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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엘리엇(Thomas Elyot, 영국, 1490~1546)이 말한 "잔인한 달(4월)"은 5월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어린이 날을 보내고 나니, 바로 내일이 5월 8일, "어버이 날"입니다. 이제 곧 다음 주면 "스승의 날"도 다가 오구요. 이번에는 다 챙겨보려고 일단 마음은 먹었는데, 끝이 없을 듯 합니다. ^^

   지난 주부터 모두들 작은 정성이나마 마음 담아 선물 고르기에 애들 쓰셨을 줄 압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선물들을 고르고 준비하셨습니까? 어떤 의미를 담아 포장하고 마무리하셨습니까?

     고흐의 마음을 담아 그의 그림을 바칩니다!

   평생을 부족한 자식을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 아버지의 은혜를 그 어떤 선물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며,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도 오래전부터 마음 담아 준비하고 간직해온 기념 선물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선물을 이 작은 공간에 올려, 이 땅의 존경하는 모든 어머니들, 아버지들께 바칩니다.

   요즈음 연일 날씨도 화창하고 좋지만, 창문을 통해 들어와 빰을 스치는 대기의 감촉이 참~ 싱그럽고 상쾌합니다. 오늘 즈음에는 여러분들의 창가나 방 안에 "카네이션 꽃송이나 화분"이 하나씩은 다 놓여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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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 그림과 약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
A R C(http://www.artrenewal.org)", "반고흐 미술관(http://www.vangoghmuseum.nl)", 문화 예술(http://windshoes.new21.org)
, 그리고 "반고흐 영혼의 편지(Dear Theo: The Autobiography of Vincent Van Gogh, 도서출판 예담 1999)",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였습니다. 더 관심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 고흐의 자화상(Self Portrait), Oil on board, 1886-7,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USA


    고흐 관련 작품들은 이미 앞에서 여러 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고흐의 자세한 약력은 "주요 작품활동"을과 이전의 글들을 참고하시고, 오늘은 간략하게만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삶에 있어서 아래 오늘의 그림들을 그렸던 시기를 중심으로 알아보려고 합니다.

   1853년 3월 30일, 고흐는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포르트 춘데르트(Zundert)란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엄격한 개신교 목사였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로 살았던 아버지, 테오도루스 반 고흐(Theodorus van Gogh, 1882-1885)와 외향적인 어머니, 안나 코르넬리아 반 고흐-카르벤투스(Annaornelia van Gogh-Carventus, 1889-1906)의 맏아들이었으며, 어릴 적에는 시골의 목사관에서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인상주의 영향을 받아 화법의 변화를 겪은 파리의 생활
 
   1869년네 고흐는 숙부의 권고를 받아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서 판화와 복제그림을 파는 일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는 열성적이고 세심하며 유능한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때는 날마다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웠던 시기입니다. 1872년부터 아우인 테오가 화랑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헤이그에서 보낸 이 시절은 고흐의 삶에 있어서 가장 밝고 행복했던 시기였습니다.

   위 '자화상'과 아래 '카네이션을 꽂은 정물화'를 그렸던 1886년에는 고흐 삶의 든든한 지지자 였던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파리로 그림공부를 하러 갑니다. 당시 파리는 새로운 인상주의(impressionism) 양식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던 시기였습니다.

   이 곳에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와 당시 작품활동을 하던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 그리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프랑스, 1796~1875)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1886년부터 1888년 2월까지 파리에서 인상파의 영향을 받으면서 화법의 변화를 보입니다.

   그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 풍의 어두운 그림에서 밝고 강렬한 분위기로 바뀌었으며, 색조도 다채로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풍과 새로운 붓놀림을 창조해냈던 것입니다. 그의 그림은 표현주의적인 동시에 상징주의(symbolism)적이었습니다.

   그러던 1890년 7월 27일, 당시 고흐의 나이 서른 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의 삶을 마감하고 맙니다. 생레미 요양원에서의 계속되는 신경증과 발작, 폭력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그가 그림으로도 즐겨 그렸던
밀밭 언저리
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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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배경에 붉고 흰 카네이션이 꽂힌 꽃병(Vase with Red and White Carnations on a Yellow Background), 1886, Kroller-Muller Museum, Netherlands



   37년이라는 짧은 생으로 삶을 마감했던 고흐는 그의 작품 활동도 단지 1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 기간에 열정적으로 제작했던 1000(천)여 점이나 되는 그의 작품들은 특히 강렬한 색채와 거친 화풍, 그리고 살아 생동하는 힘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모델을 살 수 없어 자연을 담아 그린 꽃 정물화

   그러나 화랑에서 직원으로 일했을 때와 잠시 전도사로서의 삶을 살았을 때를 제외하면, 고흐의 경제적인 생활은 무척 불행했습니다. 위 자화상과 정물화들을 그렸던, 그의 나이 34살 되던 해인 1886년에는 경제적인 생활과 미술기법에 필요한 책, 미술도구, 물감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전적으로 동생 테오에게 의존하던 시기입니다.

   불행하게도 자신의 생계유지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을 만큼, 경제적인 궁핍과 빈곤으로 인하여, 고흐는 그림 그릴 모델조차 전혀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고흐의 작품에 있어 야외에 널려있는 꽃밭이나 그 안의 꽃들과 같은 자연풍경은 고흐 그림의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해바라기 연작과 마찬가지로 위 세 그림들도 그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고흐는 야외에 직접 나가 그 현장에 자라는 생물들을 생생하게 표현하기도 하였지만, 오늘의 그림처럼, 현장의 꽃들을 꺾어다 꽃병에 꽂아놓고 감상하며 그린 정물화들도 그만의 개성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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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꽃병(Vase with Carnations, 1886, Private collection)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활동 시기는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시기는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한 1873년에서 오늘의 작품이 완성되기 전인 1885년까지를 말합니다. 이 1880년대 전반기에는 잇따른 실패와 진로의 전환이 있었던 수습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해낸 시기의 꽃 정물화

   이 때에는 미술 기법을 익히면서 오로지 데생과 수채화에만 전념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까다로운 기질과 씨름하면서 진정한 자기표현의 수단을 찾으려고 애쓴 시기였습니다.

   이 때 바로 자연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꽃이나 꽃병과 같은 정물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이 때 그린 그림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뚜렷한 윤곽과 강렬한 색채의 효과를 통하여 주제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애썼습니다.

   후반기인 1886년부터 1890년까지의 두 번째 시기에는 그림에 몰두하면서 빠른 성장과 성취감을 가졌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1889년부터 정신적인 위기와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오늘의 세 그림을 완성했던 1886년 봄부터 1888년 2월까지 파리에서 화법의 변화를 겪으면서 그 자신의 개성적인 화풍과 붓놀림을 창조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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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과 다른 꽃이 있는 꽃병(Vase with Carnations and Other Flowers, 1886, private collection)




   오늘 고흐의 그림과 같은 정물화는 17세기에 등장했으나, 이후 급속도로 발전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회화의 유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정물화는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행복과 낙관주의를 표현한 카네이션 꽃 정물화

   그 이유는 정물화는 단순히 모방의 미술이라고 생각했으며, 눈과 손의 뛰어난 협업과 정교한 기술을 요구할 뿐 독창적인 사고력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8세기 유럽의 미술과 회화 장르의 위계에서 당시 "역사화"는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했으나, 정물화는 공식적으로 가장 낮은 것으로 좌천되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는 정물화의 목적과 위상이 극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미술 아카데미의 위력이 쇠퇴하였고 독립적인 미술 시장이 성장하면서, 회화는 장대한 주제에 위존할 필요가 없는 개인적인 표현과 창조력의 영역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정물화는 관찰할 수 있는 세계를 눈으로 보고 기록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 실험을 전개하던 고흐와 같은 화가들에게 호감을 샀습니다.

   고흐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 해바라기의 황금빛 색조를 녹여벌릴 만큼 뜨거운 열기는 내는 것,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한 사람의 혼신의 에너지와 집중을 요구한다." 이에서, 오늘의 정물 그림에 대한 고흐의 열정과 신념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위 세 카네이션 그림에서 보여주는 황금빛 색체는 고흐에게 있어서 특히 중요했으며, 자신만의 상징주의를 발전시킨 것입니다. 특히 그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밝은 노란색으로 행복과 낙관주의를 표현하였습니다. 이처럼 정물화를 통하여 개인적인 생각과 심상을 표현했던 고흐의 위 세 그림을 이 땅의 어버이들께 바칩니다.


 ** 고흐 관련 글 : ★ 고흐와 풍차, 몽마르트 언덕이 그립다
                          ★ 문화 마케팅, 광고와 결합한 고흐의 그림들
                          ★ 탄생 155주년 기념, 빈센트 반 고흐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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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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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하님 안녕하세요~
    트랙백 따라왔다가 글도 읽고 보고 갑니다.
    빈센트 반 고흐 팬이신가봐요
    좀 더 둘러보고 가겠습니다 하하 ^ ^

    • ㅎㅎ 도로시님, 오랫만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고흐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듯 합니다. ^^
      건강하게 잘 지내셨죠?
      앞으로 더 자주 뵐 수 있길 바랍니다~~~

  2. 고흐의 그림이 책이나 인터넷에 있는 것으로 보면 약간 어두워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그 색이 화사하고 아름답다고 들었어요. 독일에 가서 직접 그림을 보고 오신 분께서 말씀해 주시더군요~
    오늘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초하님께서 고흐에 대한 글을 올려주시니 고흐의 그림이 한층 더 화사해 보이는 것 같네요~^^
    그럼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 리브홀릭님의 말씀에 심히 동감합니다.
      열정적이다 못해 화사한 그림들이 참 많은 게 사실입니다. 삶을 다해 그림에 투자했던 그의 영혼을 생각하며 그의 그림도 감상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어둡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리브님도 오늘 하루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3. 명작 잘 보고 갑니다. ^^

  4. 명품그림까지... 감상하고, 글도 잘봤어요

  5. 고흐가 그린 꽃들은 불꽃이 아닐까요!!
    이글거리며 타오를 것 같은 모습이에요.

    렘브란트는 빛의 화가죠. 한국에선 도성욱작가가 빛의 화가라 불릴만한데.. ^^ 다음엔 렘브란트와 고야 열전을 써봐야겠어요. 물론 제가 보는 잡지에 나오는 거라 허락없이 적는 거긴 하지만 많은 분들이 봤으면 싶어서 작성해 보렵니다.

    • 아도니스님도 건강하게 잘 지내셨는 줄 압니다.
      렘브란트와 고야에 관한 글들도 기대가 됩니다. 하지만, 인쇄물이라면 더더욱, 그대로 베끼는 것은 위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의 글을 허락없이 도용하는 것은 양심에도 건강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만의 건강한 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조금 넓게 보아서 그 글들을 요약을 하거나 일부만 인용을 하시는 것이 아도니스님만의 당당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는 다른 관련 글들을 참조하거나 링크를 걸어 소개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괜히 주제 넘는 말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좋은 주말 보내시고, 행복한 연휴되시길 바랍니다~~

    • 인쇄물이긴 하지만, 무가지라고 할까요. HSBC프리미어에 가입하면 오는 정기적인 간행물이라 따로 출판되는 것은 아닌데 여기 실리는 글이 너무 좋아서 저 혼자만 보기엔 아깝고 해서 그런거죠. 예전 로댕과 고흐열전도 그런 마음에서 올린겁니다. 물론 그대로 올리진 않고 나름 각색을 해서 올렸어요.

      저는 해당 기사를 올릴 적에 항상 이메일로 문의를 하곤 합니다. 지디넷에서 류한석님께도 해당 기사를 출처를 밝히고 인용을 해도 될까요? 하는 식으로 항상 허락을 득했어요.

      다만 제가 올리는 많은 글중 음원 중 일부는 허락을 득하지 못해 안타깝긴 하지만요.

    • 아도니스님도 참... ^^
      이미 허락을 받은 글이라면 염려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앞으로도 좋은 글들 기대됩니다. 찾아갈게요.





   이맘 때 즈음이 되면, 여행에 대한 그리움과 계획으로 마음 들뜨기도 합니다. 또는 맑고 푸르른 하늘에 따스한 햇살과 온기를 머금고 영글어가는 연초록빛 보리 들판과 황금빛 밀밭 들녘이 눈에 더 선연해집니다.

   그 황금빛 풍성함을 직접 느껴 보려면, 가까운 도시근교나 야외에라도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우선 그 그리움을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의 "밀밭 풍경"으로 달래보려고 합니다.

   그의 생애 가운데 완성도 높은 그만의 특징을 보여주며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200 여점의 그림을 그렸던 1989년과 그가 사망한 1890년 사이에 그려 완성했던 "밀밭 풍경" 그림 4점을 고흐의 생일을 기리며 준비했습니다.

   아래 네 점 모두에서 고흐 특유의 강렬함과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 그림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정취, 그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실감나는 감상을 위해 클릭하여 반드시 본래의 큰 그림으로 감상하시고, 이미 앞에서 소개했던 관련 글의 다른 그림들과 비교하여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네 그림 모두 작가가 사망한 지도 118년이나 지난 고흐의 작품들입니다. 즉 저작자 사후 70년이 훨씬 지난,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작품들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컴이나 블로그의 바탕화면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빛의 흐름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밀밭 풍경

   오늘의 고흐 그림과 약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A R C(http://www.artrenewal.org)", "반고흐 미술관(http://www.vangoghmuseum.nl)", 문화 예술사(http://windshoes.new21.org), 그리고 "반고흐 영혼의 편지(Dear Theo: The Autobiography of Vincent Van Gogh, 도서출판 예담 1999)",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였습니다. 더 관심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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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만큼 우리에게 널리 잘 알려진 화가도 없을 것입니다. 전해지고 있는 그의 작품 수도 많거니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화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만큼,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화가입니다.
 

   그는 지금도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같은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1606-1669)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의 화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현대 예술의 "표현주의(expressionism)"에 강하게 영향을 미친 화가입니다.

밀짚모자를 쓴 자화(Self-Portrait with Straw Hat), 1887, Summer,
Oil on cardboard, Amsterdam Van Gogh Museum, Netherlands
ⓒ 2008 Van Gogh

   단지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고흐가 열정적으로 제작했던 1000여 점이나 되는 그의 작품들은 특히 강렬한 색깔과 거친 화풍, 그리고 살아 생동하는 힘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를 자살에까지 몰고 간 정신질환의 고통과 불운한 그의 삶까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일까요? 흐르는 시간과 함께 잊혀지지 않고 1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의 대표작으로는 다수의 "자화상"과 우리에게도 친숙한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해바라기(Sunflowers)" 연작 등이 있습니다.

     개신교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나 목사관에서 자랐던 고흐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대부분의 그림은 특히 그의 생애 마지막 3년 동안에 제작했던 작품들입니다. 그렇게 그의 화폭에 등장하는 모든 피사체들은 살아 꿈틀거리는 것처럼 생생하게 생동감 있게 느껴집니다.

   오늘 감상할 밀밭과 관련한 세 작품도 이 시기에 완성한 그림입니다. 그러나 그가 평생 동안 그린 800점 이상의 유화와 700점 이상의 데생 가운데, 살아 생전에 팔린 작품은 단지 데생 한 점 뿐이었을 만큼, 경제적으로는 매우 어렵고 극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고흐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개신교(칼빈교) 목사였으며, 유일하게 그 가업을 이어받은 아버지, 테오도루스 반 고흐(Theodorus van Gogh, 1882-1885) 역시 한 작은 시골 마을의 개신교 목사였습니다. 6남매 가운데 맏아들이었던 고흐는 1853년 3월 31일에, 네덜란드 남부의 브라반트 지방에 있는 한 작은 마을(포르트 준데르트)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는 어린시절을 성직자였던 아버지의 목사관에서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1880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할 때까지는 화랑이나 화상의 점원, 중개인, 목사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 날마다 예술작품을 접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렘브란트와 당시 작품 활동을 하던 프랑스의 화가,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와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프랑스, 1796~1875)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는 밀레의 많은 그림들을 습작하였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화폭의 구성과 색채까지 똑같거나 닮은 적잖은 작품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대의 렘브란트, 밀레, 코로, 고갱과도 교류했던 고흐

   반 고흐의 활동 시기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873-1885년의 첫 번째 시기인 1880년대 전반기에는 잇따른 실패와 진로의 전환이 있었던 수습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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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에는 미술 기법을 익히면서 오로지 데생과 수채화에만 전념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까다로운 기질과 씨름하면서 진정한 자기표현의 수단을 찾으려고 애쓴 시기였으며, 이 때 자연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후반기인 1886-1890년의 두 번째 시기에는 그림에 몰두하면서 빠른 성장과 성취감을 가질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1889년부터 정신적인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1886년 봄부터 1888년 2월까지 파리에서 화법의 변화를 겪으면서 그 자신의 개성적인 화풍과 붓놀림을 창조해냈습니다.

▲ 이젤 앞의 자화상(Self-Portrait in Front of the Easel, 1888, Oil on canvas, Rijksmuseum Vincent van Gogh, Amsterdam, Netherlands ⓒ 2008 Van Gogh

   이 때 인상파(impressionism)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의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화풍으로 바뀌었으며,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색상도 다채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시각도 전통적인 시각에서 더욱 많이 벗어났으며 색조도 많이 밝아졌습니다.

   1888년 초, 파리 교외를 그린 몇 점의 풍경화와 "탕기 영감의 초상(Portrait of Père Tanguy)", 바로 위에 소개한 고흐의 초상화에서 감상하고 계신 것처럼, "이젤 앞에 선 자화상 (Self-Portrait in Front of an Easel)", "해바라기(sunflouwers)"와 같은 걸작들에서 반 고흐의 후기인상파 양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표현주의적, 상징주의적, 본능적인 고흐의 그림

   첫 번째 전성기에 그린 그림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뚜렷한 윤곽과 강렬한 색채의 효과를 통하여 주제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림에 대한 그의 관점은 표현주의적인 동시에 상징주의(symbolism)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자연스럽고도 가장 본능적인(impulsive)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자기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자연의 어떤 효과나 분위기를 포착하기 위하여,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격렬하게 그려나갔던 것입니다.

   후반기에는 고갱(Paul Gauguin, 프랑스, 1848-1903)과도 그의 작업실에서 2개월 동안 함께 일하면서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사건건 의견대립이 있었고 성격도 잘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사이가 급속히 나빠지기도 합니다. 1888년 크리스마스 전 날에는 신경과민으로 발작(또는 다툼으로 인해 고갱이)을 일으켜 그의 왼쪽 귀 일부를 잘랐다고도 전합니다.

   그의 생애동안 정신적, 물질적인 지주였으며, 결혼하여 아들 한 명을 두었던 동생 테오(Teo van Gogh)가 있습니다.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그에게 생계를 의존한 데서 오는 죄의식과 성공하지 못한 열등감으로 이 시기는 결국 자살로 끝나고 맙니다.

   1890년 7월 27일, 당시 그의 나이 서른 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계속되는 신경증과 발작, 폭력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가 그림으로도 즐겨 그렸던 아래 그림의 밀밭 언저리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말았습니다. 고독을 이겨내거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그는 자살을 시도했고, 이틀 뒤 테오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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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밭 (Wheat Field), 1889, Oil on canvas, 73.5 x 92.5 cm, Narodni Galerie, Prague ⓒ 2008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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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나무가 있는 밀밭 (Wheat Field with Cypresses), 1889, Oil on canvas, 51.5 x 65 cm, Private collection ⓒ 2008 Van Gogh



   위에 보고 확인하는 것처럼, 그림 전체가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 바람에 춤이라도 추는 듯, 고흐의 화풍은 무성하게 요동치는 들풀과 봄날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살아 약동하는 색채와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림들

   위 두 그림과 아래 첫 그림에 등장하는 측백나무(삼나무)와 바람에 흘러가는 먼 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가까운 구름, 그리고 흘러가면서 함께 하나가 되거나 흩어지기도 하는 대기의 하늘이 지금도 살아서 약동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밝고 고운 빛으로 서로 어우러진 색채와 억제된 색조를 사용함으로써 지극히 조용한 통일성도 보여주고자 노력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를(Arles)에서 생 레미(Saint-Remy)로 옮겨간 고흐는 그곳에서 아를 시대와는 또 다른 조화와 성숙을 달성합니다. 해를 쫓아다니는 해바라기에 공감하였던 그가 생 레미에서는 힘찬 생명력으로 하늘이라도 뚫을 듯, 용솟음쳐 오르는 측백나무를 주제로 하여 풍경그림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이 외의 그림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 측백나무(삼나무)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포함하여 그의 그림들을 얼핏 보면, 고흐가 격렬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단면일 뿐입니다. 위 작품이 갖고 있는 구성적 안정감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위 두 작품과 아래 두 작품은 사물을 묘사하는 섬세함, 전체적인 조화, 그리고 통일된 채색법으로 또 다른 그의 일면을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흐 자신도 이 삼나무가 있는 밀밭 작품을 '내가 그린 가장 명석한 작품'이라 평가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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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나무와 별이 빛나는 길(Road with Cypress and Star, 1890, Rijksmuseum Kroller-Muller, Otterlo) ⓒ 2008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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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뿌린 하늘 아래 까마귀 나는 밀밭(Wheat Field Under Threatening Skies), 1890, Oil on canvas, 50.5 x 100.5 cm, Vincent van Gogh Museum, Amsterdam ⓒ 2008 Van Gogh



   "건강을 위하여 뜰에서 제작을 하고, 꽃이 피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바다와 같은 넓은 언덕을 향하여 멀리 펼쳐져 가는 보리밭의 그림에 지금 열중하고 있습니다." 고흐의 편지 가운데 있는 글입니다.

     생애 마지막 순간, 그 내면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는 그림

   그는 또한 "저는 완전히 이 보리밭의 대작에 소모당하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위 마지막 그림은 고흐 최후 3점의 대작 가운데 하나로, 먹구름 낀 날 어두운 폭풍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밀밭 풍경입니다.

   아래 마지막 대작은 위 세 그림과 같은 밀밭 풍경이지만, 그 느낌은 완전히 다릅니다. 아침과 저녁 풍경이 햇빛의 흐름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듯, 맑은 날과 당장 비라도 올 것처럼 먹구름이 내려앉은 날의 밀밭 정경이 무척 대조적입니다.

   붓의 터치에 있어서도, 위의 두 그림은 부드러운 곡선인데 비하여, 아래의 구름 낀 밀밭 채색은 굵고 직선이며 더 강렬합니다. 배경의 구름 역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이 아니라 당장 물이라도 쏟을 듯 낮고 넓게 굳어진 모양입니다.

   그 아래 까마귀까지도 무리지어 군무를 추듯, 힘차게 나는 모습이 보는 독자로 하여금 무겁고 음산한 기운을 느끼게 만들며, 비장한 결심까지 생기게 만듭니다. 이 그림을 통하여 그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했으며, 이미 그 결심을 예언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불길한 그의 종말을 그림으로 예언했던 작품들

   이런 추측이 가능한 것은, 실제 그가 자살을 시도한 것은 위 그림을 완성하고 난 불과 며칠 뒤의 일이었습니다. 또한 색채 면에서는 아래의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만큼 불길해 보이지는 않지만, 맨 위의 그림들에서 화면의 위 쪽 반 이상을 하늘로 배치함으로써 무한한 공백감과 불길 이상의 종언을 예고한 것 같은 메세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1890년 7월 27일, 결국 그는 밀밭 언덕에 올라가 권총을 자기 가슴에 겨누어 쏘았습니다. 탄환은 심장을 뚫었고 고흐는 상처를 손으로 누른 채, 걸어서 돌아와 조그만 지붕 밑 그의 방에 누웠습니다.

   모든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였고, 고통을 참으면서 파이프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인 7월 29일 아침에, 결국 사랑하던 동생 테오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그가 작품활동을 하며 거쳐갔던 오베르, 아를, 암스테르담 등에 선물을 주고 떠난 셈입니다.

    예언과도 같았던 위의 작품들이 비슷한 느낌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그림보다도 더 가슴 깊이 싸하게 파고드는 이유일 것입니다. 황금빛의 넓고 시원한 밀밭 풍경을 보면서도 가슴 한 켠이 쓸쓸해져 오는 이유일 것입니다.

   위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생동하는 그의 그림들이 아직까지도 살아서 당시 고흐의 고민과 마음의 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듯, 그의 생각들이 소리 없이 전해져 옵니다. 100여 년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바로 옆에 앉아서 들려주는 고흐의 영혼의 독백이 들립니다.

   이제 3월의 마지막 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또한 155년 전 오늘인 1853년 3월 30일, 바로 빈센트 반 고흐가 태어났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고흐와 함께 밀밭을 거닐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한 주, 그 밀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향기를 맡으며, 그 바람 소리와 함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관련글 : 고흐와 풍차, 몽마르트 언덕이 그립다
                 문화 마케팅, 광고와 결합한 고흐의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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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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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로댕과 고흐.. 서로 다른 사랑방식.

    Tracked from Only Store 2008/04/30 21:05  삭제

    Auguste Rodin ( 1840 ~ 1917 ) 신이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 이야기를 한다면 조각이 하고 싶어 인간의 삶을 영위한 신이라 할 정도로 최고의 조각가라 할 수 있는 로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께요. 로댕을 사랑한 여인은 정말 무수히 많습니다. 솔로가 듣기에는 다소 짜증나는 이야기지요. 그의 작업실에서 조각상의 모델이 되었던 모든 모델들(여성)은 로댕을 흠모하고 사랑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들 대다수는 로댕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2. Subject: 현대 미술의 순교자 반 고흐와 미술품이 비싼 이유

    Tracked from 미술관에 간 날라리 2008/06/19 09:11  삭제

    지난 11일 K옥션에서 올해 두번째 '여름 메이저 경매'가 있었다.총 267점(해외작 64점)이 출품되어 187점이 거래돼 낙찰률 70.3%에 낙찰총액은 113억 원이다.(지난 3월 봄 경매 낙찰률 80%,낙찰총액 93억원) 근현대 한국작품의 낙찰률은 67.5%로 상대적으로 낮아 유명 작가들의 일부 작품이 유찰되기도 했다.이날 최대 이슈는 뭐니뭐니해도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에 처음 오른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인 '주저앉은 소(Lying Cow)'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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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제가 고흐의 생일이었군요.
    무식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그림들이 고흐의 수염을 닮은듯합니다.
    덕분에 밀밭길을 따라서 걸었습니다.

  2. 그림을 모르는 저도 고흐의 그림은 확실히 알아본다는!
    클림트를 제일 사랑하지만 클림트를 알기전에는 고흐를 좋아했었어요.

  3. 씨스토리 2008/04/01 07:40

    벌써 탄생 155주년이군요.

    예전에 고흐 마을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은 희미합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방문해 보고 싶네요.

  4. 자주 들러야겠어요.
    초하님이 방문한 덕분에 저 역시 너무나 멋진 블로그를 알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링크 데리고 갑니다.

    • 초하 2008/05/05 02:50

      아도니스님의 방문이 저는 더 반갑고 감사하답니다.
      엮은 글과 함께 링크도 감사하구요.
      앞으로도 자주자주 뵐 수 있길 저도 기대합니다~~



   운영자가 여자분(이지선대표)이어서인지 더 따듯한 분위기의 블로그연합 모임인 메타블로그, "blogkorea"가 있습니다. 오늘 들렀더니, 그곳 그림관련 채널에 "타인에게 말걸기"란 문패를 걸고 블로그를 꾸리고 계신 smirea님이 "고흐 관련"글을 엮어 나눠주셨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감상을 했답니다. 그의 열정과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그래서 오늘은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인 그림이 될 것이며, 바람이 절로 불어올 것만 같은 풍차와 관련한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의 작품을 감상하려고 합니다. 특히 사진보다 그림을 더 좋아하신다는 데보라님을 생각하며, 그리고 한 다른 독자의 요청으로 엄선한 그림들임을 밝혀두며, 평소 보기 어려운 귀한 그림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흐의 보기 드문 풍차 그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고흐의 작품들은 그가 사망하기 전, 그의 말년 3년 동안에 제작한 것이 대다수입니다. 그의 거친 필채의 절정을 보여준 '밀밭풍경'이 대표적인 그의 말년 작품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감상할 아래 작품은 그보다 앞서 그렸던 것들이며, 고흐 특유의 꿈틀거리는 열정과 함께 다소 부드러운 붓의 질감과 동양적인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고흐는 직접 그린 다양한 느낌의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로도 유명합니다. 아래에 보고 있는 것과 같이 고흐는 각각의 자화상에서 각기 다른 특징과 표정을 보여줍니다. 이 자화상을 포함하여 아래 감상할 그림 모두 반드시 클릭하여 본래의 큰 그림으로 실감나게 감상한 뒤, 가슴에 더 와 닿는 그림은 바탕화면으로도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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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의 자화상(Self Portrait), Oil on cardboard, 1887, Rijksmuseum, Amsterdam, Netherlands ⓒ 2008 Van Gogh


   고흐의 자세한 약력은 아래 "주요 작품활동"을 참고하시고, 오늘은 간략하게만 살펴볼 것이며, 그의 삶에 있어서 아래 그림을 그렸던 시기를 중심으로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 때는 경제적인 생활과 미술기법에 필요한 책, 그리고 미술도구, 물감 등을 전적으로 동생 테오에게 의존하던 시기입니다.

   1853년 3월 30일, 고흐는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포르트 춘데르트(Zundert)란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엄격한 개신교 목사인 테오도루스 반 고흐(Theodorus van Gogh, 1882-1885)와 외향적인 안나 코르넬리아 반 고흐-카르벤투스(Annaornelia van Gogh-Carventus, 1889-1906)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나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불행했던 성장기, 자살로 마감한 짧은 삶
 
   1869년 7월 고흐는 숙부의 권고를 받아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서 판화와 복제그림을 파는 일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는 열성적이고 세심하며 유능한 직원이었으며, 날마다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웠던 시기입니다. 1872년부터 아우인 테오가 화랑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헤이그에서 보낸 시절은 고흐의 삶에서 가장 밝은 시기였습니다.

   1886년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파리로 갔는데, 당시 파리는 새로운 인상주의 양식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던 시기입니다. 이 곳에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와 당시 작품활동을 하던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 그리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프랑스, 1796~1875)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1886년부터 1888년 2월까지 파리에서 인상파의 영향을 받으면서 화법의 변화를 보입니다. 그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 풍의 어두운 그림에서 밝고 강렬한 분위기로 바뀌었으며, 색조도 다채로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신의 개성적인 화풍과 붓놀림을 창조해냈던 것입니다.

   그러던 1890년 7월 27일, 당시 고흐의 나이 서른 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계속되는 신경증과 발작, 폭력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가 그림으로도 즐겨 그렸던 밀밭 언저리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살며 거쳐갔던 오베르, 아를, 암스테르담 등에 선물을 주고 떠난 셈입니다.

   하지만 그는 죽은 이후에도 불행했던 사람입니다. 자살을 했기 때문에 교회에서가 아닌 식당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됩니다. 침울했던 테오는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 고흐의 그림을 추억으로 선물하였습니다. 6개월 뒤인 1891년 동생 테오도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었고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고흐의 곁에 잠이 들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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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이는 풍차(Le Moulin de la Galette), Oil on canvas, 1886, Kroller-Muller Museum, Otterlo, Netherlands ⓒ 2008 Van Gogh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화가 고흐의 작품은 전해지는 것만도 1000여 점에 이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품이 그가 사망하기 전, 10년 동안에 제작된 것들입니다. 그 가운데 후반기인 1886~1890년에 그린 그림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위 그림을 포함한 다섯 작품은 모두 고흐 창작 후반기 가운데서도 초기에 가난한 화가들이 많이 모여 살던 몽마르트(Montmartre)의 언덕과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여기에서 베르나르(Emile Bernard, 1868~1941)와 러셀(John Russell, 1858~1931),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 등을 만나 교류합니다. 

    방 하나를 화실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그의 작품에는 색채가 제자리를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파리의 지붕과 몽마르트의 풍차들을 그리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색채와 인상주의 회화의 분위기,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 그리고 이를 넘어선 실존적 의미의 붓질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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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느러미 모양의 풍차 날개(Le Moulin de Blute-Fin), Oil on canvas, 1886, Bridgestone Museum of Art ⓒ 2008 Van Gogh


   파리에 도착하자 고흐는 "프랑스의 공기는 나의 생각을 맑게 해주어 작업을 더없이 훌륭하고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게 해준다"라고 편지에서 적고 있습니다. 베르나르와 가깝게 지내면서 그의 고향 풍경을 그리기도 하였고, 더 많은 색채를 보게 되었으며,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함께 전시회를 갖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입니다.

   당시의 배경이 된 이 몽마르트는 채석장이 있던 마을이었는데, 위 그림은 그런 풍경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들판과 흙을 검붉게 채색하였을 뿐만 아니라 분할된 화면 윗쪽 반 이상을 회색빛 하늘로 굵고 어지럽게 붓질하여 어두운 구름이라도 몰고 올 듯한 당시의 하늘과 날씨를 표현하였습니다.

   위 두 그림 모두 화면을 약간 기운 사선으로 분할하였으며, 후기 가운데서도 말년 그림들에서 대표적인 특징으로 나타나는 가늘고 강한 붓의 질감보다는 굵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사람의 움직임도 역동적이며 풍차의 지느러미 하나하나까지 강조하여 생동감 있고 생생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또한 하늘의 구름과 대기의 기운에서도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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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이는 풍차(Le Moulin de la Galette), Oil on canvas, 1886, Public collection ⓒ 2008 Van Gogh


      그의 작품 활동 10년 가운데 첫 번째 전성기인 전반기에는 데생과 수채화에만 전념하였으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뚜렷한 윤곽과 강렬한 색채의 효과를 통하여 주제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애썼던 시기였습니다. 반면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제작된 이 그림에서는 그런 특징을 볼 수 없습니다.

   지평선 아래로 보이는 나무와 들풀들은 땅과 하나가 된 듯하며, 푸른 색채의 하늘 위로 그려진 나무와 잎새조차 하늘과 하나가 된 듯 인상적인 윤곽만을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푸른 빛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바람이 마치 하나가 된 듯 휘몰아치고 있는 형상을 굵은 붓질로 표현하여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까마귀 떼 역시 최소한의 속도감 있는 검정색 선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구름 사이로 날아가 사라지는 원근감을 주고 있어 실제로 보이는 대기보다 더 넓고 시원하게 느껴지며, 말년에 그렸던 "까마귀가 나는 밀밭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특히 풍차 아래로 덧칠된 붓질은 뚜렷하고 신중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이러한 회화양식은 20세기 회화, 특히 표현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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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석장과 풍차가 있는 몽마르트(Montmartre the Quarry and windmells),Oil on board,1886, VanGogh Museum, Amsterdam ⓒ 2008 Van Gogh


    그가 그린 그림은 표현주의적인 동시에 상징주의적이며, 그리는 방법은 자연스럽고도 본능적인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자연의 어떤 효과나 분위기를 포착하기 위하여,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격렬하게 그렸던 것입니다.

   부드러운 사선과 곡선으로 그려진 지평선과 초록색 풀밭 아랫 쪽 채석장의 붓질은 비교적 굵고 부드럽게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캔버스를 찌를 듯 매우 빠르고 역동적인 질감을 보여주고 있어 그림 전체에 안정감과 운동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풍차의 위 쪽으로 밝게 표현된 하늘의 구름도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듯 굵은 붓질로 부드럽게 표현하였습니다.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먼 원근감을 주어 강조한 구름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으며, 풍차에서 불어나오는 바람인 양 무척 강하고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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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마르트의 채석장과 풍차(Montmartre: the Quarry and Windmills), Oil on board, 1886, Van Gogh Museum, Amsterdam ⓒ 2008 Van Gogh


    오늘 감상한 다섯 그림 가운데 제일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의 인상적인 그림입니다. 채석장과 풍차가 있는 해질 녘 어스름 풍경을 빛의 색채와 붉은 빛으로 통일시킴으로써 매우 안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하늘 멀리 위 쪽 가장자리를 굵고 어두운 붓질로 원근감을 강조함으로써 화면 전체에 공간적인 넓이와 깊이를 더하여 주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곡선의 지평선과 지느러미 모양의 풍차 날개, 노을 빛에 반사되어 부드럽고도 오밀조밀한 윤곽으로 표현된 집들과 언덕을 오르는 길까지 빛과 하나가 된 듯하며 빛을 주물러 빚어 놓은 듯 매우 인상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이 들게 합니다.

     절제된 강렬함과 부드러운 필채

   이상과 같이 풍차와 관련한 그림 5점 모두에서 고흐 특유의 강렬한 열정과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 강렬함이 다소 부드럽게 절제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각각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풍차를 통해 불어오는 바람의 풍취와 분위기, 그 느낌은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고흐는 단지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1000여 점이나 되는 많은 작품을 그렸습니다. 더구나 그 작품들 가운데 다양한 색깔과 분위기, 그 안에 숨쉬는 부드러운 정취와 생명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이런 작품들을 통하여 느끼는 고흐의 열정과 광기에 놀랍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가 평생 동안 그린 800점 이상의 수채화와 유화와 700점 이상의 데생 가운데, 살아 생전에 팔린 작품은 1점뿐이었을 만큼,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삶을 살았야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대하는 마음도 숙연해지며, 다시 한번 더 보게 됩니다.

   풍차를 통해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몽마르뜨 언덕을 거닐던 고흐의 꿈과 열정을 그려보게 합니다.  고독한 삶을 살았던 고흐와 저 몽마르뜨 언덕을 함께 걷고 싶은 날입니다. 동참하실 분 안계신가요?


** 연대별 고흐의 약력과 작품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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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할만한 관련글  :  "문화마케팅, 광고와 결합한 고흐의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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