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일본의 강제합병으로부터 주권을 되찾은 지 63주년,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8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올 8월의 여름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혹시라도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하여 그냥 외면 당하는 광복 기념일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정계를 비롯하여 재계나 우리 국민모두 가슴 아픈 우리의 과거와 역사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그 역사와 진실 앞에 당당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호소력 깊은 부르짖음, 비숍의 전쟁 보도사진
그 일환으로 지난 6월 23일, "한국전쟁" 기념일을 즈음하여 소개하였던 비숍(Werner Bischof, 스위스, 1916-1954)의 한국전쟁 사진 9점에 이어, 오늘도 제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전쟁사진 작품 9점을 모아 함께 감상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삶과 인간성마저 유린, 말살되어버린 전쟁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어떤 이유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비숍의 강한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관적인 그림보다는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사진을 더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필자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사진은 인간의 진솔한 삶과 그 시대를 포함하여 그 순간, 그 당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장점 때문입니다. 또한 백 마디의 말보다도 더 호소력 짙은 진실한 현장과 그 현실을 통한 말없는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 비숍의 전쟁보도 사진들이 특히 더 그렇습니다. 현재 그의 사진들을 모은 8권의 작품집이 이미 출간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Werner Bischof(Phaidon 출판사)"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는 그의 사진집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구입하셔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이따금씩 헌책방에서도 보석 줍듯 발견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비숍의 명성이나 널리 알려진 그의 사진에 비하면 그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으므로, 그의 약력과 소개는 앞에서도 여러 번 소개한 내용들도 참고해주시고, 오늘은 전체적인 그의 삶과 사진세계, 작품사진을 위주로 감상하겠습니다. 아래 감상하는 것보다도 더 잔인하고 참혹한 내용의 사진도 있었으나 차마 싣지 못했음을 자백합니다.
비숍의 초상과 소개, 사진작품과 설명은 "사진의 세계역사(A World History of Photography)"란 책과 가장 유명한 사진가들의 모임인 매그넘 포토(http://www.magnumphotos.com), 그리고 현재 그의 아들이 관리하고 있는 비숍의 누리방(http://www.wernerbischof.com)에서 도움받아 실었고, 번역하여 덧붙여 정리한 것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꼭 방문해 둘러보시고, 즐겨찾기라도 해두었다가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수준높은 작품들도 시간 날때 여유있게 만나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오늘의 작품들과 앞에서 연재했던 지난 6월의 한국전쟁 관련, 여행을 재촉하는 서정 깊은, 희망을 노래한 인간성 짙은 사진들도 이 기회에 꼭 둘러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외에도, 도회적인 이미지를 감각적인 시각으로 담아낸 비숍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가을 즈음하여 앞으로 한번 더 소개할 계획에 있습니다.
짧은 생을 마감했던 평화주의자, 비숍
비숍(Werner Bischof, 1916-1954)은 전후 시대의 대표적인 보도사진 작가였습니다. 1949년에는 ‘매그넘(Magnum)'이라는 유명한 보도사진 작가협회의 회원에 등록함으로써, 전 세계의 신문, 잡지에 보도사진을 제공하며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얻었습니다.
특히 1942년 창간된 스위스의 미술잡지 "DU"의 일원으로도 참가하여 주로, 풍경, 동물, 식물 등을 찍어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45년에는 유럽의 전쟁참사를 기록하기 위하여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지의 피난민을 찾아다니기도 하였습니다.
1948년에는 헝가리를 비롯하여 유럽을 여행하며 취재한 작품들이 "라이프(LIFE)" 잡지에 실리면서 더 유명해졌습니다. 이렇게 취재여행을 다니던 가운데, 1954년 그의 나이 38세의 한창 젊은 때에 안데스 산맥의 한 낭떠러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안타깝게도 그의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세계적인 보도사진가들 가운데 가장 평화주의자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만큼 비숍의 사진들은 그것이 전쟁과 관련한 사진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인간다운 애정과 삶의 아름다움을 함께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민중의 생활 속 깊이 숨어 있는 각 민족 그들만의 기쁨과 슬픔을 몸소 느끼고 담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통해 어린 아이의 존엄성을 부르짖는 사진 (1)
가슴 저미도록 인간적인 위 작품은 1947년 헝가리의 하두하다자(HUNGARY, Hajduhadhaza) 지방에서 찍은 사진이며, 전쟁으로 부모와 집을 잃게 된 어린 고아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위 소년을 포함한 헝가리의 이 아이들은 다양한 일터에서 일을 배우고, 시민 소유의 땅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어릴 적 모습 같은 저 선한 눈동자에서 흐르는 눈물이 닭 똥 같다는 표현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닭 똥 같은 눈물과 콧물이 떨어지는 처절하도록 생생한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그의 열정과 예술성이 최고조에 달한, 소위 말하는 "순간 포착" 절정의 작품입니다.
생을 초월한 듯 오히려 담담해 보이는, 소녀의 해맑은 눈동자에서 떨어지는 저 눈물을 손으로라도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이처럼 비숍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이 소녀와 같은 어린 아이들이라고 호소력 짙게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전쟁이 있던 당시 대한민국의 수도는 부산이 되었으며, 1950년과 1953년 사이에 사회적 평등을 주장하던 북한은 남한에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자유주의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연합(United Nations)은 남한 쪽에 합류하였으며 중국은 북한 쪽을 원조하였습니다.
전쟁을 통해 어린 아이의 존엄성을 부르짖는 사진 (2)
그러던 가운데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대한민국은 38선을 따라 북한과 남한으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런 전쟁상황의 부산에도 살던 집과 돌보아주던 부모 마저 잃고 아무 것도 모른 채 공포에 떨며 혼자 떠돌아다니던 아이들이 많이 늘어난 상황이었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앞 쪽 양 옆으로, 앞을 보고 서 있는 두 어른을 어둡고 흐릿하게 배치시킴으로써 마치 거대한 산이나 38선의 장벽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 사이에 너댓 살로 밖에는 안 보이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밝고 천진난만하게 담아냈습니다.
누더기가 다 된 겉 옷과 신발, 추워보이는 듯 주머니에 양 손을 쑤셔넣은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말을 잃은 듯, 할 말이 없어집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옷과 주머니에 걸쳐 넣은 손, 그리고 순수한 얼굴 표정이 역광을 받아 밝고 희망을 주는 듯 생생합니다.
비숍이 1945년, 네덜란드 발체렌시에서 찍은 사진작품입니다. 마치 병사라도 된 것처럼 총을 메고 군복에 매력적인 모자까지 멋을 내 약간 옆으로 눌러쓰고 있는, 아주 어린 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전쟁을 통해 어린 아이의 존엄성을 부르짖는 사진 (3)
서너 살로 밖에는 안 보이는 앙증맞은 아이의 모습이 인형처럼 마냥 귀엽게만 보여서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전쟁의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제법 멋스럽게 현대적인 감각의 옷들을 챙겨 입혀놓은 모습이고, 거기에 실제 총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쟁에 쓰이는 긴 총까지 메고 있어서 무척 대조적입니다.
전쟁의 여파로 보이는 무너진 담벼락과 총에 맞아 구멍나고 떨어져 나간 담장, 그리고 나무 판자를 임시방편으로 막아놓은 뒷 배경의 모습이 전쟁 상황임을 실감나게 합니다. 또한 아이의 복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표정만큼은 당당하고 해맑고 순수해 보여 오히려 보고 있는 독자(관객)의 시선을 난감하게 만듭니다.
비숍이 1941년, 스위스에서 찍은 사진으로, 산악여단 병사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담아냈습니다. 거칠은 바위로 보아 산악과 산새가 무척 가파르고 험준해 보이며,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 즈음으로 보입니다.
전쟁의 현실과 인간의 존엄성을 대조시켜 보여주는 흑백사진
흑백 사진이기에 이런 바위의 거친 질감과 날카롭고 육중한 느낌이 더 잘 표현되었으며, 병사들의 곱고 흰 군복과 대조적입니다. 거친 바위는 어둡고 참담한 전쟁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며, 통일된 흰 군복의 어린 병사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위 사진과 마찬가지로 군복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한 채 오른 손에 총을 한 자루씩 들고 왼 손으로 투박한 바위를 더듬어가며 산을 오르는 맨 앞 오른 쪽 소년의 얼굴 표정을 잘 담아냈으며, 무척 어린 소년으로 보입니다. 전쟁이 무엇인지,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를 것만 같은 소년의 표정이 참 안타깝고 참담하게 다가옵니다.
1952년 한국전쟁 당시 남한의 수도였던 부산에서 찍은 사진으로 아파서 누워 있는 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이나 금이 가 있는 낡은 건물 벽, 맨 바닥에 아무렇게나 깔려있는 가마니, 그리고 그 짚으로 뒤범벅이 된 담요를 덮고 있는 모습이 오른쪽 아래에서 비추는 밝은 빛에 의해 생생하고 강렬하게 포착되었으며, 돌보는 이 하나없이 버려진 듯 외로워 보이는 소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56년 전 부산의 현실로 불러들이는 흑백 영상
오른 쪽 위에서 사선으로 비춰 들어오는 햇볕이 너무도 밝고 강렬한 반면, 배경의 담벼락이나 담요의 그림자는 어둡고 무거운 석회색으로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강렬한 느낌의 흑백사진입니다. 또한 그 강렬한 빛에도 어린 소년의 표정은 무표정하고 무심한 듯 하여, 보고만 있어도 참 가슴 아프고 참 서럽게 느껴지는 사진입니다.
마치 우리들 모두를 50여 년 전으로 되돌려 데려다 놓은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드는 선명한 사진입니다. 우리의 과거를 눈에 선하게 보여주는 듯 마술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며,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아픈 과거를 끄집어내 일러주는 듯 섬뜩하기도 합니다. 그 당시 한국전쟁의 현실 앞에 생각마저 멈춰버리게 만듭니다.
이 사진은 전쟁이 끝난 1946년, 이탈리아 압루지 지방의 한 마을, 상로(Sangro) 성에서 찍은 감각적인 사진입니다. 전쟁 중에 숨진 사람의 어머니들이 사망한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 영혼을 기리기 위해 성전 앞을 여러가지 유품과 추모하는 기념품으로 장식해 놓은 모습입니다.
전쟁의 슬픔에서 영혼의 고귀함을 노래한 사진작품
뒷 배경이 되는 낡은 벽과는 대조적으로 그 위에 장식되어 있는 예수의 형상이나 꽃으로 보이는 장식품들은 흑백사진으로 언뜻 보아도, 유난히 화려해 보이고 아름답습니다. 또한 화면 가장자리의 명암이나 십자가 앞의 촛불에 비해 고개 숙인 십자가 형상과 아래의 꽃 장식이 특별히 더 밝게 묘사되어 있어 성스러운 신비감이 느껴지며 충만하게 베어있는 묘한 슬픔에 잠기게 만듭니다.
위 작품은 현상하고 인화하는 기술적인 작업에서 예수의 형상과 장식에 빛을 더준 듯 밝은 효과를 내었고, 주변의 인화지 테두리를 태워 어둡게 만듬으로써 독자들의 시선을 모으고, 전체적인 애도의 분위기를 더욱 강조한 걸작입니다. 전쟁의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전쟁의 비열함에서 영혼의 위로와 인간성의 고귀함을 찾아낸 철학적인 작품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인 1945년, 소련과 연합군의 반격으로 공습을 받았던 베를린(GERMANY, Baden-Württemberg)의 모습입니다. 방금 전, 폭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모든 건물이 마치 가루가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이사이 올 곧게 서 있는 나무와 어둡게 내려앉은 하늘을 배경으로 유난히 뾰족한 교회건물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전쟁의 허무함과 염세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진작품
상황이 너무도 처참하고 스산하여 마치 비올 듯한 가을날의 풍경처럼 묵직하고 어두워 보입니다. 더불어 하늘도 슬픔에 젖은 듯, 특히 먹구름을 잔뜩 머금고 있는 뒷 배경이 독자들을 더 고통속으로 몰아 넣는 감각적인 영상의 흑백사진 작품입니다.
특별히 화면 전체에 밝은 빛이 거의 없으며 어두운 회색 빛으로 통일하여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뭇잎 하나 없이 벌거벗은 듯, 가는 줄기만을 뻗고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앞 쪽에 배치하여 쓸쓸하고 허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염세주의(pessimism)적인 작품입니다.
1952년, 인도차이나(넓게는 Myanmar, Thailand, Malay를 포함하여 프랑스령 지역) 통킹(Tonkin, 베트남 북부의 주요지역)에서 찍은 작품으로, 전쟁 중에 사망한 프랑스 병사들의 무덤 사진입니다. 프랑스는 독립을 재요구하던 인도차이나에 전쟁 전 보호령(섭정정치)을 내렸으며, 1945년과 1954년 사이 프랑스 국민들은 호치민(Ho Chi MINH)에 끌려가 베트남에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전쟁 당시의 과거와 새 땅의 현재를 대비시킨 걸작
그러나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1954년 5월 7일, 디엔 비엔 푸(Dien Bien Phu, 라오스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 베트남의 북서부 지방)에서 베트남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후에 호치민의 북부와 프랑스의 남부로 나뉘어 지배를 받는 아픔의 역사를 안고 있는 지역입니다.
화면이 아래 위로 이등분 되어 있는 구성으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흑백사진입니다. 들풀과 잎새 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된 아래 쪽은 어둡고 무거운 회색 배경에 빛을 받아 밝은 회색의 나무로 된 십자가와 팻말이 돋보여 더욱 인상적이며, 이미 끝나버려 정지되어 있는 과거의 기억을 보여주는 듯 회상하게 만듭니다.
반면 이등분된 듯 분할된 구조의 위 쪽은,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짐을 지고 둑 길을 지나가는 세 사람의 동작과 실루엣이 살아 있는 듯 동적인 순간을 잘 포착하여 눈길을 잡아끄는 작품입니다. 전쟁의 아픔을 겪었던 어두운 과거와 그 땅에서 새로운 터전을 가꾸며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대조시켜 보여줍니다. 이로써, 마치 독자가 영화 한 편을 다 본 듯한 영상이 잔영처럼 남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위 사진은 1951년의 일본, 오키나와 비행장에서 쉬고있는 미군 병사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담고 있는, 창고의 시원한 느낌이 함께 전해지는 작품입니다. 멈춰 서 있는 거대한 비행기 앞에 지칠대로 지쳐 쓰러지다 싶이 누워 잠을 취하고 있는 가냘프고 나약한 병사들의 모습이 왠지 모를 서글픔으로 공허하게 다가옵니다.
남, 북의 전시 상황을 일깨워주는 전쟁 보도사진
위 사진에서 보면, 주변의 배경은 흑암으로 어둡게 처리하였으며, 상대적으로 거대한 비행기와 작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만을 밝은 윤곽으로 대비시켜 비행기의 날개와 사람의 실루엣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전쟁의 힘과 그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삶과 고통어린 모습을 대조시켜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영상만을 놓고 보면, 비행기의 디자인과 바람날개의 실루엣이 감각적이고 참 아름다운 사진이어서 그독자들의 시각과 뇌리에 림자처럼 오래도록 남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쟁의 고통과 어두움 속에서 아름다운 현실과 예술의 숨은 단편을 찾아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지금까지도 휴전상태입니다. 위 사진작품은, 비숍이 우리 모두에게 남과 북이 무기와 병력을 맞 배치한 채 아직도 서로를 경계하고 있는 전시 상황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는 듯, 무겁게 가슴에 와닿습니다.
위와 같이 9점 모두 전쟁과 관련한 작품들이지만 비숍 특유의 시각과 예술적인 감각으로 인간의 모습과 내면까지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담아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와 소년들의 희생과 순수한 모습을 통하여 그 어떤 이유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힘주어 부르짖고 있습니다. 전쟁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 우리의 통일
우리의 광복이나 주권 회복, 곧 우리민족의 독립과도 관련이 깊은 제 2차 세계대전은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유럽전역과 태평양 일대, 다시 말해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직, 간접적으로 휘말린 전쟁이었습니다. 그 성격은 상당히 다양해서 각기 다른 자국의 이익에 따라 각각의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 협력하거나 반목하면서 참여한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그 어떤 성격이나 각국의 이익과 세력 확대, 경제 전략, 또는 정치 이념에 따라 큰 과오가 있었거나 그로 인한 고통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역사를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역사는 또 다시 우리 모두의 현실로 살아 부활하여 고통 속으로 불러들일 것입니다.
또한 나라를 위해 그 한 몸 바쳐 충성하다가 이름도 없이 죽어간 영혼들이나 피해를 본 사람들이 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시대를 초월하여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6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명예가 진실 그대로 회복되거나 의로운 죽음이 올곧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면 그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열린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의 63번 째인 "광복기념일"이 혹시라도 외면당하지 않기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그런 인식과 진실한 반성들이 일어나고, 그런 작업이 곳곳으로 확산되어 눈에 보이는 결실로 맺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사진과 역사를 다시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독립은 이런 과거와 역사의 진실을 깨닫고 회복시켜야 마무리될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광복은 그 때의 가슴아픈 전쟁으로 분단된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두 동강이 나버린 남과 북이 통일되어야만 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상으로 비숍의 전쟁보도 사진작품을 모두 감상하였으며, 전쟁과 관련한 감각적인 사진들은 거의 다 추려 살펴본 셈입니다. 이렇게 그의 보도사진들을 소개하였으며, 그의 유명한 사진들 대부분이 이렇게 전쟁관련 작품들이어서, 혹시라도 비숍이 이런 보도사진들만 발표한 것으로 인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소개하였던 것처럼,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과 주변 환경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낸 목가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그리고 도회적이면서도 인간답고 따듯하며 아름다운 구성의 그의 사진들이 실제 더 많습니다. 여러 이유로 쉽진 않겠지만, 앞으로 기회를 보아 한번 더 소개할 생각이므로 기대바랍니다.
'Artistic Photograph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 1870년대, 중국의 생활과 마을 풍경 - 흑백사진 (14) | 2008/08/18 |
|---|---|
| ★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 풍경(1870 년경) - 스켄, 로턴 흑백사진 (7) | 2008/08/16 |
| ★ 전쟁사진으로 되새겨보는 광복절 - 비숍(Werner Bischof) (23) | 2008/08/13 |
| ★ 집으로 가는 길, 풍경(중국, 1920년) - 흑백사진 6점 (22) | 2008/08/11 |
| ★ 베트남 안남과 인도네이시아 보르네오 소녀 - 흑백사진 비교 (12) | 2008/07/18 |
| ★ 베르너 비숍의 눈을 통해 되새겨보는 한국전쟁 - 사진 작품 9점 (18) | 2008/06/23 |
트랙백 주소 :: http://chohamuseum.net/trackback/108
-
Subject: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도서관을 수호하라!
Tracked from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2008/08/15 08:09 삭제해방 후 서대문 형무소에서 풀려 나와 만세를 외치는 출옥 애국인사들과 이를 환영하는 시민들 8월 15일 오늘은 다들 아시다시피 광복절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날을 기념해 ‘광복절 기념행사’다 뭐다 떠들썩하네요. 하지만 저는 광복절을 맞이해 진행하는 떠들썩한 ‘행사’에 관심이 가기 보다,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되네요. 바로 해방이후 일제로부터 도서관을 수호하고 우리의 문헌들을 지키고자 온몸을 바쳤던 ‘박봉석(朴奉石, 1905~?)’ 선생님입니다. 우..
-
Subject: 전국 최초의 여성집단 항일운동의 주인공은 제주해녀들이었다.
Tracked from 비바리의 숨비소리 2008/08/15 14:11 삭제(사진/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광복의 기쁨을 피부깊이 느끼지 못한 세대이지만 , 길거리마다 나부끼는 하얀 태극기를 보노라니 그래도 가슴에 뭔가 뭉클함이 느껴지는 날이다. 일제에 맞서 싸웠던 자랑스런 우리선조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지않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오늘같은 날 꼭 기억해야 할 또 다른 분들이 있어 자료를 정리해 본다..그들은 다름아닌 제주의 해녀들이다.. 전국 최대규모의 최초 여성집단의 항일운동이자 어민 운동을 벌였던 자랑스런 사람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그러고보니 곧 광복절이군요
제생각에 사진도 상당히 주관적이라 생각합니다.
찍는이의 시선과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이죠
아무튼 사진 잘보고 갑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네요 ^^
피구님, 반갑습니다.
오늘, 아니, 어제는 분명 북경 소식인, 우리 축구 얘길 올렸을까요... 궁금해 찾아가야겠습니다.
컬러사진보다 흑백사진은 특히 더 여백이 있어 생각에도 여유를 더 안겨주는 것 같아요. 그 정갈함이 인상과 기억에도 더 오래 남는 것 같구요.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ㅠㅠ
동감, 동감입니다. ^^
전쟁 반대, 평화주의자입니다. ㅋㅋ
아, A2 님이 그동안 군 입대로 보기 어려웠었는 줄을 제대한 지도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이 불찰을 용서하시지요...
열정적인 블로깅과 건강한 사회생활로 그 행복함 계속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응원하고 주문 걸어두겠습니다.
엮인글을 통해서 왔습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걸 감사드리며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하늘바다님, 이렇게 방문해서 댓글로 의사소통까지 함께 나눠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왕래하며 종종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전쟁게임을 즐겨하며 입으로 피스를 외치는....
인간이 원체 호전적인 동물입니다. ㅠㅠ
베르너 비숍처럼 전쟁다큐작가들의 살신성인의 노력이 있어 우리들이 전쟁에 대해서 한번더 생각해 볼수 있지요~..
맞습니다. 이터님 말씀처럼, 이런 보도작가들이 있기에 현실을 부르짖는 멋진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거겠지요...??
특히 이런 기념일에는 더욱더...
베르너 비숍.. 진한 감동을 주는 작가네요.
초하님 글은 항상 진지하고 알이 꽉찬 듯합니다. 덕분에 저도 잠시나마 진지한 시간을 갖습니다. ^^
Jorba 님도 정말 오랫만에 뵙습니다.
진지하다 못해 넘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까가 항상 저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의미있는 광복 기념일되시길 바랍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다른 해와는 조금 다르게, 광복절관련 행사가 왕왕 눈에 띄는군요. 얼마전에도 독립문에 야외무대를 개설해 놓고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걸 스쳐지나가며 봤습니다.
좋은 글과 사진 보고 갑니다.
뚱이님, 다녀가셨군요. 반갑습니다.
의미있는 좋은 행사들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비숍의 작품들, 좋은 글로 과찬의 말씀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원한 하루보내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독립은 과거와 역사의 진실을 깨닫고 회복시켜야 마무리된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네요. 비숍의 사진은 언제나 가슴 아프고요. 저도 과거와 역사를 회복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글 하나 썼답니다. 엮어놓고 갈께요~
그리고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답니다. 초하님도 건강히 잘 지내시고 계신지요? 항상 몸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
리브홀릭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ㅎㅎ 비숍의 사진이 가슴 아픈 감동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잖아도 제가 그런 사진들을 먼저 소개하는 바람에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면 어떻하나...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동참하신 리브님의 글들도 지금 곧 찾아가겠습니다. 늘 챙겨주시는 분도 계시고, 또 보기에도 건강해보여서, 실은 넘치도록 건강하게 잘 지내시리라 믿는답니다. 제 안부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엮인글을 통하여 들어왔는데..38세 짧은생을 마감한 비숍의 주옥같은
귀한 작품들을 이렇게 볼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올림픽이 열리는 가운데에서도 지구 한쪽에서는 전쟁이 발발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어 마음이 아픈데.. 사진 하나하나를 보니 정말 이 세상에 전쟁이란 제발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귀한 작품 잘 보고 갑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ㅎㅎ 그러면 비바리님은 제 방엔 처음이시로군요. ^^ 정말정말 반갑고 또 이렇게 과분하도록 좋은 평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잖아도 러시아-그루지야의 전쟁 소식에 가슴이 덜컹했답니다. 세계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가들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비바리님의 방문과 댓글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초하님 블로그에서 비숍과 그의 사진들을 접하게 된 것,
이런 게 바로 블로그를 찾는 보람이고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작은 사진 한장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깊은 감동으로
공명하게 되는군요. 좋은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ㅎ 컴속의 나님의 댓글이 눈물겨울 만큼, 제게 더 감동을 줍니다. 위 비숍의 흑백 사진작품들을 통해서 기쁨을 찾으셨다니, 저도 더불어 반갑고 이렇게 어렵게 블로깅을 하는 것에 대한 보람이고 그 무엇보다도 큰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저도 사실 사진을 알게되고, 또 그 사진을 직업으로 삼았던 비숍과 같은 보도사진가를 알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또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기쁨인지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힘이 되고, 그렇기에 먼 훗날에 의미있는 사진을 찍을 아마추어 사진가를 꿈꾸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댓글을 통해 컴님과 공감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또 비숍을 알게되어 감사하고, 그런 작품을 위해 그의 생을 바쳤던 열정과 그의 삶을 존경합니다. 더불어 그에게 감사하는 밤입니다.
전에 천식을 앓았던 저는
몇 해전까지 집근처종합병원내과의사에게 의지를 했었어요.
기온차가 심할 때는 지레 겁먹고 병원에 내 발로 간 적도 있어요.
초하님이 내 건강까지 챙겨주시니, 고맙수.
저는 대전CBMC수련회에 와 있어요.
전국모임이기에 축제같아요.
저는 이미 늙은 자로
옛날부터 지금까지 자본주의문명과 이기에 단 맛을 들인자이기에
초하님 블로그에 누를 끼치는게 아닌가, 해요.
평안하셔요.
안 리님, 반갑습니다.
요즘은 건강하시겠지요??
종종 놀러와 쉬어가시고, 늘 평안하시길 빕니다~~
세상에 천재나 수재가 많고 많지만, - 제가 보기에 - 비숍은 분명 천재였을 겁니다. 사진을 기술로 보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요, 저는 사진은 절대 '기술'이 아닌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지구에 너무 짧게 왔다 갔습니다...쩝
상천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아마도 비숍은 따듯한 가슴을 가진 열정적인 천재였을 겁니다.
서른 여덟의 짧은 생을 마감한 것만은 분명한데 그 동안에 남긴 것과 알려진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리 서운하진 않답니다. 다 소개 못하는 것이 늘-- 더 큰 아쉬움이랍니다.
그러고 보면 전쟁을 경험하신 부모님이나 할머님이 전쟁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릴적 아주 가끔 "6.25 때는 이것도 없어서 못먹었다."는 게 전부였던 것 같네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서 잊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