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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봄 날은 언제일까요....?  

    돌이켜 보면,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뒤를 돌아볼 여유도, 앞으로 다가올 먼 미래에 대해서도 그다지 많은 생각을 해볼 기회나 계기란 것도 없이 살아온 듯합니다. 아주 멀게만 느껴지는 나의 미래나 노년보다는, 지금까지는 어쩌면 과거나 뒤를 돌아보는 것에 더 익숙했던 듯 합니다.

    잠시, 머-언 미래로 날아가 내 노년의 한 때를 잠시 상상해 보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러할 듯 싶은데, 저도 조금은 여유 있을 삶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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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 아베마(Louise Abbema, 프랑스, 1858-1927), 피아노 앞에서(At The Piano), Private collection ⓒ 2008 Abbema(저작권 시효 말료된,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그림)



   낯 설면서도 푸근한 아르장퇴유(Argenteuil)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1840~1926)의 정원이나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의 생레미(Saint-Remy)에 있는 측백나무(삼나무)가 있는 밀밭이나 또는, 엊그제 청명에 소개한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 네덜란드, 1632-1675)의 델프트 풍경과 같이 다소 한적한 세월을 찾아 여행하고 있을 주름진 한 노인의 모습...

   양지 바른 마당 한 켠, 흔들의자에 앉아 두꺼운 안경 너머로 세월을 넘기듯 책장 한장한장을 여유롭게 더듬을 모습... 그래서 쭈글쭈글 주름 가득한 손이 더 여유로워 보이는 어느 노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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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John White Alexander, 미국, 상징주의, 1856-1915), 피아노 앞에서(At the Piano aka Helen Hopekirk Wilson), 1894 ⓒ 2008 Alexander(저작권 시효 말료된,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그림)



   갸냘픈 어깨에 디지털 사진기보다도 훨씬 둔탁한 아날로그식 무거운 카메라를 둘러 메고는 세월을 담아내 듯 성큼성큼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는 모습... 그래서 눈꺼플 내려앉은 눈으로 사람 냄새나는 뒷골목을 뒤지며 이곳저곳 세월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 등등.

   이러한 모습과 함께 또 하나의 영상이 스쳐갑니다. 미래의 지금은 멀어만 보이는 그 날에, 적어도 노쇠해진 내 손가락이 리듬에 따라 춤을 추지는 못하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자작곡이라면 더 좋을 듯 싶은 멋진 연주곡 하나 함께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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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유보트(Caillebotte, Gustave,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1848-1894), 피아노를 연주하는 젊은 남자(Young Man Playing the Piano), Oil on canvas, 1876, Public collection ⓒ 2008 Caillebotte(저작권 시효 말료된,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그림)



   내 그 먼 날에도 그런 감성만은 지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 멀지 만은 않을 내 훗 날, 위 세 화가들의 각기 다른 그림처럼, 그런 감성과 그런 모습으로 "내 삶의 마침표"를 찍고 싶습니다!!

  양지 바른 창가에 앉아 있는 듯, 잘 관리된 마당 한 켠에서 쭈그리고 앉아 풀을 뽑고 있는 듯, 투명한 햇살 가득한 조그마한 정원에서 세월을 낚는 것처럼 햇빛을 즐기듯, 저녁 무렵 석양의 햇살이 눈부신 담벼락 앞에 앉아 지나는 행인이나 동네 꼬마들을 관찰하듯...
 
   그-렇게 마-냥 여유로울 내 "인생의 봄 날"을 잠시 그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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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ㅎ 저도 저렇게 하고싶으나.. 돈이 많아야 할듯요.

  2. 아마도 누구나 인생을 마감하는 것을 상상할지도 모르곘네요.
    단지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여건이 되지 않는 것은 핑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 저도 한참 젊은데도 가끔 생각을 해봅니다..
    이왕이면 이곳저곳 여행하며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다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일년에 열 두달이 주어지고 그 첫 달을 출발하여 이 맘 때 즈음에 오게 되면, 내 일상과 삶의 무게에 지치고 피곤해지며 무언가 충전할 힘과 기운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계절의 탓도 있겠지만 그래서 대부분은 여행을 떠나기고 하고, 재충전할 그 무언가를 찾곤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어깨가 축 늘어지는 날이면, 이따금씩 재래시장을 찾고 있습니다. 특별히 구입할 물건이 없다 할지라도 활력 넘치는 상인들의 외침과 흥정하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 여기에 개평을 얹어주는 넉넉한 인심을 보곤합니다.  

   그러면 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도 돌아보게 됩니다. 또한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도전할 용기와 현재에 충실할 힘, 넘쳐나는 생기에 전염되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휴식 같은 밀레의 그림

   또 언제부터인가 내 삶이 시시해지고 하찮게 생각될 때면, 저는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의 그림을 애써 찾아 감상하곤 합니다. 특별히 엄선한 밀레의 오늘 그림들을 마주하면, 온 몸으로 전율을 체감하며, 고개도 절로 숙여집니다. 더불어 건강한 몸과 주어진 내 삶을 감사하게 되고, 마음마저 경건해지기 때문입니다.

   아래 밀레의 초상과 약력, 그림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
Web Gallery of Art(http://www.wga.hu)", "인명사전(http://www.biography.com)", "Art Renewal Center(http://www.artrenewal.org)", 그리고 "Mark Harden's Artchive(http://artchive.com/ftp_site.htm)"를 참고하였으며, 번역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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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밀레는 19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화가로서, 농부였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관찰자 입장에서 농촌의 고단한 삶과 노동의 일상을 그림으로 담아냈습니다. 19세기 프랑스의 바르비종(Barbizon)파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작가입니다.

   농촌의 풍경과 자연을 많이 그렸다 하여, 농민 화가, 자연주의 화가라고도 부릅니다. 그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이 고요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며, 자연을 향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고 하여 "종교화가"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밀레는 1814년 프랑스 노르망디(Norman) 지방의 그레빌(Greville) 근처 작은 농촌(the hamlet of Gruchy)에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8살 때 쉘부르에서 그림공부를 시작하였으며, 1837년 파리로 유학해 들라로슈(Delaroche)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 밀레(Jean Francois Millet)의 초상화
                                      ⓒ Don Kurtz

   푸생, 샤르댕, 도미에 등에 영향을 받은 밀레는 1848년 살롱전(파리에서 해마다 열리던 미술 전람회)에 '키질하는 농부'를 출품하였으며, 이 작품은 밀레가 최초로 대중적으로 인정을 받은 그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여 그린 농촌 풍경이 많았습니다.
     
   1849년 파리 교외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으로 거처를 옮긴 밀레는, 이후 농민의 고통과 노동의 신성함에 촛점을 맞추었으며, 인간의 내면을 담아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위 '이삭줍기' '만종' 등의 걸작이 이 시기에 제작한 대표적인 그림입니다.

     농민의 고통을 통해 노동의 신성함을 묘사한 바르비종파 화가

   1860년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이후 풍경화에 매료되었으며 고향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제작합니다. 1867년 만국박람회의 "밀레 회고전"이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이로 인해 '레지옹 도뇌르 훈장(프랑스 국가 훈장)'을 받았습니다.

   밀레는 쿠르베(Gustave Courbet, 프랑스, 1819-77)와 더불어 사실주의의 대가로 꼽히며, 코로(Camille Corot, 프랑스, 1796-1875), 쿠르베 등과 함께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바르비종파를 창시합니다. 코로와 마찬가지로 풍요롭고 조용한 분위기의 풍경화를 주로 그렸는데, 이런 그림들이 인상주의 풍경화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1840~1926),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 반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 세잔(Paul Cézanne, 프랑스, 1839~1906) 등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말년에 인상주의와도 관계를 가졌으나 기존 작가와는 기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바르비종에 있는 그의 생가는 현재 '밀레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주요 작품은 '씨 뿌리는사람'(1850년작), '이삭 줍기'(1857년), '만종'(1859년), '자비심'(1859년)', '괭이질하는 사람'(1861년), '양치기 소녀'(1863년)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밀레의 3대 걸작으로는 '만종' '이삭 줍기' '자비심(LA CHARITE)'을 꼽습니다. 그 밖에 '우유 짜는 여인' '저녁기도' '실 잣는 여인' '괭이를 든 남자' '젊은 어머니와 아기' 등이 있고, 소묘와 에칭판화 등 우수한 작품 다수와 몇 점의 누드그림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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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줍는 사람들(The Gleaners),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Mi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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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종(The Angelus), Oil on canvas, 1857-1859, rivate collection, ⓒ Mi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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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치기 소녀와 양떼(Shepherdess with her flock), 1864,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France, ⓒ Millet


   특히 '이삭줍기(The Gleaners)'로 번역된 첫 번째 그림 "이삭줍는 여인"과 '만종' 두 작품은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하며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입니다. 바르비종에 살면서 일하는 농민들의 생활과 노동의 순간 순간을 화폭에 담아오던 밀레는 '이삭줍기'로 '농민화가'라는 그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킵니다.

     노동의 순간을 포착한 농민화가

   밭에서 일을 끝내고 저녁 종이 울리는 시간, 부부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장면을 담고있는 '만종'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건한 감동을 받습니다. 양떼를 모는 양치기 소녀의 고개숙인 모습에서도 똑같은 감동이 전해져 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를 비롯하여 그의 이 그림을 한 번 본 사람들은 누구나 주저없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으로 위 두 그림으로 손꼽게 됩니다. 그의 그림은 단순히 노동에서 오는 보람이나 기쁨뿐만 아니라 삶의 진정성과 노동의 신성함을 힘주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 그림의 새로운 양식이라고 칭송받는 이유입니다.

   위 세 그림 모두 해질 녘의 먼 지평선이 황혼에 물들어가고 있는 풍경이며, 등장인물들을 비롯하여 볏단과 농기구, 바구니, 대지의 잡풀, 그리고 양들까지 피사체들 모두 이 부드러운 빛을 배경으로 그려졌습니다. 무척 평화롭고 조용하며, 환상적이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냅니다.

   이삭 줍는 여인들의 진지한 노동은 경외감마저 들게 하며, 부부와 양치기 소녀의 손모으고 있는 경건한 자세는 종교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신성한 노동을 담아내고자 고뇌하였던 밀레의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도 농민처럼 밭을 직접 일구면서 그림을 그렸으며, 가난하고 고집스러운 밀레의 '전원 예찬'이 바로 이 그림으로 승화된 걸작입니다. "노동은 신성하고 일하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라고 부르짖지 않아도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을 감사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전원 예찬'

   1875년 위 '이삭줍기'란 작품이 발표되었을 당시, 농사일하는 세 여인의 모습이 지나치게 거만하게 표현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으며, '하층민 운명의 세 여신'이라며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밀레는 "나는 평생에 걸쳐 논과 밭 밖에는 본 것이 없는 사람이므로 나 자신이 본 것을 될 수 있는 한 솔직하게, 그리고 훌륭하게 표현하려고 했을 뿐이다"라고 담담하게 항변했습니다.

   세 그림 모두 화면의 2/3에 가까운 반 이상을 논이나 초원으로 안정감 있게 구성하였으며, 뒷배경이 되는 먼 곳의 풍경이나 하늘을 더 밝고 부드럽게 채색하였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 여자나 부부, 양과 소녀를 어둡고 무거운 색체로 크게 대비시킴으로써 놀라울 만큼 회화적인 정취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맑고 환한 햇빛과 들판을 배경 삼아 주인공들을 아주 단순한 윤곽으로 처리함으로써 다른 어떤 그림들보다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세 그림 모두 인물들의 움직임과 배치에 계산된 리듬과 법칙이 숨어 있습니다.

   그럼으로 화면 전체의 구성에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세 여인 모두 같은 방향으로 삼각형 구도의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고, 두 부부는 서로 마주하고 있고, 양들과 소녀는 모두 독자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치밀한 구성이 농민의 건강한 노동을 극적으로 강조합니다. 밀레의 "'노동'에 대한 신념과 사랑"은 20년 뒤, 빈센트 반 고흐를 거쳐 '인간과 노동'에 대한 희망으로 전해져 왔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화가의 그림을 통해 부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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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 빛, 양들의 초원(The Sheep Meadow, Moonlight),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France, ⓒ Mi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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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농장에서 일하는 노르망디 여인(Norman Milkmaid), Oil on canvas, 12.99 x 10.12 inches [33 x 25.7 cm], Private collection, ⓒ Mi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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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부들(Fishermen), Pencil on paper, 1869-1870, Musée d’Orsay, Paris, France, ⓒ Millet


   위 세 그림은 모두 앞의 황혼 녘 햇빛과는 달리 훨씬 더 은은하고 부드러운 달빛을 배경 삼아 귀가하거나 일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더 푸근하고 정감 있게 느껴지며, 앞의 세 그림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분위기를 공감할 수 있습니다.

     쏟아지는 달빛으로 농부들의 희망을 노래

   위 세 그림 앞의 세 그림과 마찬가지로 양들의 초원과 노르망디 여인의 배경인 들판, 어부들의 일터인 바다를 달빛으로 밝고 환하게 배경처리했습니다. 반면, 화폭 전체의 주인공인 양치기와 여인, 그리고 부부로 보이는 두 어부의 모습은 뒤에서 비추는 달빛을 통하여 아주 단순한 윤곽으로 어둡고 무겁게 채색함으로써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구성을 돋보이게 합니다.

    해가 진 밤, 달빛을 초원 삼아 양 떼가 목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정경은 먼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은은한 빛이 대지 전체를 비춥니다. 그 빛이 번져 양 떼와 양치기의 검은 실루엣(윤곽)을 만들어내어 몽환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위 두 번째 그림으로 낙농장에서 일하고 귀가하는 노르망디 여인의 그림도 마찬가지이며, 우유빛 둥근 달을 전등 삼아 망망대해에서 바쁜 손놀림으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바다에 비친 달빛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특히 맨 아래의 어부그림은, 달빛을 순수한 연필의 질감으로만 표현하였습니다. 어부들의 거친 삶을 표현한 이 그림은 위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매우 강렬하고 투박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배경인 하늘과 바다, 주인공인 두 부부와 그들이 타고 있는 배의 색채를 모두 검은 갈색으로 어둡게 통일시킴으로써 훨씬 더 엄숙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두 어부의 윤곽이 훨씬 돋보이며, 전체적인 느낌도 훨씬 더 무겁습니다. 때로는 목숨을 담보로 바다와 싸워야 하는 농부들의 척박한 삶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거친 연필로 어부들의 질박하고 역동적인 삶을 묘사

   이렇듯 밤의 야외 정경은 다소 특별한 소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밀레는 이같은 분위기를 주제로 여러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대부분의 작품들은 인물이나 동물이 하나하나 분명한 윤곽과 견고한 조형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위에서 보신 후반에 제작한 작품들에서는 달 밤의 은은한 분위기가 화면 전체를 덮고 있어서 더욱 정감있고 시적(詩的)인 느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더구나 앞의 세 그림에서 불 수 있는 지평선과는 다르게 아래의 세 그림은 배경의 지평선이나 수평선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중앙 쪽으로 배치된 분할 구도입니다. 양치기와 젖 짜는 여인, 그리고 마지막 어부의 모습은 더 힘겨워보이며 고통스런 표정이 역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 세 그림의 2/3 분할의 안정된 구도와는 달리 배경 전체를 아래 위로 구분하여 나눔으로써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어두움 가운데 비친 새로운 광명처럼 화면 전체에 번지는 빛의 색채와 분위기는, 그래서 훨씬 더 역동적이고 활기차 보입니다.

  그래서 이 밤이 지나고 새로 밝아 올 아침은 지금보다는 덜 힘들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늘이 가고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밝은 오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암시를 던져줍니다. 이런 이유로 삶이 지치고 무거워질 때면, 위 밀레의 그림을 찾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쉼을 얻고, 생동하는 기운과 희망을 되새김질하는 이유입니다.

   
 **  밀레의 약력과 연령별 주요 작품  **

1814. 10. 4. 프랑스 노르망디의 근처 구루시에서 8남매 중 맏이로 출생.
1837.(23세) 고향의 근교 셀부르시에서 미술공부를 시작.
                  셀부르시 장학금을 받고 파리로 진출.
1840.(26세) 처음으로 살롱에 초상화 출품.
1841.(27세) 폴린느 오노와 결혼 후 파리생활 시작.
1844.(30세) 부인 사망 뒤, 고향으로 돌아감.
1845.(31세) 카트린느 르메르와 재혼한 뒤 다시 파리로 나감.
1848.(34세) 2월 혁명 발발. 살롱에 〈키질하는 농부〉를 출품, 르드뤼 롤랭이 구입.
1849.(35세) 파리를 떠나 바르비종에 정착. 농민들의 생활을 소재로 활동 시작.
1850.(36세) <씨 뿌리는 사람>,〈건초를 묶는 사람들〉을 살롱에 출품.
1851.(37세) 바르비종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계속적인 작품 활동.
1853.(39세) 크리미아 전쟁 발발.〈풀 베는 사람들의 식사〉를 제작. 모친 사망.
1854.(40세) <모이를 주는 여인〉제작.
1855.(41세) <접목을 시키는 남자〉를 만국 박람회에 출품.
1857.(43세) <이삭줍기〉를 살롱에 출품. 명성을 얻기 시작.
1859.(45세) <소와 농부>〈만종> 완성, <죽음과 촌부>는 낙선.
1862.(48세) <삽을 든 사람〉제작.
1863.(49세) <양치는 소녀> 제작.
1867.(53세) 만국 박람회에〈이삭줍기> <만종> <죽음과 촌부>등을 출품했고,
                  살롱에는〈제비를 돌보는 소녀>와 <겨울>을 출품하여 일등 상을 받음.
1868.(54세) 프랑스 최고 훈장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음.
1870.(56세) 독·불 전쟁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고향으로 감. 이때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
1871.(57세) 11월, 바르비종으로 귀환.
1873.(59세) <봄〉제작.
1874.(60세) <그레빌의 교회〉제작.
1875.(61세) 1월 20일, 바르비종의 집에서 향년 61세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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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얼리즘에 입각한 사실주의파들의 그림을 보면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 포착하고 그림에 보전을 할려고 한때는 많이 시도를 했었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추상화가 좋습니다. 그것이 아마도 제 취향에 맞는것 같아여. 밀레의 멋진 농경작품들 잘 봤습니다. 서민의 모습이 그대로 잘 표현이 되어 있네요. 밀레의 작품중에선 만종이 가장 인상에 남는것 같습니다.

    • 추상화를 좋아하는 데보라님, 만종은 영원한 명작이지요... 저도 물론 좋아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소통하며 의견 나누길 바랍니다.

  2. 밀레그림은 볼때마다 왠지 숙연한게 느껴져요, 특히 귀족이아닌 저런 농부,일반인들을 그린 그림을 볼때마다 그때와 다르지않은 지금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서 괜히 좋더라구요 ㅎㅎ

    • seri 님은 누구실까? 어디-- 계실까? ㅋㅋ
      반갑습니다.
      서민들의 삶을 통해 노동의 신성함을 표현한 밀레의 그림을 그래서 저도 좋아합니다~~ 시공을 초월해 공감할 수 있음도 기쁨이고 감동이지요.

  3. 밀레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그 경건함이 저만의 느낌이 아니었군요.
    저도 요즘 부쩍 밀레의 자연과 노동에 대한 경외심에 눈길이 갑니다.
    거짓이 없는 신성한 노동을 하고 싶어요.^^

    글을 너무 잘 정리해주셔서, 감동이 배가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자주 뵐께요. :)

    • 스미레님 제가 더 고맙습니다. 자주 뵈요~
      물론입니다, 밀레에서 품어져 나오는 경건한 노동... 감사하게 만들지요. 겸손하게도 만들구요.

  4. 밀레에 대해서 잘 정리 되어 있어 너무 좋네요^^
    잘보고 갑니다^^

  5. 밀레~~!! 유명한 분이라서 작품도 눈에 익네요.(이제야 할 말이 생기는...--; )
    아무리 봐도 이삭줍는 세 여인이 거만해보이진 않는데...^^
    그래도 그런 평가에 휘둘리지 않기란 정말 어려울텐데
    자기 주관을 잘 지켜서 저런 작품들이 나왔군요.
    왠지 블로그에 글 쓰는 것과 비슷한...? ;)

    • ㅎㅎ 가눔님, 다른 여러 작품들도 눈에 자꾸 보이면 나와 가까워지는 것 같고, 또 그렇게 친구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우리가 블로그를 통해 차차 익숙해지듯이...

  6. 댓글 타고 왔습니다..^^미술 분야에 대해서 상당히 관심이 많으신듯 합니다. 파리여행대 오르세에서 보았던... 밀레의 작품 너무 인상적이네요..

    • 내공의 블로거이신 달룡님, 반갑고 감사합니다. 그러잖아도 1년 독서목표가 150이란 소문을 듣고 놀라웠는데...^^
      모네의 저 신비하고 경건한 그림을 직접 감상한 느낌이 어떨까요?? 인상적이기도 하겠지만, 참 많이 궁금하고 사실 많이 많이 부럽습니다.
      저도 놀러가겠습니다. 종종 뵐 수 있길 기대합니다.

  7. 아홉가지 2008/02/05 19:59

    잘 보고 갑니다. 인상적이네요

    • 전원을 예찬한 자연주의, 농민화가였으니 특별히 더 아름답지요.
      아홉가지님, 감사합니다.
      건강한 설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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