나눈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질문에 대답하던 예수가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기다리고 받아주시는 아버지의 바다같은 마음을 비유로 쉽게 설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렘브란트의 그림과 약력, 그에 대한 설명은 브리태니커사전과 렘브란트 미술관(http://www.rembrandthuis.nl),  Web Gallery of Art(http://www.wga.hu),  ARC(http://www.artrenewal.org),  가톨릭마당(http://www.pauline.or.kr), 그리고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에서 도움을 받아 정리한 것입니다. 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그림의 배경이 되는 글은 66권의 많은 성경책 가운데 예수가 태어난 이후(61~63년)에 쓰여졌습니다. 사도바울의 동역자로서 의사출신이었던 누가(Luke)가 쓴 책(누가복음)에서만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인지 "마리아와 예수를 질투했던 마르다"의 짧은 글처럼, 아래의 글을 읽어만 봐도 마치 영상을 보는 듯 생생하고 세밀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내용이 매우 감성적입니다.


      ▲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9, Oil on canvas,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 Russia

      ⓒ 2008 Rembrandt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믿음을 저버리며 방탕, 탕진했던 아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아버지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어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하건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11-32)
 


      바로크 시대의 성화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

   오늘의
그림을 완성해낸 화가, 렘브란트는 이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으므로 참고바랍니다. 그는 바로크 시대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탈리아, 1452-1519)와 함께 17세기 유럽 회화 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작품이 현재에도 전해지는데, 유화, 에칭, 소묘, 종교화, 신화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정물화 등 모든 종류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유화 약 600점, 에칭 300여 점, 소묘 천여 점 등 많은 작품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모든 작품에서 색이나 모양은 모두 빛으로 표현되었며, 명암이야말로 생명을 불어넣는 흐름이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에는 빛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종교적 정감과 인간심리의 깊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 자화상(Self Portrait), 1659,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 2008 Rembrandt


   렘브란트는 1606년 7월 15일 조이트홀라드주 라이덴에서 제분업자(방앗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기 때문에 라이덴(Leiden)에 살던 화가, 야콥 반 스바넨부르크(Jacob van Swanenburch)에게 배웠고, 14세 때 라이덴 학교를 거쳐 암스테르담(Amsterdam)으로 나와서 라스트만(Pieter Lastman, 네덜란드, 1583~1633)의 문하에 들어갔습니다.

   1624년 라이덴으로 돌아와 이듬해부터 독립하여 화실을 열었으며, 1632년까지 완전한 독학으로 친척, 이웃노인, 성경책에서 소재를 얻어 꾸준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결국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데, 1632년 암스테르담 의사조합으로부터 위촉받은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가 호평을 받아 암스테르담에 정착하였으며, 화가수련생을 비롯하여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 모두 일찍 죽게 되고 그의 화려한 생활로 인하여 파산선고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다양한 작품들이 거의 모두 경매에 넘어갔으며, 슬픔에 빠져 살다가 아들 디도(Titus)가 죽은 다음 해인 1669년,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렘브란트만큼 자화상(약 100점)을 많이 그린 화가도 없습니다. '모자를 쓰고 입을 벌린 자화상', '위엄있는 자화상' '바울 같은 자화상' 등 그가 직접 그린 초상화만을 감상하기에도 매우 다양하여 흥미로울 만큼, 평생 그의 그림에 열정을 다한 사람이었으며, 언제나 자신에게 겸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령 유화를 한 점도 그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에칭만으로도 유럽 회화사상 최대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에칭의 모든 기술은 렘브란트에 의해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엠마오의 그리스도(Christ at Emmaus, 1648)', '야곱의 축복', '유대인 신부(新婦, 유화)', '세 그루의 나무', '병자를 고치는 그리스도', '세 십자가(The Three Cross, 에칭)' 등이 있습니다.



      ▲ 돌아온 탕자, 세부그림 1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1669,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2008 Rembrandt



      ▲ 돌아온 탕자 세부그림 2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1662,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2008 Rembrandt



 
렘브란트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기념비적인 오늘의 그림들에서 자비에 관한 기독교적인 인식과 엄숙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바로크 시대의 모든 화가들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분위기와 인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사진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매우 사실적이며, 간소한 배경과 풍부한 빛, 색채, 매력적인 암시기법을 통하여 등장인물의 심리적 통찰과 영적인 인식을 독자가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묘사하였습니다.

  실재적이지만, 암시기법을 통하여 심리적 상태까지 묘사

  위 두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버지와 방탕한 아들은 어둡게 채색된 다른 가족들에 비해 특히 더 밝은 빛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하였습니다. 오른쪽 앞에 할아버지로 보이는 서있는 사람의 황금빛 붉은 소맷자락이나 아버지의 주홍빛 망토를 두른 모습과 찢어져서 누더기가 된 아들의 색 바랜 옷, 발뒤꿈치까지 아예 다 닳아 없어져버린 신발을 대조시켜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줍니다.

  이렇듯 벗겨진 머리에 다 떨어진 신발과 맨발의 부랑자처럼 더럽고 추한 모습의 아들이 세상에서의 오랜 방황과 많은 경험, 변화를 겪은 끝에 결국은 따듯하고 풍요로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미 자기 몫으로 상속받았던 재산은 전부 다 허랑방탕, 허비한 채이며, 돼지우리에서 돼지나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 허기를 채우며 일하던 헐벗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아버지이지만, 아들의 이런 과거와 잘못이나 실수, 그리고 지금의 추한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오랜 동안 잃어버렸던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과 깊은 사랑으로 문 앞에서 서둘러 맞이하고 다독여주고 있는 무척 자비로운 모습입니다. 뒤에 보이는 어머니의 시선과 오른 쪽 할아버지의 표정, 굳게 잡은 손과 고개 숙인 모습도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위 성경책의 내용으로 볼 때, 오른쪽 위에 배치된 형의 모습은 발을 꼰 채 그 위에 팔을 괴고 있는 자세를 하고 있으며, 그 얼굴 역시 무표정하고 매우 담담하게 그려져 있음을 느낄 수 있으며,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동생을 바라보고 있는 자태는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사뭇 못마땅해 보이며, 무척 대조적이어서 재미있습니다.



        ▲ 돌아온 탕자 세부그림 3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1662,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2008 Rembrandt



        ▲ 돌아온 탕자 세부그림 4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1669,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2007 Rembrandt
 


  감상하시
는 바와 같이 이 두 그림은 어떤 격렬한 감동의 한 장면을 전체적으로 담아낸 폭 넓은 느낌의 그림은 아닙니다. 이는 렘브란트의 화가 인생 말년에 이전의 작품을 다듬고 재작업하여 완성시킨 걸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온화한 아버지의 표정과 자태를 확대하여 깊이있게 묘사 

   마치 카메라를 줌인하여 확대해 잡은 사진처럼, 맨 위 첫 그림과 아래 마지막 그림의 일부를 정밀하게 묘사한 세부그림입니다. 아들의 허름한 모습과 아버지의 굵은 손등을 강조하여 엄숙하면서도 온화한 느낌을 독자에게 다시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아버지의 자태와 의상, 인물 표정으로 보아 특별한 신분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표정으로 보아 아들의 잘못이나 과거의 실수는 이미 잊은 듯 안중에도 없어 보이며, 아들이 돌아오기 훨씬 더 이전에 벌써 다 용서를 한 것 같은 자애롭고 푸근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아들과 재회한 아버지의 그 기쁨이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은 안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이제는 시간이 흐른 먼 훗날에도 더 이상 서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이 평화로움이 화폭 가득 채워져 있는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은 것은 아버지의 가슴에 폭 안긴 채, 완전히 기대어 참회하고 있는 죄인 같은 아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에게 허리를 구부려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어 그 느낌이 매우 강렬하게 전해집니다.



       ▲ 돌아온 탕자, 세부그림 5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detail), 1662,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 2008 Rembrandt
 


   위 그림들은 각각의 그림 밑에 각주를 달아 제목으로 소개하였습니다.
바로 이 마지막 그림은 맨 위 첫 그림의 세부그림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앞의 다섯 그림과 비교하면, 작품의 완성 시기가 그보다 훨씬 앞선 7년 전에 그려진 것입니다.

     빛의 대조와 완벽한 색채의 조화를 화합해낸 그림들 

   그러므로 오늘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린 첫 그림이며 오늘 그림들의 실제 모태가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그림들에 비하면, 화폭의 반 이상을 할애한 짙은 어둠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아버지와 방탕한 아들을 밝게 극대화시킴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이끌고 있습니다.

   아들의 누더기 옷과 아버지의 소매 끝이 특히 생생하게 눈에 더 잘 띄며, 마치 그 황토 빛이 황금빛 올리브 색채인 것처럼 더 곱게 물들어 보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겉옷(망토)인 주홍빛과 이 황토빛 색채를 잘 화합하여 조화시켰습니다.

   또한 오랜 방황 끝에 파산하여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돌아온 아들의 모습을 강조하였습니다. 너덜너덜한 겉옷은 물론, 얼룩지고 다 빠져 벗겨진 머리모양을 하고 있는 탕자의 현실과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그래서 단 한번 본 독자들에게 조차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색채의 조화(colouristic harmony)"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이렇듯 빛과 어둠을 대조시키고 색채의 미묘한 조화를 형성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특별한 사건임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이 렘브란트가 "빛의 마술사"임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아버지의 자애로움과 신의 위엄이 화폭 가득

  기둥 뒤에 기대어 보일 듯 말 듯한 어머니의 가녀린 모습에서 위 그림들에 비해 자식에 대한 걱정과 궁금이 가득한 표정을 더 자세히 읽을 수 있으며, 훨씬 인자해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른 쪽에 앉아 있는 형의 모습도 아버지의 말씀과 사랑이 궁금한 듯, 또는 동생에 대한 원망도 감춘 듯, 다소 호기심어린 표정입니다.

  아버지의 얼굴 생김새는 선하고 근엄하며, 거칠어 보이는 팔 벌린 묵직한 양손과 완고한 인상의 나이에서 늘 한결같은 모습이 발견됩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 곁에서 지지해주시는 산 같은 느낌의 위엄이 깊이있게 묻어나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신의 존재와 그 성격을 마음으로 느끼고 마치 눈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앞의 그림들에 비해 전체적인 빛과 색조가 부드럽고 은은하며 어두운 편이이어서 훨씬 더 온화하고 따듯한 느낌을 줍니다. 렘브란트가 이 성경내용과 관련하여 그림을 그리고자 했을 때, 산 같이 높고, 바다같이 넓은 아버지의 품과 사랑을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렸으며, 그림을 그리기 전 처음부터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이 렘브란트의 그림 5점을 감상하고 나니, 지금의 모습 그대로 아버지의 품에 기댄 아들의 모습에서 제 자신과 우리의 실재 모습 그대로를 보고 있는 듯합니다. 고향이나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나약한 인간 존재를 상징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는 듯도 합니다.

   어리석고 지치고 욕심많은 인간이라 하더라도, 몹시 추한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 쉴 수 있는 은신처를 찾은 듯 가슴 가득 자애로운 버거움이 전해집니다. 이 겨울 연말을 맞고있는 제 가슴에도 이 모든 것을 자애로운 미소로 늘 지켜보시는 신의 넓고 따듯한 품안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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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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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렘브란트의 그림은 항상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주네요. 미술에 문외한인 제게도 그의 그림은 따스함을 줍니다. ^^

  2. 너무 잘 보았습니다.
    2003년에 덕수궁미술관 렘브란트 전시를 다녀와서
    렘브란트에 조금 관심이 있어서 더 흥미있게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몰랐었는데 깊이있는 분석 덕분에 많은 부분을 더 읽고 배워갑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초하님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이전에 알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아들의 벗겨진 발^^

    • 도움이 되었다는 스미래님 말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부끄럼도 크지만, 한편으로는 큰 보람이고 기쁨이기도 합니다.
      아들이 신고 있는 닳고 낧아 구멍난 신발과 아버지의 표정은 참 대조적이고 그런 허름함도 참 따듯하게 표현한 렘브란트의 표현 기술이 놀랍고 참 신기하죠.

  3. 늘 초하님 덕분에 전에는 몰랐던 그림과 만나게 되네요.^^
    램브란트는 하나의 그림을 위해서 여러 개를 그렸던 건가요?

    • 가눔님, 뭘 도 새롭게 알고 갔을까요.
      모네처럼 연작을 많이 그린 화가는 아니지만, 렘브란트의 그림에서도 이렇게 세부묘사를 한 그림들을 종종 발견합니다.^^



  어느덧 올 한해의 두번 째 징검다리를 건너며, 중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리 길진 않지만, 지난 시간들도 돌아보게 되고, 올 한 해 동안의 제 모습은 또 어떻게 변할지, 지금의 올 소망들은 얼마나 이룰 수 있을지, 조바심 어린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누구나가 한 번쯤은 자신도 모르게 실수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큰 잘못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네 인생은 한 순간의 아주 작은 어떤 사건에 의하여 그 방향이 변경되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소개할 그림의 주인공인 다윗(David)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다윗 왕에 관한 종교그림과 그의 실수나 헛된 욕망으로 인한 우리아(Uriah) 장군의 운명을 통하여 우리의 삶과 현재도 잠시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빛과 색채, 명암이 부드럽고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림

  이런 내용을 토대로 한, 오늘 우리가 함께 감상할 작품은 앞에서도 몇 번 소개한 적이 있는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의 "다윗과 우리아"란 성화입니다. 아래 그림들을 통하여 "빛의 마술사"라는 평가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의 붓질이 빛으로 빚어 담아낸 신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부드럽게 어우러진 색채와 명암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렘브란트의 약력과 설명, 그리고 그의 그림은 "리태니커사전"과 "렘브란트 미술관(
http://www.rembrandthuis.nl)", "Web Gallery of Art(http://www.wga.hu)",  "ARC(http://www.artrenewal.org)", "가톨릭마당(http://www.pauline.or.kr)", 그리고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과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을 참고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각각의 글들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아래 세 그림의 시대적인 배경을 먼저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이는 다윗이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2대 왕위에 오른 때입니다.

   다윗은 7년 6개월만에 분열되었던 이스라엘을 통일하였으며, 다윗이 통치하는 통합왕국은 날로 융성해져서 왕국의 황금시대를 이룩합니다.수많은 전투를 통하여 영토도 확장하였으며, 선민의 위력을 세계에 떨쳤던 매우 강성한 시기입니다.

  아래 그림의 이야기는 66권의 많은 성경책 가운데 예수가 태어나기 이전(구약)에 쓰여진 "사무엘의 하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착실하게 백성을 다스리던 다윗은 충성스런 부하 장군이었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보는 순간 정욕을 품고, 간음을 저지르게 됩니다. 결국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만 가슴아픈 사연입니다.

  그 관련 내용만 골라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의 내용을 읽어보면 마치 영상을 보는 듯 다윗과 우리아의 심리까지 느낄 수 있을 만큼 세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 다윗과 우리아(David and Uriah), Oil on canvas, 1665,
                                    50 x 46 inches (127 x 117 cm), Hermitage, St Petersburg
         ⓒ 2007 Rembrandt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밧세바의 간음과 우리아의 살인을 계획하였던 다윗 왕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사무엘 하 11 : 1-17)


    작품 세계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렘브란트의 초상화

   렘브란트의 예술에는 인생역정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40년 동안 제작된 자신의 자화상들에는 렘브란트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 후기에 그린 옆의 초상화와 오늘 소개할 세 그림에서도 빛을 빨아들이는 두껍고 무거운 그의 붓질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름진 표정과 다소 무력한 인상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클릭하여 큰 그림으로 감상하시면 더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에 대한 자세한 약력과 작품활동은 아래 연대별 기록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라이덴(Leiden) 시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으나, 양친에 의해 라틴어 학교에서 수학하였고 라이덴 대학에도 입학합니다. 그러나 곧 그만두게 되고 암스테르담에서 라스트만(Pieter Lastman, 네덜란드, 1583~1633)을 만나 그림을 배우게 되면서 영속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 사도바울로 분장한 자화상(Self Portrait as the Apostle St Paul), Oil on canvas, 1661,
                                   35 3/4 x 30 1/4 inches (91 x 77 cm), Rijksmuseum, Amsterdam
  ⓒ 2007 Rembrandt


   당시 이탈리아 양식의 거대한 역사화를 그려 주목받던 라스트만은 이탈리아로부터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 이탈리아, 1573-1610)와 엘스하이머(Adam Elsheimer, 독일, 1578-1610)의 영향을 네덜란드에 도입한 "렘브란트 이전 학파(前派, Pre―Rembrandtists)"의 대표 화가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얻은 소재를 이야기로 담아낸 오늘의 이런 그림들이 그런 라스트만의 영향을 받은 결과입니다.

      원숙한 창작활동에 이어 파산 선고를 받기도 했던 렘브란트

   렘브란트의 창작활동은 두 아내와 관련이 깊습니다. 1934년 첫째 아내 사스키아와 결혼하면서 더 유명해졌으며, 밀려드는 주문으로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집니다.

   그녀가 죽고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 티투스(Tidus)의 성장과, 1645년 경에 맞은 마음씨 착한 둘째 부인 헨드리키에의 내조는 그의 예술을 더욱 원숙하게 만듭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대부분의 작품은 이렇게 164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후의 화려한 생활과 계속되는 가정불화로 경제적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1656년에 파산선고를 받아 살고 있던 저택도, 미술품도 모두 경매에 넘어가고 맙니다.

   그러나 화려하고 대담한 붓질, 풍부한 색채, 그리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빛의 명암과 섬세한 매력은 그가 명성을 누리던 젊은 시절보다 고독과 파산의 연속이었던 말년에 더욱 빛을 발휘하였습니다. 오늘의 이 그림들에서도 그런 특징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던 렘브란트는 1668년인 둘째 부인과 유일한 자녀였던 티투스마저 죽은 그 다음 해에 운면을 달리합니다. 안타깝게도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는 초라한 집에서 그의 나이 62세로 사망합니다.

   지금까지도 그의 위대한 예술성은 입증되고 있으며 시대를 초월한 힘과 영향으로 나타납니다. 종교, 신화, 초상, 풍경, 풍속, 정물 등 다방면에 걸친 그의 수많은 그림들이 지금까지도 전해지며, 약 600점의 회화, 300여 점의 동판화(etching, 에칭) 등 천여 작품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다윗과 우리아, 세부 그림(David and Uriah, detail), Oil on canvas, 1665,
                                                 Hermitage, St. Petersburg
         ⓒ 2007 Rembrandt
 


   이 그림의 주인공인 다윗은, 족보로 보면 아브라함의 14대 후손입니다. 유다지파 이새의 여덟째 아들이자 막내로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준수한 청년, 다윗 안에 스며든 정욕의 진로 

   다윗이란 낱말은 "사랑하는 자"란 뜻입니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양을 지키는 목동으로서 사나운 짐승들을 물리쳤던 매우 용감하고 담대한 청년이었습니다. 또한 성서에 보면, 혈색도 좋았으며 눈이 빼어나고 남성미를 갖춘 아름다운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 용맹함으로 말하면, 물맷돌을 들고 전장에 나아가 블레셋 대장 골리앗을 죽인 장본인으로 더 유명합니다. 이 때 승전함으로써 전쟁 영웅으로 부상하였으며, 그 명성이 날로 높아져 갔습니다.

    그 공로로 인하여 결국 이스라엘의 왕위에까지 올라 40년 동안 그 왕국의 황금시대를 이룩한 위대한 통치자였습니다. 또한 경건한 종교자로서 그가 지은 아름다운 시가 시편에 많이 수록되어 있을 만큼 풍부한 감성과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착실하게 신을 섬기고 백성을 사랑으로 다스리던 다윗도 완전한 인간은 아니었던 가봅니다. 자신의 성실한 부하였던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 여인을 보는 순간, 다윗의 마음은 정욕에 사로잡힙니다.

    그리하여 곧 '간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착수합니다. 그러나 여기 이 한 순간에서 곧바로 돌이키지 못했으며, 그의 죄를 숨기기고자 우리아를 죽음으로 모는 계획과 음로를 세움으로써 또 다른 살인과 범죄를 낳고 맙니다.


         ▲ 다윗과 우리아, 세부그림(David and Uriah, detail), Oil on canvas, 1665,
                                                Hermitage, St. Petersburg
         ⓒ2007 Rembrandt
 


  바로 윗 그림의 주인공인 우리아는 헷 족속의 사람으로 다윗의 충성된 군인이요, 부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아름다운 여인 밧세바의 남편으로 등장합니다.

    한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그 죗 값의 결과 

   그가 전쟁 중인 랍바에 출정한 사이, 다윗이 그 아내를 간통하였으며, 그 죄의 자취를 감추려고 일부러 우리아를 소환합니다. 그림에서 보면 우리아도 매우 준수한 사람이었으며, 윗 글의 묘사로 볼 때, 그 성품이 충성되고 우직한 사람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 앞에 불려온 우리아에게 다윗 왕은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받은 우리아가 돌아서 나오는 모습과 표정, 그 때의 심경을 표현하고 있는 그림이 바로 위 작품입니다.

   음흉하고 우울해 보이며 무언가를 숨기는 듯, 갸우뚱하고 있는 다윗의 표정과는 달리, 우리아의 표정은 무표정한 듯, 오히려 담담하고 평온해 보여 사뭇 대조적입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침묵과 팽팽한 감정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전쟁 중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여 다윗의 명에 불응합니다. 이에 다윗 왕은 우리아 장군을 부득이 전쟁터로 다시 돌려보내게 되며, 대장 요압에게 편지하여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의 제일 위험한 곳에 세워 죽도록 만들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마침내 다윗의 각본대로, 애석하게도 우리아는 전사하고 말았으며, 그의 아내 밧세바는 다윗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잘못과 허물도 없던 충성된 왕의 종이 그 연유도 모른 채, 날벼락 같은 불화를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서 이야기를 고유의 서정과 인간내면의 장엄함으로 묘사 

   이상에서 감상하신 것처럼, 렘브란트는 그의 그림에서 그 나름의 깊은 빛과 그늘을 창조해내고 있습니다. 또한 등장인물의 마음과 감정, 느낌이나 생각 등을 독자가 함께 읽어낼 수 있도록, 인간 내면의 깊이와 넓이까지 담아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에 있어서 색이나 모양이 바로 빛 그 자체입니다. 또한 빛에 의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명암이야말로 그림에 생명을 부여하는 원동력이자, 그를 대표하는 독특한 화법인 것입니다.

   화가요, 판화가였던 렘브란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탈리아, 1452-1519)와 함께 17세기 유럽 회화사에서 최대의 화가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루벤스(Peter Paul Rubens, 벨기에, 1577-1640)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벨기에의 화가, 루벤스는 귀족적인 소재와 함께 그에 걸맞는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렘브란트는 종교적인 소재에 네덜란드의 시적 정서와 생활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 모두에서 종교적인 정감을 느낄 수 있으며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깊은 심리 상태까지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렘브란트 특유의 명암법에서 기인합니다.

   위 그림들을 보면 네 그림 모두 왼쪽 위 하늘에서 사선으로 비쳐 들어오는 빛의 흐름을 중심으로 통일하여 더 밝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리는 작품에서 따뜻한 애정과 시선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특히 그의 종교그림에는 이처럼 독특한 수법이 쓰여졌음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매우 장엄한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물이나 대상에 대해서는 사실적입니다.

   그런데 빛의 효과에 대해서는 최대한 이상적입니다. 더불어 색채나 명암의 대조를 강조함으로써 회화적 효과를 최대한 살리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를 "혼의 화가"나 "명암의 화가"라고도 일컫는 이유입니다.

   그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강렬한 힘과 그의 인간 내면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통찰력,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종교적 권능을 감지하게 하는 탁월한 빛의 처리 기법은, 미술사에 있어서 앞으로도 오래도록 영원한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독자(관객)로 하여금, 그의 그림 앞으로 한 발자국씩 더 다가가게 만들며, 그의 그림에 익숙해지고 친근하게 만듭니다.


      ***** 렘브란트의 연대별 약력과 작품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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