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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또 다른 주말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를 구경 못하는 장마여서인지, 주변 어른들은 "마른 장마"라십니다. 오늘도 비를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 감상할 아래 그림은 처음으로 소개하는 로드 프레더릭 레이턴(경)(Lord Frederick Leighton, 영국, 1830-1896)의 작품입니다. 성경의 일화를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의 그림으로 함께 감상한 적이 있는 "다윗(David)"을 소재로 한 낭만적인 분위기의 종교그림입니다.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낭만적인 종교 그림    

   오늘의 그림과 레이턴에 관한 약력은 브래태니커 사전과 "ARC(http://www.artrenewal.org)", 그리고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을 참고하였으며, 원문을 번역, 정리한 것입니다. 직접 방문하시면, 작가의 더 다양한 그림들도 감상하실 수 있으므로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아래 작품은 본래 크기의 큰 그림으로 준비하였으므로 클릭하여 실감나는 감상을 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컴의 바탕화면이나 블로그의 첫 화면으로도 활용하여 감상하실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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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턴(경)은 칭송받던 영국의 고전주의 화가이자 조각가, 일러스트 화가였으며 작가로도 활동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예술(Victorian art)을 선도했던 인물이며, 귀족 출신의 첫 미술가였습니다.

   거의 20년 동안이나 그는 왕립 미술원(the Royal Academy of Arts)의 원장을 엮임했으며, 두터운 신망으로 그의 임기 동안에는 경쟁자가 없었을 만큼 성공한 화가였습니다. 그는 맡겨진 임무를 양심어린 공평함으로 당당히 수행하였던 것입니다.

 ▲ 쿠르츠(Don Kurtz)가 그림으로 제공한 레이톤의 초상화
 ⓒ 2008 Leighton
 

   그는 아래 그림의 달의 여신, "포이베(Phoebe)"나 동양학자이자 탐험가였던 "버턴(Richard Burton)"의 초상화에서 확인 수 있는 것처럼, 뛰어난 초상화가(portraitist)였습니다. 또한 초기의 젊은 시절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보냈던 지성적이며 국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레이턴은 1830년 12월 3일에 영국 북동부에 있는 요크셔(Yorkshire) 주, 스카버러(Scarborough, England)에서 태어났으며, 일생을 대부분 영국에서 보내다가 67세의 나이로 1896년, 런던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가족은 할아버지가 러시아 왕가에서 의사(physician)로 일했으며, 그의 아버지도 또한 의사(Doctor)였을 만큼 재정적으로도 풍족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예술을 선도했던 귀족 출신의 예술가

   그러므로 그의 나이 10대 초반에 베를린 예술 학교(the Berlin School of art)에 등록하여 미술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다음 해에 이탈리아의 중부도시, 플로렌스(Florence)에 있는 예술원(Art Academy)에도 등록하여 다양하게 수학하였고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나이 26세 되던 해인 1855년에도 플로렌스 지방과 로마에서 지내며 방대한 작품들을 생산하였습니다. 이런 국제적인 활동으로 나자렛(Nazarenes)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Italian Renaissance painters)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당대에 대부분 그의 폭넓은 영향을 받지 않은 화가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결과 왕립미술원에 전시되었던 "치마부에의 성모(Cimabue's  Celebrated Madonna)"라는 작품은 당시의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 구입하기도 하였습니다.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많은 후대의 사람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레이턴의 인상적인 고전주의 그림들을 "1870년대를 대표하는 장식미술"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레이턴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또한 그의 중년에는 난청이 발병하여 왕립 미술원장직을 퇴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생동안 정력적으로 활동하였으며,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그림에 몰두하여 후대 화가들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남긴 화가입니다. 67세되던 해인 1896년, 그의 장례식은 성 바울 대성당(St. Pauls Cathedral)에서 치뤄져 안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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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의 여신, 포이베(Phoebe), 22 x 24 inches (55.88 x 60.96 cm), Collection of Fred and Sherry Ross, USA ⓒ 2008 Leighton



   무척 평화롭고 여유로워보이는, 아래 그림은 " 다윗(David at rest)" 을 소재로한 인물화이자 풍경화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인 그림의 인물이 다윗이겠지요. 예수 이전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 구약에 너무도 유명한 그의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어 대부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다윗에 대해 간략하게만 되짚어 보겠습니다.  

     위대한 왕이요, 뛰어난 시인이었던 다윗 임금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목동으로 자랐던 미소년 다윗은, 적국이었던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과 직접 맞붙어 싸우겠다고 나서는 용기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대결에서 양들을 돌보며 평소 닦았던 돌팔매질을 이용해 적장 골리앗의 이마에 돌을 정확히 맞힘으로써, 그 전쟁에서 자국을 승리로 이끌었던, 성실하면서도 용기있고 운도 좋은 사나이였습니다.

   그 뒤에도 출장하는 전쟁터마다 늘 승리로 이끌었으며, 그런 업적과 국민들의 신임이 두터워지면서, 결국 이스라엘의 왕위에까지 오른, 역사적으로도 위대한 인물입니다.  먼 훗 날, 예수의 조상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기도 하고, 그 지혜가 세상 곳곳 널리 알려진 솔로몬 왕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문학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성경의 시편 150 편 가운데 가장 많은 73 편을 지었을 만큼, 뛰어난 시인이기도 합니다. 또한 비파와 하프를 연주하고 즐겨 감상하였으며, 합창단과 연주단원을 조직하여 전장에서 돌아오는 병사들을 노래로 환영하였을 만큼, 감성이 풍부한 음악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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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식 중인 다윗(David at rest), Oil on fabric, 1865, Cleveland Museum of Art, Cleveland ⓒ 2008 Leighton



     그런 그에게도 그늘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준 사울왕의 존재를 늘 경계하며 살아야 했으며,  왕궁에서 우연히 훔쳐보게 된,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에게 반하여 그녀를 탐닉하기도 했던, 나약한 한 인간이었습니다.  생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신께 바치고자 소망하였으나, 그러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욕심많은 나그네였던 것입니다.

   위 그림을 감상하며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바닥의 양탄자, 전망 좋은 풍경, 벗어 한 켠에 기대어 놓은 왕관, 그리고 그의 다소 느슨해진 여유로운 자태 등이 맞춤인 듯, 마치 연출하여 사진을 찍어 놓은 듯, 적절하게 매우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전체적인 색채의 배합도 붉은 빛으로 통일하여 단조로우면서도 무척 우아하고 멋스럽기도 하며 또 매우 아름답습니다.

     다윗의 일상과 일생을 동시에 표현한 인물화

   단색의 우아함과 고급스런 질감의 긴 옷이 다윗의 수염과 조화를 이루어 매력과 멋스러움을 더하였습니다.  하지만 배경으로 묘사된 노을진 풍경과 하늘을 바라보며 감상하는 다윗의 눈빛만은 그의 젊음과 열정을  연상시키는 듯 매우 또렷하게 살아있습니다.

   더불어 백성을 향한 정치와 관련 업무를 마친 뒤, 크나큰 왕궁의 외진 궁정, 옥상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쉼을 누리고 있는 다윗의 노곤한 일상이 잘 드러난 대작입니다.  또한 다윗의 일생을 연상하게 만들며, 우리네 인생의 뒤안길까지 떠올려보고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다윗이 왕위에 있던 말년의 어느날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지는 해와 노을진 하늘, 노을이 조명이 되어 더욱 풍성해 보이는 솜털같은 하얀 구름을 감상보며 명상에 잠겨있는 모습입니다.  살아 움직이고 있는 듯한 구름에서 그의 왕성했던 젊은 시절을 엿볼 수 있으며, 팔 벌려 세상을 품어 안고 있는 듯한 황금빛 하늘에서 평화롭고 여유로운 현재의 삶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 꾹 다문 입과 해 넘어가는 하늘로 비상하는 듯한, 비둘기 형상의 구름을 응시하고 있는 눈빛, 오므려 움켜 쥔 양 손, 상념에 젖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에서, 영화로운 그의 삶 뒤에 숨겨져 있는 인간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게 풍요롭고 화려해보일 것만 같은 다윗 왕에게도 서쪽 하늘로 지는 해나 노을과 닮아 있는 인간본연의 모습이 있음을 독자(관객)들에게 인지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를 깨닫고 있는 듯, 숙연한 다윗의 마음도 또한 엿볼 수 있습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왠지 쓸쓸하기도 한 장엄한 풍경 앞에, 감상하고 있는 독자들 모두 숙연해지게 만드는 그림입니다.  마치 우리 모두의 삶을 돌아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며, 내 인생의 뒤안길이 떠오르게 만드는 그림입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윗에 대한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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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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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휴식을 취하는 다윗의 외로움은 노인의 노년기에서 느껴지는 외로움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군요. 절대자의 외로움이겠지요?

    • ㅎㅎ 가별이님, 잘 지내셨죠?
      오늘은 날이 참 더웠습니다. 건강하리라 믿습니다.

      다윗이 절대 권력자였음은 분명하나, 저는 인간의 일반적인 외로움이 느껴졌는데, 댓글을 통해 통해 볼 때, 그림을 통한 독자들의 느낌은 각기 다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느낌을 나눌 수 있어 고맙습니다.

      새롭게 시작된 한 주, 좋은 월요일 맞으시고, 좋은 일만 가득한 한 주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휴가 다니시더라도 자주 뵐 수 있길 기다립니다.

  2. 풍요로운 황혼보다 나은 장엄한 황혼!
    좋은 그림, 좋은 글 잘 보고 "휴식 중인 다윗" 캡쳐해 갑니다.
    꾸벅~

    • 쓴소리단소리님의 "장엄한 황혼"이라는 표현이 정말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파란만장한 황혼이라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
      ㅎㅎ 레이턴의 그림도 모셔가셨군요. 잘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지난 주말을 먹고 자기로 보냈습니다. 지금은 한 주에 대한 기대로 충천해 있답니다. 좋은 한 주 맞으시길 바랍니다~~

  3. 제가 다윗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돌팔매로 거인 골리앗을 이겼다'는 것뿐이었는데, 몰라도 너무 몰랐었네요...쩝.
    최고권력의 위치에 있던 왕의 휴식치고는 참 외롭고 허전해 보입니다.
    그런데요, 이 그림을 보면서 전혀 상관없는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불패의 신화를 남겼지만 가족의 죽음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였다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삶이 왜 떠오를까요?
    신앞에서 그리고 대자연앞에서 인간은 평등한가 봅니다...

    • 저도 한상천님처럼, 위 레이턴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다윗의 황혼도 우리네 인간의 모습과 똑같은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위 가별이님이 느낌 "절대자의 외로움"이나 쓴,단님의 "장엄한 외로움" 등 각자가 보고 느끼는 감상이 다름을 듣고 확인하면서 "그림 나눔"의 즐거움이 더해지고, 배가 되고 있습니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느낌이 다르니, 참 재미있지요.... ^^

  4. 초하님 덕분에 늘어가는 지식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평온한 조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림이 참 편안합니다...^^

    • 모노님의 감사함에 제가 더 고맙고 힘이 된답니다. ^&^
      저도 레이턴의 다윗 그림을 보면서 명상을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곤합니다. 마음도 물론 편해지면서...



  어느덧 올 한해의 두번 째 징검다리를 건너며, 중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리 길진 않지만, 지난 시간들도 돌아보게 되고, 올 한 해 동안의 제 모습은 또 어떻게 변할지, 지금의 올 소망들은 얼마나 이룰 수 있을지, 조바심 어린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누구나가 한 번쯤은 자신도 모르게 실수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큰 잘못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네 인생은 한 순간의 아주 작은 어떤 사건에 의하여 그 방향이 변경되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소개할 그림의 주인공인 다윗(David)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다윗 왕에 관한 종교그림과 그의 실수나 헛된 욕망으로 인한 우리아(Uriah) 장군의 운명을 통하여 우리의 삶과 현재도 잠시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빛과 색채, 명암이 부드럽고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림

  이런 내용을 토대로 한, 오늘 우리가 함께 감상할 작품은 앞에서도 몇 번 소개한 적이 있는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의 "다윗과 우리아"란 성화입니다. 아래 그림들을 통하여 "빛의 마술사"라는 평가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의 붓질이 빛으로 빚어 담아낸 신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부드럽게 어우러진 색채와 명암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렘브란트의 약력과 설명, 그리고 그의 그림은 "리태니커사전"과 "렘브란트 미술관(
http://www.rembrandthuis.nl)", "Web Gallery of Art(http://www.wga.hu)",  "ARC(http://www.artrenewal.org)", "가톨릭마당(http://www.pauline.or.kr)", 그리고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과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을 참고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각각의 글들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아래 세 그림의 시대적인 배경을 먼저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이는 다윗이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2대 왕위에 오른 때입니다.

   다윗은 7년 6개월만에 분열되었던 이스라엘을 통일하였으며, 다윗이 통치하는 통합왕국은 날로 융성해져서 왕국의 황금시대를 이룩합니다.수많은 전투를 통하여 영토도 확장하였으며, 선민의 위력을 세계에 떨쳤던 매우 강성한 시기입니다.

  아래 그림의 이야기는 66권의 많은 성경책 가운데 예수가 태어나기 이전(구약)에 쓰여진 "사무엘의 하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착실하게 백성을 다스리던 다윗은 충성스런 부하 장군이었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보는 순간 정욕을 품고, 간음을 저지르게 됩니다. 결국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만 가슴아픈 사연입니다.

  그 관련 내용만 골라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의 내용을 읽어보면 마치 영상을 보는 듯 다윗과 우리아의 심리까지 느낄 수 있을 만큼 세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 다윗과 우리아(David and Uriah), Oil on canvas, 1665,
                                    50 x 46 inches (127 x 117 cm), Hermitage, St Petersburg
         ⓒ 2007 Rembrandt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밧세바의 간음과 우리아의 살인을 계획하였던 다윗 왕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사무엘 하 11 : 1-17)


    작품 세계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렘브란트의 초상화

   렘브란트의 예술에는 인생역정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40년 동안 제작된 자신의 자화상들에는 렘브란트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 후기에 그린 옆의 초상화와 오늘 소개할 세 그림에서도 빛을 빨아들이는 두껍고 무거운 그의 붓질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름진 표정과 다소 무력한 인상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클릭하여 큰 그림으로 감상하시면 더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에 대한 자세한 약력과 작품활동은 아래 연대별 기록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라이덴(Leiden) 시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으나, 양친에 의해 라틴어 학교에서 수학하였고 라이덴 대학에도 입학합니다. 그러나 곧 그만두게 되고 암스테르담에서 라스트만(Pieter Lastman, 네덜란드, 1583~1633)을 만나 그림을 배우게 되면서 영속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 사도바울로 분장한 자화상(Self Portrait as the Apostle St Paul), Oil on canvas, 1661,
                                   35 3/4 x 30 1/4 inches (91 x 77 cm), Rijksmuseum, Amsterdam
  ⓒ 2007 Rembrandt


   당시 이탈리아 양식의 거대한 역사화를 그려 주목받던 라스트만은 이탈리아로부터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 이탈리아, 1573-1610)와 엘스하이머(Adam Elsheimer, 독일, 1578-1610)의 영향을 네덜란드에 도입한 "렘브란트 이전 학파(前派, Pre―Rembrandtists)"의 대표 화가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얻은 소재를 이야기로 담아낸 오늘의 이런 그림들이 그런 라스트만의 영향을 받은 결과입니다.

      원숙한 창작활동에 이어 파산 선고를 받기도 했던 렘브란트

   렘브란트의 창작활동은 두 아내와 관련이 깊습니다. 1934년 첫째 아내 사스키아와 결혼하면서 더 유명해졌으며, 밀려드는 주문으로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집니다.

   그녀가 죽고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 티투스(Tidus)의 성장과, 1645년 경에 맞은 마음씨 착한 둘째 부인 헨드리키에의 내조는 그의 예술을 더욱 원숙하게 만듭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대부분의 작품은 이렇게 164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후의 화려한 생활과 계속되는 가정불화로 경제적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1656년에 파산선고를 받아 살고 있던 저택도, 미술품도 모두 경매에 넘어가고 맙니다.

   그러나 화려하고 대담한 붓질, 풍부한 색채, 그리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빛의 명암과 섬세한 매력은 그가 명성을 누리던 젊은 시절보다 고독과 파산의 연속이었던 말년에 더욱 빛을 발휘하였습니다. 오늘의 이 그림들에서도 그런 특징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던 렘브란트는 1668년인 둘째 부인과 유일한 자녀였던 티투스마저 죽은 그 다음 해에 운면을 달리합니다. 안타깝게도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는 초라한 집에서 그의 나이 62세로 사망합니다.

   지금까지도 그의 위대한 예술성은 입증되고 있으며 시대를 초월한 힘과 영향으로 나타납니다. 종교, 신화, 초상, 풍경, 풍속, 정물 등 다방면에 걸친 그의 수많은 그림들이 지금까지도 전해지며, 약 600점의 회화, 300여 점의 동판화(etching, 에칭) 등 천여 작품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다윗과 우리아, 세부 그림(David and Uriah, detail), Oil on canvas, 1665,
                                                 Hermitage, St. Petersburg
         ⓒ 2007 Rembrandt
 


   이 그림의 주인공인 다윗은, 족보로 보면 아브라함의 14대 후손입니다. 유다지파 이새의 여덟째 아들이자 막내로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준수한 청년, 다윗 안에 스며든 정욕의 진로 

   다윗이란 낱말은 "사랑하는 자"란 뜻입니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양을 지키는 목동으로서 사나운 짐승들을 물리쳤던 매우 용감하고 담대한 청년이었습니다. 또한 성서에 보면, 혈색도 좋았으며 눈이 빼어나고 남성미를 갖춘 아름다운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 용맹함으로 말하면, 물맷돌을 들고 전장에 나아가 블레셋 대장 골리앗을 죽인 장본인으로 더 유명합니다. 이 때 승전함으로써 전쟁 영웅으로 부상하였으며, 그 명성이 날로 높아져 갔습니다.

    그 공로로 인하여 결국 이스라엘의 왕위에까지 올라 40년 동안 그 왕국의 황금시대를 이룩한 위대한 통치자였습니다. 또한 경건한 종교자로서 그가 지은 아름다운 시가 시편에 많이 수록되어 있을 만큼 풍부한 감성과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착실하게 신을 섬기고 백성을 사랑으로 다스리던 다윗도 완전한 인간은 아니었던 가봅니다. 자신의 성실한 부하였던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 여인을 보는 순간, 다윗의 마음은 정욕에 사로잡힙니다.

    그리하여 곧 '간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착수합니다. 그러나 여기 이 한 순간에서 곧바로 돌이키지 못했으며, 그의 죄를 숨기기고자 우리아를 죽음으로 모는 계획과 음로를 세움으로써 또 다른 살인과 범죄를 낳고 맙니다.


         ▲ 다윗과 우리아, 세부그림(David and Uriah, detail), Oil on canvas, 1665,
                                                Hermitage, St. Petersburg
         ⓒ2007 Rembrandt
 


  바로 윗 그림의 주인공인 우리아는 헷 족속의 사람으로 다윗의 충성된 군인이요, 부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아름다운 여인 밧세바의 남편으로 등장합니다.

    한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그 죗 값의 결과 

   그가 전쟁 중인 랍바에 출정한 사이, 다윗이 그 아내를 간통하였으며, 그 죄의 자취를 감추려고 일부러 우리아를 소환합니다. 그림에서 보면 우리아도 매우 준수한 사람이었으며, 윗 글의 묘사로 볼 때, 그 성품이 충성되고 우직한 사람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 앞에 불려온 우리아에게 다윗 왕은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받은 우리아가 돌아서 나오는 모습과 표정, 그 때의 심경을 표현하고 있는 그림이 바로 위 작품입니다.

   음흉하고 우울해 보이며 무언가를 숨기는 듯, 갸우뚱하고 있는 다윗의 표정과는 달리, 우리아의 표정은 무표정한 듯, 오히려 담담하고 평온해 보여 사뭇 대조적입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침묵과 팽팽한 감정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전쟁 중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여 다윗의 명에 불응합니다. 이에 다윗 왕은 우리아 장군을 부득이 전쟁터로 다시 돌려보내게 되며, 대장 요압에게 편지하여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의 제일 위험한 곳에 세워 죽도록 만들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마침내 다윗의 각본대로, 애석하게도 우리아는 전사하고 말았으며, 그의 아내 밧세바는 다윗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잘못과 허물도 없던 충성된 왕의 종이 그 연유도 모른 채, 날벼락 같은 불화를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서 이야기를 고유의 서정과 인간내면의 장엄함으로 묘사 

   이상에서 감상하신 것처럼, 렘브란트는 그의 그림에서 그 나름의 깊은 빛과 그늘을 창조해내고 있습니다. 또한 등장인물의 마음과 감정, 느낌이나 생각 등을 독자가 함께 읽어낼 수 있도록, 인간 내면의 깊이와 넓이까지 담아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에 있어서 색이나 모양이 바로 빛 그 자체입니다. 또한 빛에 의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명암이야말로 그림에 생명을 부여하는 원동력이자, 그를 대표하는 독특한 화법인 것입니다.

   화가요, 판화가였던 렘브란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탈리아, 1452-1519)와 함께 17세기 유럽 회화사에서 최대의 화가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루벤스(Peter Paul Rubens, 벨기에, 1577-1640)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벨기에의 화가, 루벤스는 귀족적인 소재와 함께 그에 걸맞는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렘브란트는 종교적인 소재에 네덜란드의 시적 정서와 생활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 모두에서 종교적인 정감을 느낄 수 있으며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깊은 심리 상태까지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렘브란트 특유의 명암법에서 기인합니다.

   위 그림들을 보면 네 그림 모두 왼쪽 위 하늘에서 사선으로 비쳐 들어오는 빛의 흐름을 중심으로 통일하여 더 밝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리는 작품에서 따뜻한 애정과 시선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특히 그의 종교그림에는 이처럼 독특한 수법이 쓰여졌음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매우 장엄한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물이나 대상에 대해서는 사실적입니다.

   그런데 빛의 효과에 대해서는 최대한 이상적입니다. 더불어 색채나 명암의 대조를 강조함으로써 회화적 효과를 최대한 살리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를 "혼의 화가"나 "명암의 화가"라고도 일컫는 이유입니다.

   그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강렬한 힘과 그의 인간 내면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통찰력,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종교적 권능을 감지하게 하는 탁월한 빛의 처리 기법은, 미술사에 있어서 앞으로도 오래도록 영원한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독자(관객)로 하여금, 그의 그림 앞으로 한 발자국씩 더 다가가게 만들며, 그의 그림에 익숙해지고 친근하게 만듭니다.


      ***** 렘브란트의 연대별 약력과 작품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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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하(初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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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음의 어둠을 잘 표현한 나머지 오래보면 저도 어둠에 빠질 것만 같네요.^^
    게으름으로부터 간음까지...사소한 잘못이 크게 변하는 건 영웅이나 평범한 사람이나
    크게 다르지 않나봅니다. ;)

  2. 늘 느끼지만...
    렘브란트의 초상화는 그 느낌이 정말 강한 것 같아요;

  3. 아홉가지 2008/02/13 19:37

    렘브란트를 보면 베르메르가 생각나요

    • 둘 다 빛이 들어오는 각도가 똑 같아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러잖아도 이 둘의 비교그림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기대해주셔도 좋습니다.

  4. 빛을 참 잘 쓰는 사진가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요새는 좀 바빠서 책을 들여다 본 적이 없지만...
    찬찬히 그림만 봐도 좋은 책들 몇권을 갖고 있습니다..^^

    참 초하님이 그래도 가장 많이 들려주시고 이야기도 주셔서 링크추가 하려고 해요..^^; 괜찮겠죠?

    좋은 한주일 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 모노님, 그런 책들도 소개하고 함께 나누어요~~
      하하~~~ 링크까지 추가해주시면 저야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지요. 뭐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
      덕분에 이렇게 기분 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 그 책 중 하나가 참고하셨던 천년의...입니다...^^;
      저보다 조예가 깊으셔서 뭐 제가 설명하거나 말씀드리는게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 그러시군요. 감사합니다.

  5. 빛으로 명암을 나타내는게 아니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램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화폭에 담긴 녹음기 같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뉴욕의 싸늘한 공기 속에서 처음 램브란트의 그림을 보며 황홀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 여우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렘브란트의 빛은 곧 명암이요, 명암이 곧 빛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그 빛에 인간의 감정과 내면의 깊이를 담고 있어서 섬뜩하단 생각도 종종 하게됩니다.
      직접 원본을 감상하신 게로군요. 부럽습니다. ^(^

  6. 엄청난 자료가 있는 곳이네요. 빛의 마법사 렘브란트, 저는 얕은 지식이라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네요 ^^'

    글 잘 보고 갑니다.

  7. 정말 많은것을 배워갈 수 있는 블로그에요!
    님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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