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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과 관련한 우리의 주권은 8월과 인연이 깊습니다.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우리의 국권을 빼앗긴 데 이어, 1945년 8월 6일 유엔의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되었고 이로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에 패하였으며, 8월 15일 마침내 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우리도 고대하던 해방을 맞고 주권을 되찾았던 끈질긴 역사때문입니다.

    올해는 일본의 강제합병으로부터 주권을 되찾은 지 63주년,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8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올 8월의 여름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혹시라도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하여 그냥 외면 당하는 광복 기념일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정계를 비롯하여 재계나 우리 국민모두 가슴 아픈 우리의 과거와 역사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그 역사와 진실 앞에 당당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호소력 깊은 부르짖음, 비숍의 전쟁 보도사진

   그 일환으로 지난 6월 23일, "한국전쟁" 기념일을 즈음하여 소개하였던 비숍(Werner Bischof, 스위스, 1916-1954)의 한국전쟁 사진 9점에 이어, 오늘도 제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전쟁사진 작품 9점을 모아 함께 감상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삶과 인간성마저 유린, 말살되어버린 전쟁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어떤 이유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비숍의 강한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관적인 그림보다는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사진을 더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필자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사진은 인간의 진솔한 삶과 그 시대를 포함하여 그 순간, 그 당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장점 때문입니다. 또한 백 마디의 말보다도 더 호소력 짙은 진실한 현장과 그 현실을 통한 말없는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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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파리에서 언스트 하스(Ernst HAAS)가 찍은 비숍(Werner BISCHOF)의 모습 ⓒ 2008 Bischof



   아래 비숍의 전쟁보도 사진들이 특히 더 그렇습니다. 현재 그의 사진들을 모은 8권의 작품집이 이미 출간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Werner Bischof(Phaidon 출판사)"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는 그의 사진집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구입하셔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이따금씩 헌책방에서도 보석 줍듯 발견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비숍의 명성이나 널리 알려진 그의 사진에 비하면 그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으므로, 그의 약력과 소개는 앞에서도 여러 번 소개한 내용들도 참고해주시고, 오늘은 전체적인 그의 삶과 사진세계, 작품사진을 위주로 감상하겠습니다. 아래 감상하는 것보다도 더 잔인하고 참혹한 내용의 사진도 있었으나 차마 싣지 못했음을 자백합니다.

   비숍의 초상과 소개, 사진작품과 설명은 "사진의 세계역사(A World History of Photography)"란 책과 가장 유명한 사진가들의 모임인 매그넘 포토(http://www.magnumphotos.com), 그리고 현재 그의 아들이 관리하고 있는 비숍의 누리방(http://www.wernerbischof.com)에서 도움받아 실었고, 번역하여 덧붙여 정리한 것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꼭 방문해 둘러보시고, 즐겨찾기라도 해두었다가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수준높은 작품들도 시간 날때 여유있게 만나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오늘의 작품들과 앞에서 연재했던 지난 6월의 한국전쟁 관련, 여행을 재촉하는 서정 깊은, 희망을 노래한 인간성 짙은 사진들도 이 기회에 꼭 둘러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외에도, 도회적인 이미지를 감각적인 시각으로 담아낸 비숍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가을 즈음하여 앞으로 한번 더 소개할 계획에 있습니다.

     짧은 생을 마감했던 평화주의자, 비숍

   비숍(Werner Bischof, 1916-1954)은 전후 시대의 대표적인 보도사진 작가였습니다. 1949년에는 ‘매그넘(Magnum)'이라는 유명한 보도사진 작가협회의 회원에 등록함으로써, 전 세계의 신문, 잡지에 보도사진을 제공하며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얻었습니다.

   특히 1942년 창간된 스위스의 미술잡지 "DU"의 일원으로도 참가하여 주로, 풍경, 동물, 식물 등을 찍어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45년에는 유럽의 전쟁참사를 기록하기 위하여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지의 피난민을 찾아다니기도 하였습니다.

   1948년에는 헝가리를 비롯하여 유럽을 여행하며 취재한 작품들이 "라이프(LIFE)" 잡지에 실리면서 더 유명해졌습니다. 이렇게 취재여행을 다니던 가운데, 1954년 그의 나이 38세의 한창 젊은 때에 안데스 산맥의 한 낭떠러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안타깝게도 그의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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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 하두하다자의 소녀(HUNGARY, 1947, Hajduhadhaza) ⓒ 2008 Bischof



   세계적인 보도사진가들 가운데 가장 평화주의자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만큼 비숍의 사진들은 그것이 전쟁과 관련한 사진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인간다운 애정과 삶의 아름다움을 함께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민중의 생활 속 깊이 숨어 있는 각 민족 그들만의 기쁨과 슬픔을 몸소 느끼고 담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통해 어린 아이의 존엄성을 부르짖는 사진 (1) 
     
   가슴 저미도록 인간적인 위 작품은 1947년 헝가리의 하두하다자(HUNGARY, Hajduhadhaza) 지방에서 찍은 사진이며, 전쟁으로 부모와 집을 잃게 된 어린 고아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위 소년을 포함한 헝가리의 이 아이들은 다양한 일터에서 일을 배우고, 시민 소유의 땅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어릴 적 모습 같은 저 선한 눈동자에서 흐르는 눈물이 닭 똥 같다는 표현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닭 똥 같은 눈물과 콧물이 떨어지는 처절하도록 생생한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그의 열정과 예술성이 최고조에 달한, 소위 말하는 "순간 포착" 절정의 작품입니다.

   생을 초월한 듯 오히려 담담해 보이는, 소녀의 해맑은 눈동자에서 떨어지는 저 눈물을 손으로라도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이처럼 비숍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이 소녀와 같은 어린 아이들이라고 호소력 짙게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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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당시 남한의 도시, 부산(SOUTH KOREA, 1952, Town of Pusan during the Korean War) ⓒ 2008 Bischof



   한국전쟁이 있던 당시 대한민국의 수도는 부산이 되었으며, 1950년과 1953년 사이에 사회적 평등을 주장하던 북한은 남한에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자유주의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연합(United Nations)은 남한 쪽에 합류하였으며 중국은 북한 쪽을 원조하였습니다.

     전쟁을 통해 어린 아이의 존엄성을 부르짖는 사진 (2)

   그러던 가운데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대한민국은 38선을 따라 북한과 남한으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런 전쟁상황의 부산에도 살던 집과 돌보아주던 부모 마저 잃고 아무 것도 모른 채 공포에 떨며 혼자 떠돌아다니던 아이들이 많이 늘어난 상황이었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앞 쪽 양 옆으로, 앞을 보고 서 있는 두 어른을 어둡고 흐릿하게 배치시킴으로써 마치 거대한 산이나 38선의 장벽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 사이에 너댓 살로 밖에는 안 보이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밝고 천진난만하게 담아냈습니다.
 
   누더기가 다 된 겉 옷과 신발, 추워보이는 듯 주머니에 양 손을 쑤셔넣은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말을 잃은 듯, 할 말이 없어집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옷과 주머니에 걸쳐 넣은 손, 그리고 순수한 얼굴 표정이 역광을 받아 밝고 희망을 주는 듯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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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의 병사가 된 매력적인 꼬마(HOLLAND, 1945, Town of Walcheren) ⓒ 2008 Bischof



   비숍이 1945년, 네덜란드 발체렌시에서 찍은 사진작품입니다. 마치 병사라도 된 것처럼 총을 메고 군복에 매력적인 모자까지 멋을 내 약간 옆으로 눌러쓰고 있는, 아주 어린 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전쟁을 통해 어린 아이의 존엄성을 부르짖는 사진 (3) 

   서너 살로 밖에는 안 보이는 앙증맞은 아이의 모습이 인형처럼 마냥 귀엽게만 보여서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전쟁의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제법 멋스럽게 현대적인 감각의 옷들을 챙겨 입혀놓은 모습이고, 거기에 실제 총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쟁에 쓰이는 긴 총까지 메고 있어서 무척 대조적입니다.

   전쟁의 여파로 보이는 무너진 담벼락과 총에 맞아 구멍나고 떨어져 나간 담장, 그리고 나무 판자를 임시방편으로 막아놓은 뒷 배경의 모습이 전쟁 상황임을 실감나게 합니다. 또한 아이의 복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표정만큼은 당당하고 해맑고 순수해 보여 오히려 보고 있는 독자(관객)의 시선을 난감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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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의 산악 소년병사들(SWITZERLAND, 1941, Soldiers) ⓒ 2008 Bischof



   비숍이 1941년, 스위스에서 찍은 사진으로, 산악여단 병사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담아냈습니다. 거칠은 바위로 보아 산악과 산새가 무척 가파르고 험준해 보이며,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 즈음으로 보입니다.

     전쟁의 현실과 인간의 존엄성을 대조시켜 보여주는 흑백사진

   흑백 사진이기에 이런 바위의 거친 질감과 날카롭고 육중한 느낌이 더 잘 표현되었으며, 병사들의 곱고 흰 군복과 대조적입니다. 거친 바위는 어둡고 참담한 전쟁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며, 통일된 흰 군복의 어린 병사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위 사진과 마찬가지로 군복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한 채 오른 손에 총을 한 자루씩 들고 왼 손으로 투박한 바위를 더듬어가며 산을 오르는 맨 앞 오른 쪽 소년의 얼굴 표정을 잘 담아냈으며, 무척 어린 소년으로 보입니다. 전쟁이 무엇인지,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를 것만 같은 소년의 표정이 참 안타깝고 참담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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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당시, 부산의 소년(SOUTH KOREA, 1952, Korean War, Pusan) ⓒ 2008 Bischof



   1952년 한국전쟁 당시 남한의 수도였던 부산에서 찍은 사진으로 아파서 누워 있는 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이나 금이 가 있는 낡은 건물 벽, 맨 바닥에 아무렇게나 깔려있는 가마니, 그리고 그 짚으로 뒤범벅이 된 담요를 덮고 있는 모습이 오른쪽 아래에서 비추는 밝은 빛에 의해 생생하고 강렬하게 포착되었으며, 돌보는 이 하나없이 버려진 듯 외로워 보이는 소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56년 전 부산의 현실로 불러들이는 흑백 영상

   오른 쪽 위에서 사선으로 비춰 들어오는 햇볕이 너무도 밝고 강렬한 반면, 배경의 담벼락이나 담요의 그림자는 어둡고 무거운 석회색으로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강렬한 느낌의 흑백사진입니다. 또한 그 강렬한 빛에도 어린 소년의 표정은 무표정하고 무심한 듯 하여, 보고만 있어도 참 가슴 아프고 참 서럽게 느껴지는 사진입니다.

   마치 우리들 모두를 50여 년 전으로 되돌려 데려다 놓은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드는 선명한 사진입니다. 우리의 과거를 눈에 선하게 보여주는 듯 마술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며,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아픈 과거를 끄집어내 일러주는 듯 섬뜩하기도 합니다. 그 당시 한국전쟁의 현실 앞에 생각마저 멈춰버리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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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압루지 지역(ITALY, 1946, Abruzzi region) ⓒ 2008 Bischof



   이 사진은 전쟁이 끝난 1946년, 이탈리아 압루지 지방의 한 마을, 상로(Sangro) 성에서 찍은 감각적인 사진입니다. 전쟁 중에 숨진 사람의 어머니들이 사망한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 영혼을 기리기 위해 성전 앞을 여러가지 유품과 추모하는 기념품으로 장식해 놓은 모습입니다.

     전쟁의 슬픔에서 영혼의 고귀함을 노래한 사진작품

   뒷 배경이 되는 낡은 벽과는 대조적으로 그 위에 장식되어 있는 예수의 형상이나 꽃으로 보이는 장식품들은 흑백사진으로 언뜻 보아도, 유난히 화려해 보이고 아름답습니다. 또한 화면 가장자리의 명암이나 십자가 앞의 촛불에 비해 고개 숙인 십자가 형상과 아래의 꽃 장식이 특별히 더 밝게 묘사되어 있어 성스러운 신비감이 느껴지며 충만하게 베어있는 묘한 슬픔에 잠기게 만듭니다.

   위 작품은 현상하고 인화하는 기술적인 작업에서 예수의 형상과 장식에 빛을 더준 듯 밝은 효과를 내었고, 주변의 인화지 테두리를 태워 어둡게 만듬으로써 독자들의 시선을 모으고, 전체적인 애도의 분위기를 더욱 강조한 걸작입니다. 전쟁의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전쟁의 비열함에서 영혼의 위로와 인간성의 고귀함을 찾아낸 철학적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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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바덴-뷔르템베르그 지역(GERMANY, 1945, Region of Baden-Württemberg) ⓒ 2008 Bischof



   제 2차 세계대전 후인 1945년, 소련과 연합군의 반격으로 공습을 받았던 베를린(GERMANY, Baden-Württemberg)의 모습입니다. 방금 전, 폭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모든 건물이 마치 가루가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이사이 올 곧게 서 있는 나무와 어둡게 내려앉은 하늘을 배경으로 유난히 뾰족한 교회건물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전쟁의 허무함과 염세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진작품

   상황이 너무도 처참하고 스산하여 마치 비올 듯한 가을날의 풍경처럼 묵직하고 어두워 보입니다. 더불어 하늘도 슬픔에 젖은 듯, 특히 먹구름을 잔뜩 머금고 있는 뒷 배경이 독자들을 더 고통속으로 몰아 넣는 감각적인 영상의 흑백사진 작품입니다.

   특별히 화면 전체에 밝은 빛이 거의 없으며 어두운 회색 빛으로 통일하여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뭇잎 하나 없이 벌거벗은 듯, 가는 줄기만을 뻗고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앞 쪽에 배치하여 쓸쓸하고 허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염세주의(pessimism)적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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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차이나 통킹(INDOCHINA, 1952, Tonkin) ⓒ 2008 Bischof



   1952년, 인도차이나(넓게는 Myanmar, Thailand, Malay를 포함하여 프랑스령 지역) 통킹(Tonkin, 베트남 북부의 주요지역)에서 찍은 작품으로, 전쟁 중에 사망한 프랑스 병사들의 무덤 사진입니다. 프랑스는 독립을 재요구하던 인도차이나에 전쟁 전 보호령(섭정정치)을 내렸으며, 1945년과 1954년 사이 프랑스 국민들은 호치민(Ho Chi MINH)에 끌려가 베트남에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전쟁 당시의 과거와 새 땅의 현재를 대비시킨 걸작

   그러나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1954년 5월 7일, 디엔 비엔 푸(Dien Bien Phu, 라오스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 베트남의 북서부 지방)에서 베트남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후에 호치민의 북부와 프랑스의 남부로 나뉘어 지배를 받는 아픔의 역사를 안고 있는 지역입니다.

   화면이 아래 위로 이등분 되어 있는 구성으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흑백사진입니다. 들풀과 잎새 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된 아래 쪽은 어둡고 무거운 회색 배경에 빛을 받아 밝은 회색의 나무로 된 십자가와 팻말이 돋보여 더욱 인상적이며, 이미 끝나버려 정지되어 있는 과거의 기억을 보여주는 듯 회상하게 만듭니다.

  반면 이등분된 듯 분할된 구조의 위 쪽은,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짐을 지고 둑 길을 지나가는 세 사람의 동작과 실루엣이 살아 있는 듯 동적인 순간을 잘 포착하여 눈길을 잡아끄는 작품입니다. 전쟁의 아픔을 겪었던 어두운 과거와 그 땅에서 새로운 터전을 가꾸며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대조시켜 보여줍니다. 이로써, 마치 독자가 영화 한 편을 다 본 듯한 영상이 잔영처럼 남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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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의 미군 병사들(JAPAN, 1951, Okinawa) ⓒ 2008 Bischof



   위 사진은 1951년의 일본, 오키나와 비행장에서 쉬고있는 미군 병사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담고 있는, 창고의 시원한 느낌이 함께 전해지는 작품입니다. 멈춰 서 있는 거대한 비행기 앞에 지칠대로 지쳐 쓰러지다 싶이 누워 잠을 취하고 있는 가냘프고 나약한 병사들의 모습이 왠지 모를 서글픔으로 공허하게 다가옵니다.

     남, 북의 전시 상황을 일깨워주는 전쟁 보도사진

   위 사진에서 보면, 주변의 배경은 흑암으로 어둡게 처리하였으며, 상대적으로 거대한 비행기와 작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만을 밝은 윤곽으로 대비시켜 비행기의 날개와 사람의 실루엣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전쟁의 힘과 그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삶과 고통어린 모습을 대조시켜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영상만을 놓고 보면, 비행기의 디자인과 바람날개의 실루엣이 감각적이고 참 아름다운 사진이어서 그독자들의 시각과 뇌리에 림자처럼 오래도록 남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쟁의 고통과 어두움 속에서 아름다운 현실과 예술의 숨은 단편을 찾아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지금까지도 휴전상태입니다. 위 사진작품은, 비숍이 우리 모두에게 남과 북이 무기와 병력을 맞 배치한 채 아직도 서로를 경계하고 있는 전시 상황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는 듯, 무겁게 가슴에 와닿습니다.


   위와 같이 9점 모두 전쟁과 관련한 작품들이지만 비숍 특유의 시각과 예술적인 감각으로 인간의 모습과 내면까지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담아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와 소년들의 희생과 순수한 모습을 통하여 그 어떤 이유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힘주어 부르짖고 있습니다. 전쟁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 우리의 통일

   우리의 광복이나 주권 회복, 곧 우리민족의 독립과도 관련이 깊은 제 2차 세계대전은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유럽전역과 태평양 일대, 다시 말해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직, 간접적으로 휘말린 전쟁이었습니다. 그 성격은 상당히 다양해서 각기 다른 자국의 이익에 따라 각각의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 협력하거나 반목하면서 참여한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그 어떤 성격이나 각국의 이익과 세력 확대, 경제 전략, 또는 정치 이념에 따라 큰 과오가 있었거나 그로 인한 고통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역사를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역사는 또 다시 우리 모두의 현실로 살아 부활하여 고통 속으로 불러들일 것입니다.

   또한 나라를 위해 그 한 몸 바쳐 충성하다가 이름도 없이 죽어간 영혼들이나 피해를 본 사람들이 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시대를 초월하여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6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명예가 진실 그대로 회복되거나 의로운 죽음이 올곧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면 그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열린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의 63번 째인 "광복기념일"이 혹시라도 외면당하지 않기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그런 인식과 진실한 반성들이 일어나고, 그런 작업이 곳곳으로 확산되어 눈에 보이는 결실로 맺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사진과 역사를 다시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독립은 이런 과거와 역사의 진실을 깨닫고 회복시켜야 마무리될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광복은 그 때의 가슴아픈 전쟁으로 분단된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두 동강이 나버린 남과 북이 통일되어야만 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상으로 비숍의 전쟁보도 사진작품을 모두 감상하였으며, 전쟁과 관련한 감각적인 사진들은 거의 다 추려 살펴본 셈입니다. 이렇게 그의 보도사진들을 소개하였으며, 그의 유명한 사진들 대부분이 이렇게 전쟁관련 작품들이어서, 혹시라도 비숍이 이런 보도사진들만 발표한 것으로 인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소개하였던 것처럼,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과 주변 환경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낸 목가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그리고 도회적이면서도 인간답고 따듯하며 아름다운 구성의 그의 사진들이 실제 더 많습니다. 여러 이유로 쉽진 않겠지만, 앞으로 기회를 보아 한번 더 소개할 생각이므로 기대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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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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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도서관을 수호하라!

    Tracked from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2008/08/15 08:09  삭제

    해방 후 서대문 형무소에서 풀려 나와 만세를 외치는 출옥 애국인사들과 이를 환영하는 시민들 8월 15일 오늘은 다들 아시다시피 광복절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날을 기념해 ‘광복절 기념행사’다 뭐다 떠들썩하네요. 하지만 저는 광복절을 맞이해 진행하는 떠들썩한 ‘행사’에 관심이 가기 보다,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되네요. 바로 해방이후 일제로부터 도서관을 수호하고 우리의 문헌들을 지키고자 온몸을 바쳤던 ‘박봉석(朴奉石, 1905~?)’ 선생님입니다. 우..

  2. Subject: 전국 최초의 여성집단 항일운동의 주인공은 제주해녀들이었다.

    Tracked from 비바리의 숨비소리 2008/08/15 14:11  삭제

    (사진/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광복의 기쁨을 피부깊이 느끼지 못한 세대이지만 , 길거리마다 나부끼는 하얀 태극기를 보노라니 그래도 가슴에 뭔가 뭉클함이 느껴지는 날이다. 일제에 맞서 싸웠던 자랑스런 우리선조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지않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오늘같은 날 꼭 기억해야 할 또 다른 분들이 있어 자료를 정리해 본다..그들은 다름아닌 제주의 해녀들이다.. 전국 최대규모의 최초 여성집단의 항일운동이자 어민 운동을 벌였던 자랑스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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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고보니 곧 광복절이군요

    제생각에 사진도 상당히 주관적이라 생각합니다.
    찍는이의 시선과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이죠

    아무튼 사진 잘보고 갑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네요 ^^

    • 피구님, 반갑습니다.
      오늘, 아니, 어제는 분명 북경 소식인, 우리 축구 얘길 올렸을까요... 궁금해 찾아가야겠습니다.

      컬러사진보다 흑백사진은 특히 더 여백이 있어 생각에도 여유를 더 안겨주는 것 같아요. 그 정갈함이 인상과 기억에도 더 오래 남는 것 같구요.

  2.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ㅠㅠ

    • 동감, 동감입니다. ^^
      전쟁 반대, 평화주의자입니다. ㅋㅋ

      아, A2 님이 그동안 군 입대로 보기 어려웠었는 줄을 제대한 지도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이 불찰을 용서하시지요...
      열정적인 블로깅과 건강한 사회생활로 그 행복함 계속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응원하고 주문 걸어두겠습니다.

  3. 엮인글을 통해서 왔습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걸 감사드리며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 하늘바다님, 이렇게 방문해서 댓글로 의사소통까지 함께 나눠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왕래하며 종종 볼 수 있길 바랍니다~~

  4. 전쟁게임을 즐겨하며 입으로 피스를 외치는....
    인간이 원체 호전적인 동물입니다. ㅠㅠ

    베르너 비숍처럼 전쟁다큐작가들의 살신성인의 노력이 있어 우리들이 전쟁에 대해서 한번더 생각해 볼수 있지요~..

    • 맞습니다. 이터님 말씀처럼, 이런 보도작가들이 있기에 현실을 부르짖는 멋진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거겠지요...??
      특히 이런 기념일에는 더욱더...

  5. 베르너 비숍.. 진한 감동을 주는 작가네요.
    초하님 글은 항상 진지하고 알이 꽉찬 듯합니다. 덕분에 저도 잠시나마 진지한 시간을 갖습니다. ^^

    • Jorba 님도 정말 오랫만에 뵙습니다.
      진지하다 못해 넘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까가 항상 저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의미있는 광복 기념일되시길 바랍니다.

  6.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다른 해와는 조금 다르게, 광복절관련 행사가 왕왕 눈에 띄는군요. 얼마전에도 독립문에 야외무대를 개설해 놓고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걸 스쳐지나가며 봤습니다.

    좋은 글과 사진 보고 갑니다.

    • 뚱이님, 다녀가셨군요. 반갑습니다.

      의미있는 좋은 행사들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비숍의 작품들, 좋은 글로 과찬의 말씀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원한 하루보내시길 바랍니다.

  7. '진정한 독립은 과거와 역사의 진실을 깨닫고 회복시켜야 마무리된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네요. 비숍의 사진은 언제나 가슴 아프고요. 저도 과거와 역사를 회복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글 하나 썼답니다. 엮어놓고 갈께요~
    그리고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답니다. 초하님도 건강히 잘 지내시고 계신지요? 항상 몸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

    • 리브홀릭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ㅎㅎ 비숍의 사진이 가슴 아픈 감동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잖아도 제가 그런 사진들을 먼저 소개하는 바람에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면 어떻하나...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동참하신 리브님의 글들도 지금 곧 찾아가겠습니다. 늘 챙겨주시는 분도 계시고, 또 보기에도 건강해보여서, 실은 넘치도록 건강하게 잘 지내시리라 믿는답니다. 제 안부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8. 엮인글을 통하여 들어왔는데..38세 짧은생을 마감한 비숍의 주옥같은
    귀한 작품들을 이렇게 볼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올림픽이 열리는 가운데에서도 지구 한쪽에서는 전쟁이 발발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어 마음이 아픈데.. 사진 하나하나를 보니 정말 이 세상에 전쟁이란 제발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귀한 작품 잘 보고 갑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 ㅎㅎ 그러면 비바리님은 제 방엔 처음이시로군요. ^^ 정말정말 반갑고 또 이렇게 과분하도록 좋은 평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잖아도 러시아-그루지야의 전쟁 소식에 가슴이 덜컹했답니다. 세계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가들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비바리님의 방문과 댓글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9. 초하님 블로그에서 비숍과 그의 사진들을 접하게 된 것,
    이런 게 바로 블로그를 찾는 보람이고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작은 사진 한장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깊은 감동으로
    공명하게 되는군요. 좋은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 ㅎ 컴속의 나님의 댓글이 눈물겨울 만큼, 제게 더 감동을 줍니다. 위 비숍의 흑백 사진작품들을 통해서 기쁨을 찾으셨다니, 저도 더불어 반갑고 이렇게 어렵게 블로깅을 하는 것에 대한 보람이고 그 무엇보다도 큰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저도 사실 사진을 알게되고, 또 그 사진을 직업으로 삼았던 비숍과 같은 보도사진가를 알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또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기쁨인지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힘이 되고, 그렇기에 먼 훗날에 의미있는 사진을 찍을 아마추어 사진가를 꿈꾸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댓글을 통해 컴님과 공감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또 비숍을 알게되어 감사하고, 그런 작품을 위해 그의 생을 바쳤던 열정과 그의 삶을 존경합니다. 더불어 그에게 감사하는 밤입니다.

  10. 전에 천식을 앓았던 저는
    몇 해전까지 집근처종합병원내과의사에게 의지를 했었어요.
    기온차가 심할 때는 지레 겁먹고 병원에 내 발로 간 적도 있어요.

    초하님이 내 건강까지 챙겨주시니, 고맙수.
    저는 대전CBMC수련회에 와 있어요.
    전국모임이기에 축제같아요.

    저는 이미 늙은 자로
    옛날부터 지금까지 자본주의문명과 이기에 단 맛을 들인자이기에
    초하님 블로그에 누를 끼치는게 아닌가, 해요.

    평안하셔요.

  11. 세상에 천재나 수재가 많고 많지만, - 제가 보기에 - 비숍은 분명 천재였을 겁니다. 사진을 기술로 보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요, 저는 사진은 절대 '기술'이 아닌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지구에 너무 짧게 왔다 갔습니다...쩝

    • 상천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아마도 비숍은 따듯한 가슴을 가진 열정적인 천재였을 겁니다.

      서른 여덟의 짧은 생을 마감한 것만은 분명한데 그 동안에 남긴 것과 알려진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리 서운하진 않답니다. 다 소개 못하는 것이 늘-- 더 큰 아쉬움이랍니다.

  12. 그러고 보면 전쟁을 경험하신 부모님이나 할머님이 전쟁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릴적 아주 가끔 "6.25 때는 이것도 없어서 못먹었다."는 게 전부였던 것 같네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서 잊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제는 6월 22일, 일요일로 "일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였습니다. 오늘은 6월 23일, 월요일이니, 이틀 뒤면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인 한국전쟁 58주년 기념일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에게 "광복"이란 의미는, 100년 전 즈음인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이 붕괴되면서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국권을 빼앗긴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뒤 200만명의 인원이 참가하였던 1919년 3·1운동을 비롯하여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35년간 민족해방을 위한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습니다.

     주권을 빼앗긴 역사는 또 다시 한국 전쟁으로 

   그러던 1941년 12월에 시작된 제 2차 세계대전은, 1943년 들어 연합국의 우세가 확실해졌습니다. 이렇듯 광복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에 패하여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날까지에 대해서 적용되는 반일 민족독립의 사상과 운동, 관념을 포괄하는 의미입니다.

   1945년 8월 6일, 일본의 나가사키(長崎), 히로시마(廣島)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8월 9일 얄타협정에 따라 러시아가 대일 선전포고를 한데 이어, 38선 전역을 점령하였고, 러시아의 남하를 우려한 미국이 38선 분할안을 제기하였습니다. 사흘 뒤인 9월 8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였으며, 마침내 한반도는 자유주의 미국과 사회주의 러시아가 나누어 점령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주권을 빼앗긴 한번의 역사는 5년 뒤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로 다시 드리웁니다. 이는 반 세기가 훌쩍 흐른 지금까지도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과 같은 이념 논쟁이나 총기난사 사건으로 그 관련 가족과 온 국민이 오열하였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 주변의 현실과 잔영으로 따라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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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숍(Werner Bischof)의 홈페이지에서 관리되고 있는 그의 초상 사진 ⓒ 2008 Bischof


 
   이러한 현실이 그 어떤 이유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감상할 작품들도 그런 우리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과 현실을 실감나게 담아낸 보도사진가(photo journalist),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 Swiss, 1916-1954)의 전쟁 관련사진 9점입니다. 바로 58년전 오늘, 비숍의 눈을 통해 본 전쟁 관련 사진들을 함께 감상함으로써, 그 참혹했던 한국전쟁의 역사를 되돌아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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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숍의 사진에는 자연에서는 담아낼 수 없는 그만의 감성과 애정어런 아름다움이 오롯이 담겨져 있습니다. 특히 전쟁과 관련한 그의 사진에는 인간의 내면을 읽어 표현해주는 독특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래 작가의 사진들을 귀 기울여 감상하고 있으면, 전쟁 당시의 실감나는 상황과 그 현장에서 일어나는 소리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들려오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관련 사진집도 이미 8권이나 출판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의 유명한 작품들에 비하면 작가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의 개인 누리방에 붙여져 있는 설명조차도 남쪽과 북쪽을 바꾸어 달아 놓았거나 지명을 잘못 표기하는 등, 지금도 바르게 관리되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음을 밝혀둡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비숍과 관련한 글을 이미 세 번(아래 비숍 관련글로 링크)이나 실었고, 이 한국전쟁 사진 관련 글이 벌써 네 번째입니다. 그러므로 작가에 대한 자세한 소개나 약력은 그 글들을 더 참조하시고, 오늘은 전쟁과 관련한 그의 저널리즘과 세계적인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며, 사진 감상에 도움이 되도록 정리하였습니다.

     용기있는 사랑으로 철학적인 나눔을 실천했던 비숍

   스위스의 사진가, 비숍은 1916년에 쮜리히(Zürich)에서 태어났습니다. 1932-6년까지 그 곳에서 예술과 기술공부도 했으며, 1942년 광고사진 작업실을 열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쮜리히를 중심으로 한 풍경사진이나 조형미를 강조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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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황폐와 식민주의의 해체, 냉전이라는 격동의 세계를 맞으면서 예술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습니다. 그러던 비숍은 인간과 제 문제에 대한 열정적인 기록자, 살아 숨쉬는 현장을 전달하는 보도사진가로서의 변신을 꾀합니다.

   실제로 1945년에,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지의 피난민을 찍어 유럽의 전쟁참상을 보도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또한 1948년에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를 여행하며 취재한 작품들이 라이프(LIFE) 잡지에 실리면서 평가에 있어서도 대호평을 받았습니다.

      ▲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촬영한 비숍의 자화상(Self-portrait of Werner BISCHOF
                                   in his studio), SWITZERLAND, Zurich, 1940.  ⓒ 2008 Bischof

    그는 슬픔을 담은 인간의 얼굴에서부터 활력 있는 인간의 정신까지 담아냈던 것입니다. 또한 전쟁과 기아의 상흔에서부터 전통문화의 단순한 진정성에 이르기까지, 비숍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현실을 용기있는 사랑과 철학적인 시선으로 기록해 보도했던 것입니다.

   그는 사진이 우리의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인도의 참상을 보도함으로써 국제적인 무상지원이라는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하였습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서른여덟 해의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사진으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지켜 실천했던 예술가였습니다.

     38세의 이른 나이, 안데스에서 사진에 대한 열정을 거둔 비숍 

   1949년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보도사진가 단체 "매그넘포도(Magnum Photos, 세계대전과 9. 11 사태를 비롯하여 세계의 사건들을 보도하는 사진가들의 모임)"에도 가입하여 활동하였습니다. 1951년 라이프지의 일로 인도에 가서 민중의 기근을 촬영했는데, 이것이 미의회를 움직여 대량의 밀가루를 인도의 기근을 위해 보내게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때부터 그의 시선은 민중의 일상 속으로 철저히 파고 듭니다. 처음 소개했던 노동자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나 오늘 사진들과 같이 전쟁의 잔혹한 실체와 적나라한 현실을 독자들에게 여과없이 보여줌으로써 국제적인 구호활동을 선도하게 됩니다. 1952년에는 한국에 와서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촬영했으며, 이 때 찍은 사진이 오늘 소개하는 바로 아래 작품들입니다.

   아메리카 대륙, 멕시코를 취재하고 칠레를 거쳐 페루를 여행하던 가운데 1954년 5월 16일, 안데스의 한 낭떠러지로 추락하면서 불행하게도 큰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치료 받던 가운데 며칠 후인 5월 24일, 마침내 그의 나이 겨우 38세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사진에 대한 젊은 열정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시각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흑백사진으로 표현된 비숍의 예술적 재능은 정평이 나있는데, 사건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에 와서도 그의 작품들은 "조형적인 바탕 위에 국제적인 감각과 시인적인 감성이 고도로 융합되어 있다"는 극찬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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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을 취재나온 국제 보도사진 기자들(Kaesong, International Press photographers covering the Korean War) ⓒ 2008 Bischof


  
     기자들의 사실적인 모습과 카메라의 역사를 담고 있는 사진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개성에 취재나와 있던 국제 보도사진 기자들의 모습입니다. 한국전쟁의 실상이 실제로 알려졌던 내용과 짐작하거나 상상했던 것에 비교하면 기자들의 숫자도 상당히 많으며, 모두 한결같이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어 같은 학교 학생들인 것처럼 그 표정도 닮아 보입니다.

   또한 그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주의해 살펴 보면, 불과 50여 년 전의 사진기들인데도 그 크기와 모양이 무슨 무기라도 되는 양, 그 크기가 놀랍도록 크기도 하고 또 작기도 하지만, 무척 이색적이며 그 모양도 참 다채롭습니다. 비록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이처럼 사진기의 기종과 그 변천사도 엿볼 수 있어 재미를 더해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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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에 설치된 유엔 재교육 캠프(Island of Koje, U.N. Re-education camp) ⓒ 2008 Bischof



     남북 모두 전쟁의 포로요, 피해자들임을 설명해주는 사진

   한국전쟁에 대한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남북 모두 전쟁 포로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남쪽을 점령하고 있던 유엔(U.N.)이 정치적 적응과정을 위해, 중국과 북쪽 포로들을 재교육하고 있는 거제도 막사 안의 모습입니다.

   예상보다 큰 건물이지만 허술해 보이며 그 안데 빼곡히 들어 안아있는 모습이 숨을 쉬기도 어려워보입니다. 화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뒷 모습의 교육자는 팔동작조차 힘있게 표현되어 있는 반면, 형체만 보이는 수많은 포로들의 고정된 시선과 구부정한 앞 모습이 참 대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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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유엔 재교육 캠프에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포로들(island of Koje, U.N. Re-education camp, prisoners waiting for medical treatment) ⓒ 2008 Bischof



     외상이 아닌 마음과 정신에 더 큰 상처를 받은 전쟁 포로들

   역시 중국과 북쪽 포로들을 위한 거제도에 있던 재교육 막사 안의 정경입니다. 북쪽 포로들이 잠자리 용으로 지급된 듯한 얇은 담요를 모두 똑같이 뒤집어 쓴 채, 치료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깊은 주름과 포기한 듯한 시선으로 포로들의 고통을 대변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화면의 앞쪽을 어둡고 무겁게 처리한 안정된 구도로 주인공들의 내면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자(관객)를 직시하고 있는는 포로들의 주름진 표정과 살아있는 눈동자를 통하여 전쟁의 잔인함과 전쟁에 대한 반항(반대의견)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보고있는 독자에게도 그 섬뜩함이 전해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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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북한 포로들을 위한 캠프(Island of Koje Do, A camp for North Korean prisoners of war) ⓒ 2008 Bischof



     막사 안의 사람 냄새나는 정경을 정겹게 묘사한 사진

   이 사진 역시 한국전쟁 당시 북한포로들을 가두어 두고 재교육한다는 명목으로 지어놓은 거제도 막사 안 풍경입니다. 담장을 대신하여 쳐진 가시가 돋은 철망이 허술해 보이며, 그 철조망 사이로 모자를 쓴 간부로 보이는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철조망에 널어 놓은 빨래의 실루엣 사이로 보이는 영상이 정겹기도 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신을 가두어둔 그 철조망 위에 옹기종기 널어놓고 따스한 햇볕에 말려 둔 빨래(세탁물)들이 참 정겹고 전쟁 상황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인간적으로 다가옵니다. 휴전은 위도 38도선을 따라 한국을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 분단시켜 놓았지만, 철조망과 그 위에 얹어놓은 빨래 사진을 통하여 비숍은 전쟁이 인간의 감정마저 단절해놓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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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북한 포로들을 위한 캠프(Island of Koje, A camp for North Korean prisoners of war) ⓒ 2008 Bischof



     생동감과 자유로움이 살아있는 전쟁 보도사진

   1950-53년 사이에, 남한을 돕기 위해 연합국이 결성되었으며, 중국이 북한을 도우러 왔었던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북한 쪽 내부 모습입니다. 큰 자유의 여신상 앞, 광장에서 포로들이 사각으로 돌며 춤을 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훈련을 받으며 운동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철조망 안에 있는 포로 수용소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지만, 그 앞에서 가면을 쓴 채 춤을 추게 된 포로들의 모습과 동작이 재미있다기 보다는 애처럽게 다가옵니다. 화면 안의 상황은 운동의 연장이거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보이나 주인공들의 모습이 생동감있고 구성도 자유롭게 묘사되어 서럽도록 아름답게 가슴에 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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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장리 마을 사람(Village of San Jang Ri) ⓒ 2008 Bischof



     극적 구성으로 숨어있는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진

   남한과 북한 사이의 최전선에 위치한 상장리 마을에서 비숍이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어둡고 비좁은 방 구석에 아파서 누워있는 한 남자의 모습과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한 아들의 안타까운 표정만으로도 전쟁의 상처와 고통이 고스란히 실감나게 전해져오는 작품입니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시선을 잡아 끄는 구도입니다. 화면 앞 쪽 아래를 어두운 방으로 배치하였으며, 오른 쪽 위 사선으로 창 같은 작은 문을, 그리고 그 작은 문 안에 왼 쪽 손을 짚고 바라보는 소년을 그 문의 오른쪽으로 몰아 구성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왼 쪽 가운데 윗 부분 밖에서 오른 쪽 사선으로 비춰들어오는 빛을 잘 활용한 작품입니다. 마치 사선으로 떨어지는 빛을 조명으로 연출한 것처럼 밝고 환하게 담아냄으로써 많은 이야기와 희망적인 미래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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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가장 어린 포로(구성원)(Island of Koje, The youngest member) ⓒ 2008 Bischof



     전쟁의 뒷 면과 숨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

   역시 거제도의 북쪽 포로들을 위한 수용소입니다. 앞 왼 쪽으로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다른 인물들은 전체적인 윤곽만으로 마치 배경인 양, 형체만 실루엣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나이 많은 동료들과 똑 같은 모양의 군복을 입은 여섯 내지 일곱 살 가량의 주인공인 소년은 정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경의 포로들과는 대조적으로 자기 몫으로 배급된 제 체격에 비해 제법 많아 보이는 양의 국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을 챙겨 받아 들고 있는 천진난만한 모습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으며, 예기치도 못한 이런 상항에서 뒷 쪽의 수많은 포로들의 뒷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어린이의 앞 모습과 표정은 비교적 맑고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어린이의 순수한 모습을 통하여 비숍은 전쟁 뿐만 아니라, 휴전과 냉전의 뒷 모습과 단면에 대한 단호한 주장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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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쟁 당시, 부산 근처의 시내(Town of Pusan during the Korean War) ⓒ 2008 Bischof



     한국전쟁의 고통과 그 현실을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

   1952년에 한국전쟁 당시 비숍이 부산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전쟁 동안 한국의 수도는 부산으로 남하하였습니다. 제한된 세계인 답답한 공간 안에 가둬진 듯, 길거리 양지 바른 구석에 모여있는 고아로 보이는 세 소년의 꼬질꼬질한 모습과 각기 다양한 표정을 몸서리쳐지도록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누추하고 허름해 보이는 차림의 아이들은 추위에 대한 공포와 현실에 대한 고통으로 한결같이 울상인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맨 앞 쪽 아이의 얼굴에 나타난 불확실한 표정을 통하여 그 당시의 상황과 두려움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비숍은 한국전쟁 뿐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아시아의 어린이들도 이런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이전에 비숍이 찍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생겨난 유럽의 고아들과도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그가 전쟁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주요 주제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그 무엇으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힘주어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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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유엔 재교육 캠프(Island of Koje, U.N. Re-education camp) ⓒ 2008 Bischof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이 사진도 마찬가지로, 유엔이 중국과 북한 포로들을 재교육하는 수용소와 그 수용소를 지키며 보초를 서고 있는 막사의 풍경 일부입니다. 그 막사를 배경으로 저녁 햇살이 떨어고 있으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찬거리로 보이는 것들을 묶어 머리에 인 채, 그 곁을 무심히 지나가고 있는 인근 마을 주민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대조적으로 묘사한 영상입니다.

   산새와 3층 높이의 초소를 뒷배경으로 배치한 구도, 전체적인 윤곽과 실루엣, 그 실루엣을 비추는 빛의 처리가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저녁 어스름 집으로 향하는 저고리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흑색으로 어둡게 강조하여 표현되어 무척 푸근하고 따듯하게 느껴집니다.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대조적인 풍경이 서로 현존한다는 사실이 더욱 서럽고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입니다. 전쟁 가운데에서도 가족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모성애를 발휘하는 어머니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어 보면 볼수록 가슴과 기억에 오래오래 남게 되는 작품입니다.

     고통스런 인간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비숍의 작품들

   이렇듯, 비숍은 다양한 보도사진들을 통하여 전쟁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그 내부에 숨겨진 고통의 진실과 전쟁의 참상을 소리높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전쟁은 슬픔과 고통 뿐만 아니라 그 뒤에 감춰진 인간의 희망과 아름다움도 함께 담아내고 있습니다.

   38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여 사진의 역사에 이름을 일찍 올렸으나 앞에서 소개한 여러 작품들에서도 확인하였던 것처럼, "인간의 고통스런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예술가"로,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살아 남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후대들도 그렇게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사망한 이튿날인 1954년 5월 25일에 로버트 카파(Robert Capa, 헝가리, 1913-1954)도 불인전선에서 지뢰를 잘못 밟아 사망하였습니다. 카파가 철저히 대상의 현실성을 냉엄하게 표현했던 반면, 비숍은 종교적 평화주의자처럼 이기고 진 나라에 상관없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실상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가슴으로 사진에 담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의 작품 활동 초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로 표현했으나, 각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그의 눈과 관심을 현실적인 세계로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민중의 생활 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들의 내면적인 기쁨과 슬픔을 몸소 느끼고 묘사했던 것입니다.


   위의 전쟁의 현실과 그 진실을 그대로 전해주는 베르너 비숍의 작품들을 감상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와 광복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보았습니다. 다시는 온 누리에 이렇게 가슴시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이 되살아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디지털 화면의 제한으로 비숍의 더 많은 전쟁사진들을 다 감상할 수 없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세계전쟁 사진을 다음 연재기사로 한번 더 함께 감상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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