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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다른 두 화가나 여러 화가의 비슷한 그림과 그 느낌을 서로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일 것이며, 그 유희와 희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앞에서도 "예수와 마리아의 대화를 질투했던 마르다"란 제목으로 지미라즈키(Henryk Hector Siemiradzki, 폴란드, 1843-1902)와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 네덜란드, 1632 ~ 1675)의 두 그림을 함께 비교, 감상하였습니다. 그 표현법이 사뭇 다르기도 하고 또 느낌이 비슷하기도 하여 제겐 특히 더 즐거운 감상이었습니다.

   오늘 감상할 작품의 작가, 빌헤름 하메르쉐이(Vilhelm Hammershøi, 덴마크, 1864-1916)도 그런 화가들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앞서 소개한 베르메르와 자주 비교되는 화가입니다. 앞으로 베르메르의 빛 고운 그림과 비교되는 하메르쉐이의 실내그림도 준비하고 있으므로, 관심 갖고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여백의 미를 강조한 동양화 같은 숲 풍경

   하메르쉐이는 오늘 감상하는 아래 풍경화들과는 달리, 베르메르처럼 실내와 관련한 그림, 즉 풍속화를 많이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베르메르와 자주 비교되는 까닭은 빛의 미묘한 흐름과 그 정교한 느낌을 섬세하게 잘 표현한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많은 그림들 가운데서도 특히 풍경그림은 그리 많지 않은데, 그 그림들을 어렵게 모았으므로 함께 즐거운 감상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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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메르쉐이의 자화상 ⓒ 2008 Hammershøi

   산과 나무를 주제로한 부쉘(Michael Busselle)의 그림들과 산이란 제목으로 연작을 그린 유영국의 그림, 나무를 주제로 한 쿡(Robert Cook)의 그림과도 비교해 보게 되면, 그림을 감상하는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모두 함메르쉐이의 오늘 소개하는 그림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이들은 아주 비슷한 분위기와 느낌을 표현하고 있으며, 오늘 이를 계기로 비교해 보시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그림에 앞 붙인 하메르쉐이에 대한 소개와 그가 직접 그린 자화상, 그의 그림 7 점, 그리고 그리자유 기법에 대한 설명들은 브리태니커백과사전과 구겐하임 박물관(http://www.guggenheim.org), 함부르그예술가(http://www.hamburger-kunsthalle.de), Get2net(http://hjem.get2net.dk), World Wide Arts Resources(http://www.wwar.com), 그리고 "보나르"란 예명의 주인장이 꾸리는 누리방(http://myhome.naver.com/ph4you/menu0.php)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누리방들도 둘러 보시면, 즐거운 구경이 될 것이며 작가의의 다른 그림들도 더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덴마트 미술계에서 논란이 되었던 하메르쉐이

   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함메르쉐이의 약력과 그림 세계에 대해 먼저 살펴봅니다. 그는 1864년에 덴마크의 코펜하겐(Copenhagen)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나이 8세 때 화가로서의 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 코펜하겐에 있는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합니다. 5년간의 재학기간 중 마지막 2년 동안은 보수적인 왕립학교에 비해, 보다 진보적인 학교(De Frie Studieskoler)에서도 수학하였습니다.

   21세 때인 1885년에는 그의 누이동생, 안나(Anna)의 초상화(Portrait of a Young Girl)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독창적이었는데 당시의 자연주의를 무시하였으므로, 덴마크 미술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아래 그림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림의 분위기는 매우 쓸쓸하며 조용하고 서정적입니다.

     베르메르와 후크의 영향을 받은 하메르쉐이

   또한 그가 매우 존경했던 휘슬러(Whistler, James Abbott McNeill, 1834~1903)를 포함하여 당대를 주도했던 화가들이 많이 사용한 기법이 그리자유(grisaille : 아래 설명글 참조)이며, 그도 역시 이 기법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아래 풍경그림에서도 회색 계열이 단연 돋보이며, 명암이 강조되어 있어 시원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주며, 다른 그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맛볼 수 있습니다.

   1887년, 그가 네덜란드의 17세기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방문하였는데, 베르메르(Vermeer)나 후히(후크, Pieter De Hooch, 네덜란드, 1629~1684 )와 같은 네덜란드의 거장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그 이후의 작품들에서 나타납니다. 그가 베르메르와 자주 비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벨기에, 독일, 이태리,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을 두루 여행하며 작품활동을 하였고, 1889년 파리(Worldas Fair)와 유럽의 다른 곳에서도 작품전시회를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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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제의 풍경(Landscape View of Lejre) ⓒ 2008 Hammersh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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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제의 풍경(Landscape View of Lejre) ⓒ 2008 Hammersh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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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Landscape) ⓒ 2008 Hammershøi



   위 그림도 마찬가지지만, 함메르쉐이는 부드러우면서도 옅은 색채의, 특히 회색 계열의 사실주의적인 그림들을 주로 그렸습니다. 종종 비교되곤하는 베르메르(Vermeer)와 마찬가지로, 실내 풍경을 주로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폭의 대담한 구성과 부드러운 붓의 농담이 주는 쓸쓸한 풍경

   그의 그림 대부분은 17세기에 지어진 고향 코펜하겐에 있는 그의 집에서, 가구도 별로 없는 방들을 소재로 한 것입니다. 그 아무도 없는 방의 적막한 이미지는 우울, 고립, 상실의 느낌에 젖어들게 하며,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작가의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여인 한 명의 뒷모습 그림도 보는 이로 하여금 외롭고 쓸쓸한 서정을 느끼게 만듭니다.

   본래는 실내와 관련한 풍속화와 더불어 인상적인 초상화, 그리고 건축양식의 그림을 주로 그렸으며, 더러는 오늘 감상하는 작품들과 같은 풍경화도 그렸습니다. 부드럽고 연한 색의 그림물감을 사용했던 후기의 작품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비슷한 서정을 느끼게 되는 베르메르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풀어 설명하면, 회색 계열의 색채와 은은한 색체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 감상하시는 일곱 작품들과 같이 특히 윗 쪽 화폭으로 하늘을 화면의 2/3 까지 구성하여 적막감과 함께 동양화 같은 여백의 미를 살리고 있습니다. 또는 마치 한국화를 보는 듯, 붓의 농담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가 독자(관객)로 하여금 쓸쓸하고 허허롭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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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그루의 떡갈나무 (Two Oak Trees) ⓒ 2008 Hammersh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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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니 근처의 마가나무 가로수 길(Avenue of Rowan Trees near Sne) ⓒ 2008 Hammersh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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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밤나무 슾(Young Beech Forest) ⓒ 2008 Hammersh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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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내부 (Forest Interior) ⓒ 2008 Hammershøi



   바로 위 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렘브란트(Harmenszoon van Rijn Rembrandt, 네덜란드, 1606-1669)나 베르메르처럼 하베르쉐이의 그림에서 빛은 가장 주요한 요소입니다. 렘브란트의 강한 빛과 사선으로 떨어지는 직사광선과 베르메르의 창문을 통해 번지는 밝은 빛이 아닌 약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간접적인 빛의 효과를 활용하였습니다.

     그리자유 기법과 붓을 사용한 부드러운 채색의 풍경화

   즉 화폭에 묘사된 배경과 전체적인 공간이 넓어 보이도록 만들었으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시원해지고 독자(관객)의 마음이 평온해지게 되는 까닭입니다. 나무의 크기를 고려하고 대조시켜 거리감을 강조하였으며, 하늘과 대지를 화폭의 위 아래로 양분함으로써 그 중간에 서 있는 나무들의 존재감과 그 자태, 전체적인 실루엣이 품고 있는 입체감과 서정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양분된 구성에 있어서, 화면의 윗 공간인 하늘이나 화면 아래 바닥의 숲 그늘을 대비하여 상대적으로 넓거나 좁게 배치하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런 대비와 구성으로, 관객이 화면에서 직접적으로 볼 수 없는 배경과 부분까지도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드는 여백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또한 작가의 서정적인 느낌과 정서까지도 공감할 수 있게 합니다.

   함메르쉐이는 생애 동안 왕성한 작품활동과 전시회를 통하여 전 유럽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러나 1916년 51세의 나이로 작가가 사망한 후, 안타깝게도 그의 국제적인 명성은 점차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빛의 흐름을 은은하게 묘사한 덴마크의 베르메르 

   하지만 그의 고향인 코펜하겐과 파리에서 수년 전 처음으로 열린 그의 회고전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잠자던 그의 그림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비평가들은 그와 그의 작품을 "덴마크의 베르메르(Danish Vermeer)" 라고 환호하였습니다.

   정작 그의 고국인 덴마크에서는 오히려 다소 이국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는 빛을 활용한 서로의 그림이 비슷하면서도 그 느낌은 사뭇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너무도 고요하고 적막하여, 쓸쓸하게까지 느껴지는 함메르쉐이의 풍경화를 감상하였습니다. 오늘 감상하신 것처럼, 그의 풍경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차분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매력도 있습니다.

   이는 작가의 그림 전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자유 기법을 통한 그만의 은은한 색체와 동양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백의 여유로움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수묵화에 있어서의 붓을 사용한 듯 부드러운 명암이 대비된 채색 기법 때문일 것입니다.



    ** "그리자유(grisaille)"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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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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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하..제가 좋아하는 느낌의 작품들이네요. 그래서 더욱더 반갑습니다...^^
    저는 '사진이다'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봤는데요. 분위기가 참 차분하니 좋습니다.
    며칠간 안보이셔서 적적했는데(?) 비오는 날 이렇게 다시 뵙게되니 상큼합니다...^^

    • 한상천님도 이런 느낌의 작품들을 좋아하시는 군요...
      부족한 글에 자주 발행도 못하는데, 기다려주시고 반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런 작은 말 한마디가 더 큰 힘이 됩니다.

  2. 그림 멋지네요
    근데 그림 잘그리는 사람들이 엄청 신기하지만
    그림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도 신기합니다
    그림은 너무 난해해요

    • 모노님, 오랜만이죠. 참 반갑고 반갑습니다.
      그림 뿐 아니라 사람도 참 난해한 동물 아닌가요?
      그 사람이 창작한 그림이니... ^^
      그냥 즐겁게 감상할 수 있으면, 그림과 소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해가는 대로 보고 느끼고...

  3. 뒤로 탁 터져 있으면서도 쓸쓸한 느낌이 잘 전해지는군요. 요즘의 도시의 일상사에서는 저런 풍경을 접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4. 느낌들이 전체적으로 너무 좋네요

  5. 개인적으로 저런 느낌의 풍경화를 좋아하는데, 정말 부드럽고 조용한 분위기의 그림들이네요.

    • 메이님이 즐거운 감상되셨따니, 또 좋아하는 그림들을 만나셨다니, 제가 더 즐겁습니다.
      조용히 자주 다녀가시길~~~

  6. 조용한 풍경화가 넘 멋지네요.

    • jyudo123 님, 제 답글이 넘 늦어버렸죠... ^^
      몸도 않 좋지만, 참 요즘 넘 정신이 없습니다.
      조용한 나들이 종종 다녀가시길 바랍니다~~

  7. jyudo123 님, 제 답글이 넘 늦어버렸죠... ^^
    몸도 않 좋지만, 참 요즘 넘 정신이 없습니다.
    조용한 나들이 종종 다녀가시길 바랍니다~~

  8. 잔잔한 그림이 동양화의 여백의 미를 연상하는군요
    초하님의 올리신 글과 그림 감상 잘했습니다
    저는 초하님의 글을 좋아해요
    초하님의 다른 글도 읽기 위하여 매일 방문하겠습니다.

    • 부족한 글도 좋아해주시는 우록님, 감사합니다.
      여유 날 때마다 들르셔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또 가능하시면 안부도 전해주시구요.
      벌써 한 주의 중간입니다. 좋은 하루되시길...

  9. 잔잔하네요 동시에 저 들판을 마구 달려보고프다는 생각도....

    • ㅎㅎ 이리나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시죵?
      저도 무척 좋아하는 그림 가운데 하나랍니다.
      앞으로는 자주 뵈요. 바쁘신가요??




 
  장마 전선이라도 형성된 것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비를 뿌리더니 날이 많이 더워졌습니다. 덕분에 들녘의 곡식이나 과수원의 열매는 제철을 만난 듯 튼실하게 무르익어가는 계절입니다.

      밀 추수 현장을 실감나게 담아낸 전원풍경

   가을추수에 앞서, 북녘의 초여름 추수는 지금도 한창일 것이나 우리 남녘 들판의 보리나 밀 추수는 거의 다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직접 보며 자랐던 황금들녘이 이따금씩 그리워지곤 하는데, 직접 그 현장을 구경하기가 참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대부분 기계로 심고 베는 대량생산을 주로 하므로, 산촌의 작은 들판이나 외진 마을이 아니면, 손수 낫을 손에 쥐고 밀 베는 풍경을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밀을 추수하는 황금들녘으로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루카스 반 발켄보르히의 약력과 그림은 "Web Gallery of Art(http://www.wga.hu)"와 "Art Renewal Center(http://www.artrenewal.org/asp/database/art.asp?aid=5323)"에서 도움을 얻었으며, 영문 설명을 번역하여 종합, 정리한 것입니다. 반드시 클릭하셔서 본래의 큰 그림으로, 실감나는 감상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계절을 주제로한 풍경화를 주로 그렸던 발켄보르히

   그림을 읽기 전에, 먼저 작가의 약력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략 15세기 전에 활동했던 발켄보르히(Lucas van Valkenborch, or Valckenborch, or Valkenborgh, 벨기에, 1530-1597)는 네덜란드의 풍경과 풍경 양식의 그림를 주로 그렸던 화가입니다.  또한 그의 동생 마틴 반 발켄보르히(Martin van Vankenborch 1, 벨기에, 1534, 5-1612)도 역시 화가였습니다.

   개신교도였던 발켄보르히는 박해를 피해 다녀야했습니다. 당시 1560년에서 1565년 까지, 벨기에 북부에 있으며 동화, "플란더즈의 개"의 배경이었던 마을로, 앤트워프(Antwerp)에 있는 멀린협회(Malines Guild)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1593년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 정착하기 전까지는, 머사이어스(Matthias) 대공(옛 오스트리아의 왕자)을 위해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루카스 발켄보르히와 그의 동생 마틴 발켄보르히는 바벨(Babel)탑과 사계절을 주제로 그림그리기를 즐겨하였습니다. 지금 그리 많은 작품이 전해지고 있지는 않지만, 4 계절 연속작품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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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풍경(Landscape in Summer), 1585, Oil on canvas, 116 x 198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atria ⓒ 2008 Valckenborch


     오늘 감상하고 있는 작품도 그 사계절 가운데 하나인 "여름"에 해당하는 그림입니다. 특히 더 주목받고 있는 겨울작품을 포함하여 다른 작품들도 기회가 되면 소개할 생각이므로 관심어린 기대바랍니다.

     16세기에 가까운 먼 과거에 그려진 그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려 500 년 전 상황의 그림인데도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이 느껴지며 매우 극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자신의 어릴 적 마을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고, 불과 몇 년 전의 어느 잘 알고 있는 시골 풍경을 회상하고 있는 것처럼, 매우 친숙하고 정겹게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독자와 관객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는 밀추수 풍경

   위 그림의 작가가 둔덕 어디 쯤, 아래를 내려다 보는 관점에서 구도를 잡음으로써, 독자와 관객들이 여유로운 시선으로 그림을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밀 추수하는 농촌의 전체적인 풍경에서 참 평화롭고 시원한 시야를 선물해주고 있습니다.

     화면의 오른쪽 앞과 사선으로 반을 차지하고 있는 밀 밭의 이삭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서로 다른 몸짓과 익살스런 표정,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껍질을 비롯하여 빛을 받고 있는 잎새의 하늘거림 하나하나까지, 모두가 잘 어울어지는 그림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진보다도 더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또한, 오른쪽 위에 배경으로 배치한 산과 마을의 원경을 적절히 표현하여 화폭 안의 원근감과 공간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밀알의 황금빛을 위주로 하여 전체적으로 밝은 색체를 활용하여, 풍요롭고 시원한 느낌을 훨씬 더 풍부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주하고 있으면, 새참을 먹는 곳에 함께 끼어앉아 얻어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낫을 들고 밭에 뛰어들어 밀베기를 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한 추수하고 돌아오는 구르마 뒷단에 올라타보고 싶기도 하고, 열매를 털고 있는 아름드리 나무에 나도 올라가 따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게 만듭니다.

   초록빛 풀밭의 양들 곁에 앉아 관찰하거나 함께 풀향에 취해보고 싶기도 하며, 벌판을 마구 뛰어다니고 싶은 충동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어릴 적 귀찮게 느껴졌던 어떤 심부름이라고 해도 이런 마을이라면, 달갑게 달려나갈 수 있을 것처럼 저절로 즐거워지고 흥겨워지게 만드는 풍경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이 즈음을 "맥추 감사절" 이라 하여, 보리추수를 기념하는 감사 예배로 드립니다. 그림의 뒷 배경으로 멀리 보이는 교회에서도 맑고 고운 어린아이의 합창소리가 울려퍼지는 듯,  발켄보르흐의 그림 속을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여유로워지고 잔잔한 평화도 함께 밀려오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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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ㅎ 전 즐거움보단 같이 일하고 싶네요.,

  2. 웅..이분의 그림은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네요.
    주제넘게 말씀드리자면 약~간 민화의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요..뭐..그냥 그렇습니다...^^
    옛날 분이신데 굉장히 세련되셨네요.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해 지는데요...^^

    • 한상천님, 위 볼켄브로히의 그림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아도, 한 번 보면 잊지 못하여 기억에 남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당시에도 환영받던 그림들이랍니다. ^^

  3. 아 막...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어렸을 땐 시골에서 자랐는데 가을되면 추수하는 데 따라가곤 했거든요.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 물론 그림은 서양의 것이지만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지 수확의 기쁨은 다 똑같은 거 같아요

    • 오랫만에 뵙는 이리나님, 참 반가워요~~
      수확의 기쁨이 어찌 다르겠어요... 또 그 현장을 한 번이라도 구경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쩌 위 그림에 무반응이겠어요?
      볼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그림이지요.

  4. 참 평화롭고 평안한 풍경이네요...^^

    콧노래 부르면서 뭔가 하고 싶은걸요...ㅎㅎ

  5. 그렇군요. 가을에만 추수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밀이나 보리 추수철이라는 걸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네요. 곰탱이 같은 인간입니다. 저도 새참 먹는 자리에 슬쩍 꼽사리 껴서 농주나 한 잔 얻어먹고 싶네요.

    오백 년 전 풍경 같지 않네요.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는 사람만 없을 뿐 불과 엊그제 모습 같습니다.

    • 나무님 잘 지내시죠?
      그죠. 요즘은 예전 같지 않고 보리나 밀 추수 현장을 우리나라에선 보기 어려워졌죠. 수요도 적고,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재배 농지도 거의 없는 것 같구요. 그래서 보리밭 구경도 어려워졌구요...
      휴대전화 얘기 하시니, 언뜻 모 광고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해학이 떠올랐답니다. ㅋㅋㅋ

  6. 노동의 즐거움 느껴지는 그림이네요.
    종종 들러서 그림 구경할께요^^

    • 노동의 즐거움....
      그런거 느껴본지가 언젠지....
      노동의 즐거움....

    • ㅎㅎㅎ 쌀국수님, 사연이 있겠지만, 닉네임이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 같고, 무척 재밌습니다.
      반갑구요, 기다릴테니, 종종 들러 구경하며 쉬어가시고, 댓글로 안부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찾아 갑니다. 지금!!

    • ㅎㅎ 열정 넘치는 열산성님,
      노동의 즐거움은 늘, 아니 거의 매일, 적어도 하루에 한번 정도씩은... ^^ 느끼는 것 아닌가요?
      아마도 땀 흘리는 신성한 노동에 대한 즐거움과 그리움을 얘기하신 것이겠지요. 의식적은 운동으로 인한 땀이 아니면 요즈음은 그 느낌을 맛보기 어려워진 것 같아 저도 아쉽습니다.
      ㅎㅎ 노동의 즐거움... ㅎㅎ

  7. 동양이나 서양이나 농촌풍경은 비슷한가 봅니다~ ^^

  8. 술이 든 것으로 보이는(?) 항아리를 들고 벌컥벌컥 들이키는 사람이 인상적이군요 ㅎ 서양 낫은 우리 낫과 달리 길고 커다랗군요. 우리 낫은 허리를 굽혀서 사용해야 하는데, 왠지 서양 낫이 더 편해 보이네요 ㅎㅎ

    • 반가운 리브홀릭님, 그러잖아도 바쁘신가보다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거죠??
      세밀하게 보셨네요, 저도 낫의 모양과 크기를 보고 민족성을 생각해본 적이 있답니다. ^^





   이맘 때 즈음이 되면, 여행에 대한 그리움과 계획으로 마음 들뜨기도 합니다. 또는 맑고 푸르른 하늘에 따스한 햇살과 온기를 머금고 영글어가는 연초록빛 보리 들판과 황금빛 밀밭 들녘이 눈에 더 선연해집니다.

   그 황금빛 풍성함을 직접 느껴 보려면, 가까운 도시근교나 야외에라도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우선 그 그리움을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의 "밀밭 풍경"으로 달래보려고 합니다.

   그의 생애 가운데 완성도 높은 그만의 특징을 보여주며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200 여점의 그림을 그렸던 1989년과 그가 사망한 1890년 사이에 그려 완성했던 "밀밭 풍경" 그림 4점을 고흐의 생일을 기리며 준비했습니다.

   아래 네 점 모두에서 고흐 특유의 강렬함과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 그림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정취, 그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실감나는 감상을 위해 클릭하여 반드시 본래의 큰 그림으로 감상하시고, 이미 앞에서 소개했던 관련 글의 다른 그림들과 비교하여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네 그림 모두 작가가 사망한 지도 118년이나 지난 고흐의 작품들입니다. 즉 저작자 사후 70년이 훨씬 지난,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작품들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컴이나 블로그의 바탕화면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빛의 흐름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밀밭 풍경

   오늘의 고흐 그림과 약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A R C(http://www.artrenewal.org)", "반고흐 미술관(http://www.vangoghmuseum.nl)", 문화 예술사(http://windshoes.new21.org), 그리고 "반고흐 영혼의 편지(Dear Theo: The Autobiography of Vincent Van Gogh, 도서출판 예담 1999)",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였습니다. 더 관심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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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만큼 우리에게 널리 잘 알려진 화가도 없을 것입니다. 전해지고 있는 그의 작품 수도 많거니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화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만큼,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화가입니다.
 

   그는 지금도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같은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1606-1669)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의 화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현대 예술의 "표현주의(expressionism)"에 강하게 영향을 미친 화가입니다.

밀짚모자를 쓴 자화(Self-Portrait with Straw Hat), 1887, Summer,
Oil on cardboard, Amsterdam Van Gogh Museum, Netherlands
ⓒ 2008 Van Gogh

   단지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고흐가 열정적으로 제작했던 1000여 점이나 되는 그의 작품들은 특히 강렬한 색깔과 거친 화풍, 그리고 살아 생동하는 힘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를 자살에까지 몰고 간 정신질환의 고통과 불운한 그의 삶까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일까요? 흐르는 시간과 함께 잊혀지지 않고 1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의 대표작으로는 다수의 "자화상"과 우리에게도 친숙한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해바라기(Sunflowers)" 연작 등이 있습니다.

     개신교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나 목사관에서 자랐던 고흐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대부분의 그림은 특히 그의 생애 마지막 3년 동안에 제작했던 작품들입니다. 그렇게 그의 화폭에 등장하는 모든 피사체들은 살아 꿈틀거리는 것처럼 생생하게 생동감 있게 느껴집니다.

   오늘 감상할 밀밭과 관련한 세 작품도 이 시기에 완성한 그림입니다. 그러나 그가 평생 동안 그린 800점 이상의 유화와 700점 이상의 데생 가운데, 살아 생전에 팔린 작품은 단지 데생 한 점 뿐이었을 만큼, 경제적으로는 매우 어렵고 극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고흐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개신교(칼빈교) 목사였으며, 유일하게 그 가업을 이어받은 아버지, 테오도루스 반 고흐(Theodorus van Gogh, 1882-1885) 역시 한 작은 시골 마을의 개신교 목사였습니다. 6남매 가운데 맏아들이었던 고흐는 1853년 3월 31일에, 네덜란드 남부의 브라반트 지방에 있는 한 작은 마을(포르트 준데르트)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는 어린시절을 성직자였던 아버지의 목사관에서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1880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할 때까지는 화랑이나 화상의 점원, 중개인, 목사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 날마다 예술작품을 접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렘브란트와 당시 작품 활동을 하던 프랑스의 화가,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와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프랑스, 1796~1875)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는 밀레의 많은 그림들을 습작하였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화폭의 구성과 색채까지 똑같거나 닮은 적잖은 작품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대의 렘브란트, 밀레, 코로, 고갱과도 교류했던 고흐

   반 고흐의 활동 시기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873-1885년의 첫 번째 시기인 1880년대 전반기에는 잇따른 실패와 진로의 전환이 있었던 수습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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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에는 미술 기법을 익히면서 오로지 데생과 수채화에만 전념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까다로운 기질과 씨름하면서 진정한 자기표현의 수단을 찾으려고 애쓴 시기였으며, 이 때 자연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후반기인 1886-1890년의 두 번째 시기에는 그림에 몰두하면서 빠른 성장과 성취감을 가질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1889년부터 정신적인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1886년 봄부터 1888년 2월까지 파리에서 화법의 변화를 겪으면서 그 자신의 개성적인 화풍과 붓놀림을 창조해냈습니다.

▲ 이젤 앞의 자화상(Self-Portrait in Front of the Easel, 1888, Oil on canvas, Rijksmuseum Vincent van Gogh, Amsterdam, Netherlands ⓒ 2008 Van Gogh

   이 때 인상파(impressionism)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의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화풍으로 바뀌었으며,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색상도 다채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시각도 전통적인 시각에서 더욱 많이 벗어났으며 색조도 많이 밝아졌습니다.

   1888년 초, 파리 교외를 그린 몇 점의 풍경화와 "탕기 영감의 초상(Portrait of Père Tanguy)", 바로 위에 소개한 고흐의 초상화에서 감상하고 계신 것처럼, "이젤 앞에 선 자화상 (Self-Portrait in Front of an Easel)", "해바라기(sunflouwers)"와 같은 걸작들에서 반 고흐의 후기인상파 양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표현주의적, 상징주의적, 본능적인 고흐의 그림

   첫 번째 전성기에 그린 그림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뚜렷한 윤곽과 강렬한 색채의 효과를 통하여 주제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림에 대한 그의 관점은 표현주의적인 동시에 상징주의(symbolism)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자연스럽고도 가장 본능적인(impulsive)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자기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자연의 어떤 효과나 분위기를 포착하기 위하여,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격렬하게 그려나갔던 것입니다.

   후반기에는 고갱(Paul Gauguin, 프랑스, 1848-1903)과도 그의 작업실에서 2개월 동안 함께 일하면서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사건건 의견대립이 있었고 성격도 잘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사이가 급속히 나빠지기도 합니다. 1888년 크리스마스 전 날에는 신경과민으로 발작(또는 다툼으로 인해 고갱이)을 일으켜 그의 왼쪽 귀 일부를 잘랐다고도 전합니다.

   그의 생애동안 정신적, 물질적인 지주였으며, 결혼하여 아들 한 명을 두었던 동생 테오(Teo van Gogh)가 있습니다.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그에게 생계를 의존한 데서 오는 죄의식과 성공하지 못한 열등감으로 이 시기는 결국 자살로 끝나고 맙니다.

   1890년 7월 27일, 당시 그의 나이 서른 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계속되는 신경증과 발작, 폭력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가 그림으로도 즐겨 그렸던 아래 그림의 밀밭 언저리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말았습니다. 고독을 이겨내거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그는 자살을 시도했고, 이틀 뒤 테오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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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밭 (Wheat Field), 1889, Oil on canvas, 73.5 x 92.5 cm, Narodni Galerie, Prague ⓒ 2008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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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나무가 있는 밀밭 (Wheat Field with Cypresses), 1889, Oil on canvas, 51.5 x 65 cm, Private collection ⓒ 2008 Van Gogh



   위에 보고 확인하는 것처럼, 그림 전체가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 바람에 춤이라도 추는 듯, 고흐의 화풍은 무성하게 요동치는 들풀과 봄날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살아 약동하는 색채와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림들

   위 두 그림과 아래 첫 그림에 등장하는 측백나무(삼나무)와 바람에 흘러가는 먼 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가까운 구름, 그리고 흘러가면서 함께 하나가 되거나 흩어지기도 하는 대기의 하늘이 지금도 살아서 약동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밝고 고운 빛으로 서로 어우러진 색채와 억제된 색조를 사용함으로써 지극히 조용한 통일성도 보여주고자 노력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를(Arles)에서 생 레미(Saint-Remy)로 옮겨간 고흐는 그곳에서 아를 시대와는 또 다른 조화와 성숙을 달성합니다. 해를 쫓아다니는 해바라기에 공감하였던 그가 생 레미에서는 힘찬 생명력으로 하늘이라도 뚫을 듯, 용솟음쳐 오르는 측백나무를 주제로 하여 풍경그림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이 외의 그림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 측백나무(삼나무)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포함하여 그의 그림들을 얼핏 보면, 고흐가 격렬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단면일 뿐입니다. 위 작품이 갖고 있는 구성적 안정감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위 두 작품과 아래 두 작품은 사물을 묘사하는 섬세함, 전체적인 조화, 그리고 통일된 채색법으로 또 다른 그의 일면을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흐 자신도 이 삼나무가 있는 밀밭 작품을 '내가 그린 가장 명석한 작품'이라 평가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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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나무와 별이 빛나는 길(Road with Cypress and Star, 1890, Rijksmuseum Kroller-Muller, Otterlo) ⓒ 2008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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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뿌린 하늘 아래 까마귀 나는 밀밭(Wheat Field Under Threatening Skies), 1890, Oil on canvas, 50.5 x 100.5 cm, Vincent van Gogh Museum, Amsterdam ⓒ 2008 Van Gogh



   "건강을 위하여 뜰에서 제작을 하고, 꽃이 피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바다와 같은 넓은 언덕을 향하여 멀리 펼쳐져 가는 보리밭의 그림에 지금 열중하고 있습니다." 고흐의 편지 가운데 있는 글입니다.

     생애 마지막 순간, 그 내면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는 그림

   그는 또한 "저는 완전히 이 보리밭의 대작에 소모당하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위 마지막 그림은 고흐 최후 3점의 대작 가운데 하나로, 먹구름 낀 날 어두운 폭풍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밀밭 풍경입니다.

   아래 마지막 대작은 위 세 그림과 같은 밀밭 풍경이지만, 그 느낌은 완전히 다릅니다. 아침과 저녁 풍경이 햇빛의 흐름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듯, 맑은 날과 당장 비라도 올 것처럼 먹구름이 내려앉은 날의 밀밭 정경이 무척 대조적입니다.

   붓의 터치에 있어서도, 위의 두 그림은 부드러운 곡선인데 비하여, 아래의 구름 낀 밀밭 채색은 굵고 직선이며 더 강렬합니다. 배경의 구름 역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이 아니라 당장 물이라도 쏟을 듯 낮고 넓게 굳어진 모양입니다.

   그 아래 까마귀까지도 무리지어 군무를 추듯, 힘차게 나는 모습이 보는 독자로 하여금 무겁고 음산한 기운을 느끼게 만들며, 비장한 결심까지 생기게 만듭니다. 이 그림을 통하여 그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했으며, 이미 그 결심을 예언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불길한 그의 종말을 그림으로 예언했던 작품들

   이런 추측이 가능한 것은, 실제 그가 자살을 시도한 것은 위 그림을 완성하고 난 불과 며칠 뒤의 일이었습니다. 또한 색채 면에서는 아래의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만큼 불길해 보이지는 않지만, 맨 위의 그림들에서 화면의 위 쪽 반 이상을 하늘로 배치함으로써 무한한 공백감과 불길 이상의 종언을 예고한 것 같은 메세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1890년 7월 27일, 결국 그는 밀밭 언덕에 올라가 권총을 자기 가슴에 겨누어 쏘았습니다. 탄환은 심장을 뚫었고 고흐는 상처를 손으로 누른 채, 걸어서 돌아와 조그만 지붕 밑 그의 방에 누웠습니다.

   모든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였고, 고통을 참으면서 파이프를 물었습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