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숨은 보석을 찾은 듯, 뒤지고 골라 즐거운 마음으로 사들고 들어온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비교적 두께도 얇아 출퇴근 길에 들고 다니며 읽기에 딱 좋았고, 그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아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새 것으로는 만나기 어렵지만, 그 제목이 "선과 성서(禪과 聖書)"라는 책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역동적인 영성생활을 제시
이 책의 내용은 지은이가 이 두 가지의 구도방법을 직접 체험한 데서 우러나온 증언이며, 동양과 서양의 만남에 관한 새로운 제시이기도 합니다. 즉 선승들의 생활양식과 사상이 가톨릭 수도자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되면서 출발합니다.
책의 제목처럼, 불교의 선에서는 좌선과 공안 참구를 통해 해탈의 길을 추구하는 반면,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서의 중요성과 묵상을 강조하고 있음을 쉽게 풀이하며, 그 내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합니다. 선의 역동성을 활용하여 성경의 실존적 이해와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합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읽던 가운데, 잊혀지지 않고 오랫동안 머리에 맴돌던 글귀가 있어 접어 표시해 두었다가 옮겨 적은 것이, 바로 아래의 짧은 글입니다. 이는 수도원 안에서 40년 동안이나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묵묵히 해 왔던 이탈리아 태생의 한 수사가 한 말입니다.
" Quale vita, tale morte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은 살아 온 모습과 같다) "
= ( 門脇佳吉(문협가길)지음, 김윤주옮김, "선과 성서(禪과 聖書)" 분도출판사, p. 129-30. ) =
이 말의 뜻을 더 생각해 보고, 그 깊은 의미를 정리해 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의 철학이나 가치관과 그에 따른 생활 태도나 습관은 매우 다양할 것이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갖가지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인생의 목표로 삼거나 나눔을 최대의 실천으로 옮길 수도 있으며, 또 더러는 돈이나 재물을 최우선에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죽을 때에도 생전에 살아온 태도와 같은 모습으로 죽는다"는 말의 앞에서는 잠시 제 생각이 멎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위 이야기의 핵심은, 생전에 제 멋대로 굴던 사람은 제멋대로의 태도와 표정으로 죽어가고, 행복하게 살던 사람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죽어갈 것이며, 또한 생전에 거룩하게 살던 사람은 거룩한 모습으로 죽는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 로드 프레더릭 레이턴(경)(Lord Frederick Leighton, 영국, 1830-1896), 노랑머리 아가씨(The aid with the Yellow Hair), Oil on canvas, 1895, Private collection ⓒ 2008 Leighton
병자를 돌보는 일은 표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도 않으며,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과정입니다. 어느 수사가 말한 앞의 이 이야기는 40년 동안의 고된 세월을 겪어낸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입니다. ''오랜 병환에 효자 없다" 란 우리의 속담이 있을 만큼,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삶이 반영된, 죽을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
혹자는 "나이를 먹어(?) 갈수록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각자 삶의 양식과 가치관에 따라 개개인의 표정과 얼굴 모습도 그렇게 닮아가며, 그렇게 변해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 수사의 말과 같은 맥락의 문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저에게 더더욱 적쟎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위 한 수사의 말은 인생이란 여정이 살아 온 지금의 내 얼굴을 닮게 됨은 물론이요, 훗날 죽을 때의 내 모습은, 자신이 살아 온 삶의 모습과 살아가는 생각, 애써 꿈꿔 온 꿈 등 그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위 짧은 글귀를 읽으면서, 내 삶이 두렵기도 하고, 자신 앞에 숙연해지기도 하며, 살아가는 나의 태도와 습관들을 돌이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제 노년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문득,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죽을 때의 나의 모습이 궁금해졌습니다.
▲ 이철수, 예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다, 2002, 이철수의 집 소장 ⓒ 2008 이철수
위 그림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30 평생을 목수로 살았던 예수가 죽음을 앞에 두었던 당시 십자가 위에 있던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따가운 햇볕에 피가 말라가며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그 과정을 어머니를 비롯하여 마리아와 마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을 인간 예수의 "죽을 때의 모습"입니다.
죽음을 맞이하던 예수의 모습
위 그림은 이철수 화가가 당시의 상황을 다소 가볍게 만화적으로 그려낸 목판화입니다. 그래서 고통과 슬픔보다는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림이며, 예수의 모습과 표정도 무척 평온해 보입니다.
평민으로 살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으로 지켜 보았으며, 또 애도했던 가장 "거룩한 죽음"이 바로, "죽을 때의 예수의 모습" 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참을 수 없는 울부짖음과 목이 타는 고통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순간이지만, 그 고난 받고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난 받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성스럽고, 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바로, 이 예수의 "죽을 때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죽을 때 나의 모습은...과연 어떨까요?? 다소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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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진정한 인간관계가 그리운 날
Tracked from 나무사이 2008/08/11 17:34 삭제인간관계는 결혼식을 보면 안다. 얼추 세 부류로 나뉜다. 축의금 봉투만 인편으로 보내는 사람. 축의금 내고 재빨리 갈비탕을 먹으러 가는 사람. 사회자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리에 제일 먼저 앉고 제일 나중에 일어서는 사람. 나는 몇 번의 결혼식을 생깠을까? 인간관계는 사람이 죽어보면 안다. 얼추 세 부류로 나뉜다. 조의금 봉투만 인편으로 보내는 사람. 조의금 내고 영정 사진 앞에서 절하는 사람. 밤새 향불이 꺼질까 곁을 지키며 고스톱을 쳐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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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ale vita, tale morte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은 살아 온 모습과 같다) "
삶이 곧 죽음과 통한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는 군요. 죽음의 모습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삶을 다시 되돌아 보게 하는군요. 특히 개인적으로, 삶을 긍정하고 낙천적인 사람들, 또 종교의 내세를 믿는 사람들의 죽음의 순간의 모습은 참 평화롭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컴 속의 나님, 삶과 죽음은 통한단 말씀이겠지요...
종교에 귀의했던 사람들의 죽을 때의 표정이 무척 편안하게 밝아진다는 얘길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글이로군요. 흐음...
대발이님도 깊은 생각에 잠겨 가셨나 봅니다.
멋진 한 주의 첫 날되시길 바랍니다. 더위 먹지 마시구요.
철학적으로도 그렇지만, 의학적으로 죽음은 한 순간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하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조금 더 확장하면, 삶 역시 죽음의 과정일진데...
그렇다면 죽음에서 삶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텐데, 전 왜 저 죽을 때 옆에 있을 사람들에게 괜히 미안해지는걸까요?
아.. 사람들에게 그만 상처주고 살아야겠습니다.
죽고 난 후 신 앞에서가 아니라, 죽을때 사람들에게 참 못할짓입니다. =ㅅ=
Julis 님 말씀처럼 죽음의 과정이 길어진다면, 분명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
저도 상처주는 일 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이 한 주는 저도 무척 바쁠 것 같아요, 좋은 한 주 사시길 바랍니다~~
음, 아직 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본 적은 없지만..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맨큐님 잘 지내셨는지요? 반갑습니다.
죽음에 대한 고찰이라기 보다는 한번쯤 생각해보아도 좋겠다는 취지의 글이고 책소개였습니다. 후회없도록 이 한세상 열심히 살아보자구요.
복날에 더위 잘 이겨내고 계시죠?
맛난 점심 드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도 내 사진 앞에서 몇이나 밤을 지새워 줄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 하나 봅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을 달리할 수 있다면, 분명 행복일 것입니다. 나무처럼 착하게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