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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에서 숨은 보석을 찾은 듯, 뒤지고 골라 즐거운 마음으로 사들고 들어온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비교적 두께도 얇아 출퇴근 길에 들고 다니며 읽기에 딱 좋았고, 그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아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새 것으로는 만나기 어렵지만, 그 제목이 "선과 성서(禪과 聖書)"라는 책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역동적인 영성생활을 제시

   이 책의 내용은 지은이가 이 두 가지의 구도방법을 직접 체험한 데서 우러나온 증언이며, 동양과 서양의 만남에 관한 새로운 제시이기도 합니다. 즉 선승들의 생활양식과 사상이 가톨릭 수도자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되면서 출발합니다.

   책의 제목처럼, 불교의 선에서는 좌선과 공안 참구를 통해 해탈의 길을 추구하는 반면,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서의 중요성과 묵상을 강조하고 있음을 쉽게 풀이하며, 그 내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합니다. 선의 역동성을 활용하여 성경의 실존적 이해와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합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읽던 가운데, 잊혀지지 않고 오랫동안 머리에 맴돌던 글귀가 있어 접어 표시해 두었다가 옮겨 적은 것이, 바로 아래의 짧은 글입니다. 이는
 수도원 안에서 40년 동안이나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묵묵히 해 왔던 이탈리아 태생의 한 수사가 한 말입니다.


     " Quale vita, tale morte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은 살아 온 모습과 같다) "

   = ( 門脇佳吉(문협가길)지음, 김윤주옮김, "선과 성서(禪과 聖書)"  분도출판사, p. 129-30. ) =



   이 말의 뜻을 더 생각해 보고, 그 깊은 의미를 정리해 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의 철학이나 가치관과 그에 따른 생활 태도나 습관은 매우 다양할 것이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갖가지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인생의 목표로 삼거나 나눔을 최대의 실천으로 옮길 수도 있으며, 또 더러는 돈이나 재물을 최우선에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죽을 때에도 생전에 살아온 태도와 같은 모습으로 죽는다"는 말의 앞에서는 잠시 제 생각이 멎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위 이야기의 핵심은, 생전에 제 멋대로 굴던 사람은 제멋대로의 태도와 표정으로 죽어가고, 행복하게 살던 사람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죽어갈 것이며, 또한 생전에 거룩하게 살던 사람은 거룩한 모습으로 죽는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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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드 프레더릭 레이턴(경)(Lord Frederick Leighton, 영국, 1830-1896), 노랑머리 아가씨(The aid with the Yellow Hair), Oil on canvas, 1895, Private collection ⓒ 2008 Leighton 


   병자를 돌보는 일은 표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도 않으며,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과정입니다. 어느 수사가 말한 앞의 이 이야기는 40년 동안의 고된 세월을 겪어낸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입니다. ''오랜 병환에 효자 없다" 란 우리의 속담이 있을 만큼,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삶이 반영된, 죽을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

   혹자는 "나이를 먹어(?) 갈수록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각자 삶의 양식과 가치관에 따라 개개인의 표정과 얼굴 모습도 그렇게 닮아가며, 그렇게 변해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 수사의 말과 같은 맥락의 문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저에게 더더욱 적쟎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위 한 수사의 말은 인생이란 여정이 살아 온 지금의 내 얼굴을 닮게 됨은 물론이요, 훗날 죽을 때의 내 모습은, 자신이 살아 온 삶의 모습과 살아가는 생각, 애써 꿈꿔 온 꿈 등 그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위 짧은 글귀를 읽으면서, 내 삶이 두렵기도 하고, 자신 앞에 숙연해지기도 하며, 살아가는 나의 태도와 습관들을 돌이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제
노년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문득,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죽을 때의 나의 모습이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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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수, 예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다, 2002, 이철수의 집 소장 ⓒ 2008 이철수


   위 그림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30 평생을 목수로 살았던 예수가 죽음을 앞에 두었던 당시 십자가 위에 있던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따가운 햇볕에 피가 말라가며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그 과정을 어머니를 비롯하여 마리아와 마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을 인간 예수의 "죽을 때의 모습"입니다.

     죽음을 맞이하던 예수의 모습

    위 그림은 이철수 화가가 당시의 상황을 다소 가볍게 만화적으로 그려낸 목판화입니다. 그래서 고통과 슬픔보다는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림이며, 예수의 모습과 표정도 무척 평온해 보입니다.  

   평민으로 살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으로 지켜 보았으며, 또 애도했던 가장 "거룩한 죽음"이 바로, "죽을 때의 예수의 모습" 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참을 수 없는 울부짖음과 목이 타는 고통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순간이지만, 그 고난 받고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입니다
.

   그러나 그렇게 고난 받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성스럽고, 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바로, 이 예수의 "죽을 때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죽을 때 나의 모습은...과연 어떨까요?? 다소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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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진정한 인간관계가 그리운 날

    Tracked from 나무사이 2008/08/11 17:34  삭제

    인간관계는 결혼식을 보면 안다. 얼추 세 부류로 나뉜다. 축의금 봉투만 인편으로 보내는 사람. 축의금 내고 재빨리 갈비탕을 먹으러 가는 사람. 사회자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리에 제일 먼저 앉고 제일 나중에 일어서는 사람. 나는 몇 번의 결혼식을 생깠을까? 인간관계는 사람이 죽어보면 안다. 얼추 세 부류로 나뉜다. 조의금 봉투만 인편으로 보내는 사람. 조의금 내고 영정 사진 앞에서 절하는 사람. 밤새 향불이 꺼질까 곁을 지키며 고스톱을 쳐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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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Quale vita, tale morte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은 살아 온 모습과 같다) "

    삶이 곧 죽음과 통한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는 군요. 죽음의 모습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삶을 다시 되돌아 보게 하는군요. 특히 개인적으로, 삶을 긍정하고 낙천적인 사람들, 또 종교의 내세를 믿는 사람들의 죽음의 순간의 모습은 참 평화롭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컴 속의 나님, 삶과 죽음은 통한단 말씀이겠지요...
      종교에 귀의했던 사람들의 죽을 때의 표정이 무척 편안하게 밝아진다는 얘길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2.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글이로군요. 흐음...

  3. 철학적으로도 그렇지만, 의학적으로 죽음은 한 순간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하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조금 더 확장하면, 삶 역시 죽음의 과정일진데...
    그렇다면 죽음에서 삶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텐데, 전 왜 저 죽을 때 옆에 있을 사람들에게 괜히 미안해지는걸까요?

    아.. 사람들에게 그만 상처주고 살아야겠습니다.
    죽고 난 후 신 앞에서가 아니라, 죽을때 사람들에게 참 못할짓입니다. =ㅅ=

    • Julis 님 말씀처럼 죽음의 과정이 길어진다면, 분명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

      저도 상처주는 일 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이 한 주는 저도 무척 바쁠 것 같아요, 좋은 한 주 사시길 바랍니다~~

  4. 음, 아직 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본 적은 없지만..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 맨큐님 잘 지내셨는지요? 반갑습니다.
      죽음에 대한 고찰이라기 보다는 한번쯤 생각해보아도 좋겠다는 취지의 글이고 책소개였습니다. 후회없도록 이 한세상 열심히 살아보자구요.

      복날에 더위 잘 이겨내고 계시죠?
      맛난 점심 드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5. 저도 내 사진 앞에서 몇이나 밤을 지새워 줄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 하나 봅니다.





   며칠 전, 제가 궂이 결코 운영하기 쉽지 않은, 그림, 사진, 시, 문학 등 "예술" 관련 블로그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한 글 하나를 가벼운 마음으로 적어 올렸습니다. 그 넋두리를 보신 이웃지기, BlogIcon 나무 님("나무사이"란 블로그를 운영중)께서 아래와 같이 댓글을 달아 부탁해 놓고 가셨습니다.

      " 다음 그림에 관한 글은 진한 커피를 드시며 쓰세요.
        그럼 저도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음미하겠습니다."

   제가 커피 좋아하는 줄은 어떻게 아셨는지, "여유있는 글쓰기"를 주문하셨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진이나 그림 관련 글들은 대부분 저도 처음 보고 듣는 내용을 수집, 종합, 번역하는 일이기에 정신을 집중해야 할 수 있으며, 그래서 그 순간에는 프로가 아닌 순순한 마음으로, 그리고 작품에 대한 흥분과 감동으로 대부분 긴장도 하면서 글을 쓰게 됩니다.

   또 그 내용을 가능하면, 쉽고 편한 말로 풀어 정리하고 편집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하나의 글을 완성해 올리기까지, 다른 주제의 글보다는 시간도 꽤 많이 걸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해 보고자, 저도 모르게 긴장도 하고 집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무님 덕분에 "여유로운 글쓰기"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커피를 찾았더니, 때마침 똑-! 떨어져 버렸습니다. 허허. 맨 아래 그림의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1840~1926)처럼 담배도 못 피우니 그럴 수도 없네요. 히히. 그래서 아쉬운 대로 얼음 동동 뛰운 둥글레 차 한 잔을 옆에 놓고 여유로운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여러분들도 진한 커피 한 잔 마시며 음미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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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츠(Don Kurtz) - 르누아르의 초상

   돌아보니, 일년 가운데 벌써 반절이 훌쩍 지나 버렸고, 7월도 마지막 날입니다. 매년 세우는 계획인데도 연말이 되면 늘 아쉽고 안타까운 것 가운데 하나인 이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인데도 결과는 늘 못내 모자라고 어려운 이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프랑스, 1841-1919)의 그림을 통하여 이 책읽기에 대한 계획과 마음을 새롭게 다져보려고 합니다.

    르느와르의 평범해 보이는 아래 그림들은 제가 아껴두었던 작품입니다.
 소녀들을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표현한 매우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었던 르느와르의 아래 그림들과 소개, 약력은 "
Olga's Gallery(르누아르)"와 "The Art Renewal Center(르누아르)", "브리태니커사전"과 "Auguste Renoir Gallery", "towooart", 그리고 "천년의 그림여행(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
내용을 참고하였으며, 번역하여 종합, 정리한 것입니다.

   아래 소개하는 르누아르의 초상 그림은 제가 좋아하는 자화상 그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상주의(impressionism) 화풍의 농익은 붓질을 느낄 수 있어서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입니다. 그가 사망하기 9년 전인 말년에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비교적 세밀하게 담은 작품입니다. 노년임에도 눈에 총기도 가득하며, 젊은 시절에 비해 인자하고 자상한 매력이 한껏 묻어나는 멋스러운 그림입니다.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프랑스, 1841-1919)는 1841년 2월 25일, 프랑스의 리모주(Limoges)에서 양복 장인이었던 집안에서 출생하였습니다. 7명의 자식을 두었던 아버지는 그의 나이 4세 때인 1845년경 가족을 데리고 파리로 이주하여 정착하였으며, 르느와르도 줄곧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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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누아르의 서명

   르누아르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으며 부모는 아들의 재능을 일찍 알아차리고 13세 때 도자기 공장에 보내어 훈련을 시켰습니다. 이 곳에서 그는 접시에 담긴 꽃다발을 그리는 법과 부채, 그리고 교회에 걸 헝겊 패널에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솜씨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릴 때면 커다란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 이 때 정식으로 그림을 공부하기로 결심합니다. 1854년 도기공방(陶器工房)에 윗 그림을 그리는 직공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밤에는 데생을 공부하였습니다. 이 때의 작업이 결국 평생 그가 화가로서의 길을 걷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몇 년 뒤, 공방의 일자리를 잃게 되자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하고, 1862년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시작합니다. 19세기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프랑스, 1780-1867)의 제자였으며, 파리 국립미술학교의 교사로
당시 고전적 누드의 대가로 손꼽히던 화가, 샤를 글레르(Charles Gleyre, 스위스, 1808-1874)의 화실에서 그림 교습을 받습니다.

   퐁텐블로 숲에서 만난  쿠르베(Gustave Courbet, 프랑스, 1819-1877)와 들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 프랑스, 1798-1863)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글레르의 화실에서 알게 된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1840-1926), 시슬레(Alfred Sisley, 프랑스, 1839-1899)와 그들을 통해 알게 된 피사로(Camille Pissarro, 프랑스, 1830-1903),  세잔(Paul Cezanne, 프랑스, 1839-1906) 등과 함께 "카페 게르부아의 모임"에도 참가하였습니다. 이 때 마네(Edoward Manet, 프랑스, 1832-1883)와 모네의 영향을 받으며 점차 인상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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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누아르의 자화상(Self-Portrait), 191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초기에는 들라크루아, 크루베 등의 영향을 받았고,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종군한 후에는 작풍도 점차 밝아졌습니다. 그리하여 인상주의의 기치를 든 1874년 제1회 전람회에는 "판자 관람석(1874)"을 출품하였고, 계속하여 제 2회와 제 3회에도 참가하였습니다.

   한동안 인상파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더 눈부시게 빛나는 색채표현을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대작() "
물랭 드 라 갈레트(Le Moulin de la Galette, 1876)"와 "샤토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1879)"은 인상파 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물 중심의 밝은 색채와 구성에 집중했던 르누아르   

   1881년
이탈리아를 여행,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이탈리아, 1483-1520)와 폼페이의 벽화에서 감동을 받았고, 귀국 후 얼마 동안의 작품은 색감과 묘법()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담백한 색조와 화면구성에 깊은 의미를 쏟은 고전적인 경향을 띤 작품들로 "목욕하는 여인들(1884-1887)"을 주로 그렸습니다.

   그 뒤로는 완전히 인상파에서 이탈하여 독자적이고도 풍부한 색채 표현을 되찾아 원색대비에 의한 원숙한 작풍을 확립하였습니다. 1890년대부터는 그림에 대한 더욱 강한 의욕을 보였습니다. 아래의 오늘 그림과 같이 꽃, 어린이, 여성상을 많이 그렸는데, 특히 "나부(婦, 1888)"는 빨강이나 주황색과 황색, 초록이나 청색 따위의 엷은 색채로 부드럽고 관능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편 66세 때인 1906년에는 마이욜( Aristide Maillol, 프랑스, 1861-1944)과 사귀면서 그의 영향을 받아 조각작품을 창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1919년 12월, 79세의 나이로 카뉴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목욕 하는 여인들", "피아노 앞에 앉은 소녀" 등을 비롯하여 "목욕하는 여자와 강아지", "관객석", "우산", "테라스에서", "나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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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는 여인(Woman Reading), 1875-1876.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France ⓒ 2008 Ren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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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는 어린 소녀(Young Girl Reading, 1886), Oil on canvas. Städelsches Kunstinstitut und Städtische Galerie, Frankfurt, Germany ⓒ 2008 Renoir



   위 두 그림은 르누아르의 작품 가운데,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그림일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 르누아르의 화풍과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작들입니다. 또한 학창시절에 어설프게 나마 저도 스케치 그림으로 즐겨 그려보던 추억의 작품이기도 하여 무척 애착이 간답니다.  

     기쁨과 환희에 찬 독서 삼매경을 표현한 그림 

   인상파 시대에 활동했던 르누아르의 작품들을 살펴 보면, 모네와 같은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같은 자연에 대한 묘사보다는 인물, 특히 여인을 주제로 한 명작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그가 그린 대부분의 풍경화에서도 여인들이 등장하며, 인물들을 그 풍경화의 주인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위 두
 그림도 그러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르누아르의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들을 잘 보여줍니다. 여느 인상파 화가들은 햇빛 속에 펼쳐진 대자연을 주제로 삼아, 밝은 색조를 강조하면서 자연의 빛깔을 추구해 나갔던 반면, 르누아르는 주로 인물을 중심으로 빛의 효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그 나름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가 인물을 중심으로 빛의 효과를 탐색하고 있음을 위와 아래의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을 이용하여 젊은 아가씨들의 즐거운 독서 삼매경을 경이롭게 잘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얼굴 한 쪽에 반영된 햇빛이 밝고 고와서 싱싱한 생명감을 느끼게 하며, 책읽는 기쁨과 환희를 공감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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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Reading Children), 1883, Pastel on paper, Private collection, Germany ⓒ 2008 Ren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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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을 읽고 있는 모네(Claude Monet Reading A Newspaper, Oil on canvas, 1872, Private collection ⓒ 2008 Renoir



   위 두 그림은 르누아르의 그림으로는 많이 알려진 작품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그림은 자매로 보이는 두 소녀가 머리를 맞댄 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참 정겹고 따듯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봄 날, 햇빛 바른 따듯한 처마 밑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종이 활자를 읽는 따듯한 마음이 느껴지는 그림

   아래 두 번째 그림은 담배 파이프를 문 채 신문을 읽고 있는 모네의 여유로운 한 때를 시원하고 신선한 색채감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파이프의 담배 연기에 살아 흔들리는 듯한 운동성을 부여하고 있어 시간의 흐름을 실감케 하는 그림입니다. 또한 매우 사실적이어서 오랫동안 모네의 자태와 손동작, 생김새 등 그 습관을 면밀히 관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르누아르가 남긴 작품 가운데에는 "아르장퇴유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와 같이, 모네가 모델로 등장하는 그림을 몇 점 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서로의 창작에 깊은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생전에 서로 잦은 소통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였던 그의 초기 작품들을 살펴보면, 특히 반짝이는 색채와 빛으로 가득 차 있는 현실 생활의 단편을 그린 전형적인 인상주의 그림들입니다. 그러나 1880년대 중엽부터는 인상파와 결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상화나 인물, 특히 오늘 소개하는 여인을 소재로 한 아래 그림들에서 보면, 조금 더 엄격하고 형식적인 기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르누아르만의 독특한 화풍이 기대되는 말년의 누드 그림들

   르누아르의 말년에는 "목욕하는 여인들(1898-9)"처럼 누드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이런 후기작품에서 보면, 고전 미술에 대한 관심과 인상주의의 붓질을 결합해 햇빛에 따라 변화하는 여인의 피부색을 묘사합니다. 그는 모델의 아름다움에서 그림에 대한 영감을 얻었으며, 빛을 잘 받는 피부의 여인을 가정부로 고용해 모델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누드 그림은 18세기 로코코 회화의 풍부한 관능성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일레르 제르맹 에드가 드가(Hilaire Germain Edgar Degas, 프랑스, 1834-1917)의 작품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며, 르누아르의 누드는 실제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르네상스의 전통을 계승하는 성적인 대상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모습을 담은 이런 누드 관련 그림들도 기획 중에 있으므로 기대바랍니다.


   읽고 있는 그 것이 활자로 된 종이책이든, 그림이 주가 된 만화나 그림책이든, 또는 그것이 신문이든 잡지책든 아날로그적인 종이책은 늘 곁에 둘 수 있어 좋습니다. 또 혼자이든 형제, 재매나 친구와 함께이든 늘 손에 가지고 다닐 수 있고, 마음의 풍요와 여유를 안겨주는 것이 바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 보면, 책을 읽는 풍경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합니다. 컴퓨터나 인터넷의 사이트를 통해서 영상이나 움직이는 그림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실용주의 이야기"란 블로그를 꾸리고 계신 "
황상철"님께선 하루쯤 휴가내어 뒹굴며, 실컷 책을 읽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이든 디지털적인 화면이나 아날로그적인 활자를 통하여 올 남은 한 해에도 욕심을 내볼까 합니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통하여 올 연말 후회없는 "책읽기"를, 다양하고 풍요로운 책읽기를 다짐하고 결심해봅니다. 이 여름날에 활자의 풀숲을 뒹굴거나 산책하듯 맨발로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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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독서와 관련된 그림이 많네요~~ ^^"
    두고두고 읽어봐야겠네요~
    갠적으로 이런 글은 비오는날 커피한잔과 함께 짧~게 ^^*
    날씨가 더워질려나 봅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MindEater 님, 독서 관련 그림들만 따로 분류, 모았답니다.
      오는 주말에도 비소식 예보를 들었습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짧~은 여행 다녀가시길 바랍니다.

  2. 푹푹 찌는 날, 회사에서 조용히 읽고 보는 것도 좋은데요. 헤헤..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그림 참 좋네요. ^^

    • 반가운 Jorba님, 오랜만이지요...
      시원한 회사에서 책과 함께 피서를 즐기는 것도, 좋은 여름나기가 될 거 같아요.
      앞으로도 자주 뵈요~~

  3. '르누아르'는 이름 자체가 예술이라 뭐...^^
    르느와르의 그림들은 워낙 유명하니 그래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좀 있는 편인데 언제나 느끼는 것이 참 편안하고 부드럽습니다.

    독서...
    저도 홀라당벗고 수박이나 쪼개먹으면서 하루종일 뒹굴뒹굴 책속에서 방황하고 싶습니다...^^

    • 여름에 제 격인 수박 갈라 옆에 놓고, 활자의 숲을 맨발로 걸어다니는 여유... 호사 맞습니다. ^^

      르누아르의 밝은 색채와 책 읽는 정신의 그 찬란한 기쁨... 그 정신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입니다.

  4. 그가 그린 그림들에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이 참으로 환해보이는군요. 삶에 대한 희열이 엿보여서 왠지 부럽습니다. 물론 의식하지 않고 빛나는 것이겠지만요.

    • 오랜만에 뵙는 가별이님 말씀처럼, 책읽는 찬란한 기쁨이 빛과 색채에 충만한 그림입니다. 그래서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밝아진답니다.

  5. 그림 잘봤습니다. 저도 책을 많이 읽을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요즘은 또 더워서 책을 잡기가 힘드네요ㅋ

    • 신문님 말씀처럼, 저도 이 여름에 독서를 다짐하기도 쉽지 않답니다. 다시 한번 여유로운 책읽기를 다짐해 봅니다.

  6. 저는 초하님의 주옥같은 포스트를 읽으면서 한까치 담배를 테웁니다.(이젠 끊어야 하는디...) - 느긋해지니까
    그리고 포도주도 한잔합니다.(요즘 싸고 질좋은 칠레산 애용) - 꼽배기로 천천히
    커피는 건강에 도움이 안된다고 해서... ㅋㅋ

    오늘도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제 부족한 글 감상을 하는 쓴단님의 모습이 연상되어 저도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담배에 커피, 포도주까지... 상상만으로도 멋집니다.

      늘 응원해주시는 과찬의 말씀에 감사드리며, 더불어 용기와 힘을 얻습니다. 건강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7. 아이쿠. 커피를 드시라고 해놓고 정작 저는 얼음 잔뜩 넣은 콜라 마시며 보고 있습니다. 이게 다 날씨탓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르느와르가 현존하고 있으면 '자판치는 소녀'나 '게임하는 아이들' 같은 그림을 그렸을 것 같습니다. 아주 멋있게... ㅎㅎㅎ

    • ㅋㅋ 나무님은 콜라란 말씀이지요...^^ ㅋㅋ
      하긴 커피도, 요즘은 얼음 동동 띄운 커피를 찾게 됩니다.

      덕분에 상상하며 즐겁습니다. 이를테면, "디지털화면으로 책 읽는 아이들", "자판기로 게임하는 소년", "닌텐도하는 가족" 등 현대의 이런 독서 풍경이 담긴 그림... 덕분에 재미있는 상상의 나래를 펴 보았답니다.

  8. 르누아르의 유명한 책읽는 그림은 저도 좋아하는 그림이예요. ^^
    이번에 휴가를 다녀왔는데요. 여유롭게 책에 몰입하고 싶었는데, 이번 휴가도 그게 여의치가 않았네요.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책읽기가 더 멀어지는 것 같아요 ㅠㅠ

    • ㅎㅎ 리브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학교에 있으면서도 책 속에 파묻히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이런이런...^^

      휴가는 어디로 다녀오셨을까요..???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지요... 매일 찾아주시고 말없는 격려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던 많은 단골 방문자들과 늘 따듯하게 반기고 안부 챙겨주시던 이웃지기님들도 모두 건강하신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이따금씩 찾아와 쉬어가시던 많은 방문자들도 모두 무고하신지 궁금합니다. ^.^

    제 개인 사정으로 시간 내기가 어려워 자주자주 뵙지 못했음을 죄송하게 생각하며, 전해주고 가신 안부 글조차 제대로 챙겨 답글 드리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지금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므로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혹 들르시거든 맘  편히 쉬었다가 평안과 행복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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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1840~1926), 연분홍빛 구름에 노란 붓꽃(Yellow Irises with Pink Cloud, 1914-1917, Private collection)



    다시 불러야 할 5. 18, 오월의 그 하늘

   육체에 한계가 온 것인지, 최근에는 글 꼭지 하나 올리기도 참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지난 1980년, 5월에 미처 부르지 못했던 무명시인의 노래를 다시 불러,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많이 늦었지만,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요즈음 미얀마 군사정부의 거센 억압에 눌려 "버마의 민주화항쟁" 소식도 시나브로 사글어드는 듯 싶어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버마에 불어닥친 싸이클론(cyclone)의 재앙과 그 여파로 사망이나 실종 인구만도 6만명 이상이며, 최악의 경우 이재민의 숫자만도 150만이 넘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버마에게는 거울이 될, 우리의 "광주 민주화항쟁"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 다. 더불어 미약한 마음이라 할지라도 티끌처럼 모아져서 버마 국민들의 열망에 힘과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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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1840~1926), 세 개의 튤립 화분(Three Pots of Tulips), 1883, Private collection


    
<  5. 18 당시  >  --  작자 미상


 

남도의 하늘은 아름다웠다.



천사가 나팔을 부는 것도


나는 꽃마차 위의 일곱 색 나비들이


꽃 이파리를 뿌려주는 것도


아니었건만


남도의 하늘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윗 글은 그 내용 만큼이나 글쓴이의 마음과 영혼이 참 아름답게 다가오지요. 제 머릿 속에도 남도의 하늘이 아름답고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아주 오래 전, 아래 그림의 소설, "봄날" 을 단숨에 읽어 버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이후로. 지은이 없는 윗 시 한 편은 그 안에 담겨 있던 글귀들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영혼의 노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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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와 그 내용은, 1954년에 전남 완도에서 출생한 임철우님의 책에서 옮긴 것입니다.  "5. 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소재로 한, 총 5권의 "봄날(문학과 지성사, 1997)"이라는 소설 가운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임철우는 현재
한신대학교 인문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위 소설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 특히 젊은이나 청소년이라면, 꼭 읽어 보아야 할 책입니다.

   제 나름의 추천 도서이기도 하며, 시대적으로 조금 늦은 감이 있으나, 필독도서로 강력히 강력히 추천합니다. 28주년을 맞는 이 오월에, 그 당시 광주 시민들의 외로웠던 뜻을 기리고 되새기며, 부담없이  읽어볼 만한 교육적인 책으로 적극 권장합니다.

   저도 책 보따리 어디 깊숙히 먼지 쓰고 숨어있을 "봄 날"을 찾아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주말로 시작된 오늘과 내일, 의미있는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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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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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5.18 광주항쟁을 책으로 되새겨 봅니다.

    Tracked from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2008/05/18 10:49  삭제

    <오월>, 이철수, 1990, 37cm * 35.5cm 오늘은 5월 18일 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날이지요. 저도 그냥 무심코 지날 뻔 했으니까요. 그러다 초하님의 글을 보고 퍼뜩 '아! 맞아 5.18'이구나 하고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항쟁. 그냥 지난 과거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가슴 아픈 과거이지요. 그렇기에 저도 한때는 '잊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했는데, 제가 잊어버리고 있네요. 저뿐만이 아닌듯 합니다. 영화 <화려한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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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휴..
    조용할날이 없는 5월..
    내년엔 무사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