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광고 모금 캠페인

초하뮤지엄.넷 chohamuseum.net




 
   어제는 6월 22일, 일요일로 "일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였습니다. 오늘은 6월 23일, 월요일이니, 이틀 뒤면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인 한국전쟁 58주년 기념일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에게 "광복"이란 의미는, 100년 전 즈음인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이 붕괴되면서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국권을 빼앗긴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뒤 200만명의 인원이 참가하였던 1919년 3·1운동을 비롯하여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35년간 민족해방을 위한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습니다.

     주권을 빼앗긴 역사는 또 다시 한국 전쟁으로 

   그러던 1941년 12월에 시작된 제 2차 세계대전은, 1943년 들어 연합국의 우세가 확실해졌습니다. 이렇듯 광복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에 패하여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날까지에 대해서 적용되는 반일 민족독립의 사상과 운동, 관념을 포괄하는 의미입니다.

   1945년 8월 6일, 일본의 나가사키(長崎), 히로시마(廣島)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8월 9일 얄타협정에 따라 러시아가 대일 선전포고를 한데 이어, 38선 전역을 점령하였고, 러시아의 남하를 우려한 미국이 38선 분할안을 제기하였습니다. 사흘 뒤인 9월 8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였으며, 마침내 한반도는 자유주의 미국과 사회주의 러시아가 나누어 점령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주권을 빼앗긴 한번의 역사는 5년 뒤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로 다시 드리웁니다. 이는 반 세기가 훌쩍 흐른 지금까지도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과 같은 이념 논쟁이나 총기난사 사건으로 그 관련 가족과 온 국민이 오열하였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 주변의 현실과 잔영으로 따라다닙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비숍(Werner Bischof)의 홈페이지에서 관리되고 있는 그의 초상 사진 ⓒ 2008 Bischof


 
   이러한 현실이 그 어떤 이유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감상할 작품들도 그런 우리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과 현실을 실감나게 담아낸 보도사진가(photo journalist),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 Swiss, 1916-1954)의 전쟁 관련사진 9점입니다. 바로 58년전 오늘, 비숍의 눈을 통해 본 전쟁 관련 사진들을 함께 감상함으로써, 그 참혹했던 한국전쟁의 역사를 되돌아 보고자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숍의 사진에는 자연에서는 담아낼 수 없는 그만의 감성과 애정어런 아름다움이 오롯이 담겨져 있습니다. 특히 전쟁과 관련한 그의 사진에는 인간의 내면을 읽어 표현해주는 독특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래 작가의 사진들을 귀 기울여 감상하고 있으면, 전쟁 당시의 실감나는 상황과 그 현장에서 일어나는 소리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들려오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관련 사진집도 이미 8권이나 출판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의 유명한 작품들에 비하면 작가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의 개인 누리방에 붙여져 있는 설명조차도 남쪽과 북쪽을 바꾸어 달아 놓았거나 지명을 잘못 표기하는 등, 지금도 바르게 관리되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음을 밝혀둡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비숍과 관련한 글을 이미 세 번(아래 비숍 관련글로 링크)이나 실었고, 이 한국전쟁 사진 관련 글이 벌써 네 번째입니다. 그러므로 작가에 대한 자세한 소개나 약력은 그 글들을 더 참조하시고, 오늘은 전쟁과 관련한 그의 저널리즘과 세계적인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며, 사진 감상에 도움이 되도록 정리하였습니다.

     용기있는 사랑으로 철학적인 나눔을 실천했던 비숍

   스위스의 사진가, 비숍은 1916년에 쮜리히(Zürich)에서 태어났습니다. 1932-6년까지 그 곳에서 예술과 기술공부도 했으며, 1942년 광고사진 작업실을 열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쮜리히를 중심으로 한 풍경사진이나 조형미를 강조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황폐와 식민주의의 해체, 냉전이라는 격동의 세계를 맞으면서 예술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습니다. 그러던 비숍은 인간과 제 문제에 대한 열정적인 기록자, 살아 숨쉬는 현장을 전달하는 보도사진가로서의 변신을 꾀합니다.

   실제로 1945년에,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지의 피난민을 찍어 유럽의 전쟁참상을 보도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또한 1948년에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를 여행하며 취재한 작품들이 라이프(LIFE) 잡지에 실리면서 평가에 있어서도 대호평을 받았습니다.

      ▲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촬영한 비숍의 자화상(Self-portrait of Werner BISCHOF
                                   in his studio), SWITZERLAND, Zurich, 1940.  ⓒ 2008 Bischof

    그는 슬픔을 담은 인간의 얼굴에서부터 활력 있는 인간의 정신까지 담아냈던 것입니다. 또한 전쟁과 기아의 상흔에서부터 전통문화의 단순한 진정성에 이르기까지, 비숍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현실을 용기있는 사랑과 철학적인 시선으로 기록해 보도했던 것입니다.

   그는 사진이 우리의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인도의 참상을 보도함으로써 국제적인 무상지원이라는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하였습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서른여덟 해의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사진으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지켜 실천했던 예술가였습니다.

     38세의 이른 나이, 안데스에서 사진에 대한 열정을 거둔 비숍 

   1949년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보도사진가 단체 "매그넘포도(Magnum Photos, 세계대전과 9. 11 사태를 비롯하여 세계의 사건들을 보도하는 사진가들의 모임)"에도 가입하여 활동하였습니다. 1951년 라이프지의 일로 인도에 가서 민중의 기근을 촬영했는데, 이것이 미의회를 움직여 대량의 밀가루를 인도의 기근을 위해 보내게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때부터 그의 시선은 민중의 일상 속으로 철저히 파고 듭니다. 처음 소개했던 노동자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나 오늘 사진들과 같이 전쟁의 잔혹한 실체와 적나라한 현실을 독자들에게 여과없이 보여줌으로써 국제적인 구호활동을 선도하게 됩니다. 1952년에는 한국에 와서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촬영했으며, 이 때 찍은 사진이 오늘 소개하는 바로 아래 작품들입니다.

   아메리카 대륙, 멕시코를 취재하고 칠레를 거쳐 페루를 여행하던 가운데 1954년 5월 16일, 안데스의 한 낭떠러지로 추락하면서 불행하게도 큰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치료 받던 가운데 며칠 후인 5월 24일, 마침내 그의 나이 겨우 38세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사진에 대한 젊은 열정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시각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흑백사진으로 표현된 비숍의 예술적 재능은 정평이 나있는데, 사건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에 와서도 그의 작품들은 "조형적인 바탕 위에 국제적인 감각과 시인적인 감성이 고도로 융합되어 있다"는 극찬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한국전쟁을 취재나온 국제 보도사진 기자들(Kaesong, International Press photographers covering the Korean War) ⓒ 2008 Bischof


  
     기자들의 사실적인 모습과 카메라의 역사를 담고 있는 사진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개성에 취재나와 있던 국제 보도사진 기자들의 모습입니다. 한국전쟁의 실상이 실제로 알려졌던 내용과 짐작하거나 상상했던 것에 비교하면 기자들의 숫자도 상당히 많으며, 모두 한결같이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어 같은 학교 학생들인 것처럼 그 표정도 닮아 보입니다.

   또한 그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주의해 살펴 보면, 불과 50여 년 전의 사진기들인데도 그 크기와 모양이 무슨 무기라도 되는 양, 그 크기가 놀랍도록 크기도 하고 또 작기도 하지만, 무척 이색적이며 그 모양도 참 다채롭습니다. 비록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이처럼 사진기의 기종과 그 변천사도 엿볼 수 있어 재미를 더해주는 작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거제도에 설치된 유엔 재교육 캠프(Island of Koje, U.N. Re-education camp) ⓒ 2008 Bischof



     남북 모두 전쟁의 포로요, 피해자들임을 설명해주는 사진

   한국전쟁에 대한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남북 모두 전쟁 포로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남쪽을 점령하고 있던 유엔(U.N.)이 정치적 적응과정을 위해, 중국과 북쪽 포로들을 재교육하고 있는 거제도 막사 안의 모습입니다.

   예상보다 큰 건물이지만 허술해 보이며 그 안데 빼곡히 들어 안아있는 모습이 숨을 쉬기도 어려워보입니다. 화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뒷 모습의 교육자는 팔동작조차 힘있게 표현되어 있는 반면, 형체만 보이는 수많은 포로들의 고정된 시선과 구부정한 앞 모습이 참 대조적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거제도, 유엔 재교육 캠프에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포로들(island of Koje, U.N. Re-education camp, prisoners waiting for medical treatment) ⓒ 2008 Bischof



     외상이 아닌 마음과 정신에 더 큰 상처를 받은 전쟁 포로들

   역시 중국과 북쪽 포로들을 위한 거제도에 있던 재교육 막사 안의 정경입니다. 북쪽 포로들이 잠자리 용으로 지급된 듯한 얇은 담요를 모두 똑같이 뒤집어 쓴 채, 치료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깊은 주름과 포기한 듯한 시선으로 포로들의 고통을 대변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화면의 앞쪽을 어둡고 무겁게 처리한 안정된 구도로 주인공들의 내면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자(관객)를 직시하고 있는는 포로들의 주름진 표정과 살아있는 눈동자를 통하여 전쟁의 잔인함과 전쟁에 대한 반항(반대의견)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보고있는 독자에게도 그 섬뜩함이 전해져 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거제도, 북한 포로들을 위한 캠프(Island of Koje Do, A camp for North Korean prisoners of war) ⓒ 2008 Bischof



     막사 안의 사람 냄새나는 정경을 정겹게 묘사한 사진

   이 사진 역시 한국전쟁 당시 북한포로들을 가두어 두고 재교육한다는 명목으로 지어놓은 거제도 막사 안 풍경입니다. 담장을 대신하여 쳐진 가시가 돋은 철망이 허술해 보이며, 그 철조망 사이로 모자를 쓴 간부로 보이는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철조망에 널어 놓은 빨래의 실루엣 사이로 보이는 영상이 정겹기도 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신을 가두어둔 그 철조망 위에 옹기종기 널어놓고 따스한 햇볕에 말려 둔 빨래(세탁물)들이 참 정겹고 전쟁 상황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인간적으로 다가옵니다. 휴전은 위도 38도선을 따라 한국을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 분단시켜 놓았지만, 철조망과 그 위에 얹어놓은 빨래 사진을 통하여 비숍은 전쟁이 인간의 감정마저 단절해놓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거제도, 북한 포로들을 위한 캠프(Island of Koje, A camp for North Korean prisoners of war) ⓒ 2008 Bischof



     생동감과 자유로움이 살아있는 전쟁 보도사진

   1950-53년 사이에, 남한을 돕기 위해 연합국이 결성되었으며, 중국이 북한을 도우러 왔었던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북한 쪽 내부 모습입니다. 큰 자유의 여신상 앞, 광장에서 포로들이 사각으로 돌며 춤을 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훈련을 받으며 운동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철조망 안에 있는 포로 수용소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지만, 그 앞에서 가면을 쓴 채 춤을 추게 된 포로들의 모습과 동작이 재미있다기 보다는 애처럽게 다가옵니다. 화면 안의 상황은 운동의 연장이거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보이나 주인공들의 모습이 생동감있고 구성도 자유롭게 묘사되어 서럽도록 아름답게 가슴에 남는 작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상장리 마을 사람(Village of San Jang Ri) ⓒ 2008 Bischof



     극적 구성으로 숨어있는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진

   남한과 북한 사이의 최전선에 위치한 상장리 마을에서 비숍이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어둡고 비좁은 방 구석에 아파서 누워있는 한 남자의 모습과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한 아들의 안타까운 표정만으로도 전쟁의 상처와 고통이 고스란히 실감나게 전해져오는 작품입니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시선을 잡아 끄는 구도입니다. 화면 앞 쪽 아래를 어두운 방으로 배치하였으며, 오른 쪽 위 사선으로 창 같은 작은 문을, 그리고 그 작은 문 안에 왼 쪽 손을 짚고 바라보는 소년을 그 문의 오른쪽으로 몰아 구성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왼 쪽 가운데 윗 부분 밖에서 오른 쪽 사선으로 비춰들어오는 빛을 잘 활용한 작품입니다. 마치 사선으로 떨어지는 빛을 조명으로 연출한 것처럼 밝고 환하게 담아냄으로써 많은 이야기와 희망적인 미래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거제도, 가장 어린 포로(구성원)(Island of Koje, The youngest member) ⓒ 2008 Bischof



     전쟁의 뒷 면과 숨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

   역시 거제도의 북쪽 포로들을 위한 수용소입니다. 앞 왼 쪽으로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다른 인물들은 전체적인 윤곽만으로 마치 배경인 양, 형체만 실루엣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나이 많은 동료들과 똑 같은 모양의 군복을 입은 여섯 내지 일곱 살 가량의 주인공인 소년은 정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경의 포로들과는 대조적으로 자기 몫으로 배급된 제 체격에 비해 제법 많아 보이는 양의 국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을 챙겨 받아 들고 있는 천진난만한 모습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으며, 예기치도 못한 이런 상항에서 뒷 쪽의 수많은 포로들의 뒷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어린이의 앞 모습과 표정은 비교적 맑고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어린이의 순수한 모습을 통하여 비숍은 전쟁 뿐만 아니라, 휴전과 냉전의 뒷 모습과 단면에 대한 단호한 주장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한국 전쟁 당시, 부산 근처의 시내(Town of Pusan during the Korean War) ⓒ 2008 Bischof



     한국전쟁의 고통과 그 현실을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

   1952년에 한국전쟁 당시 비숍이 부산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전쟁 동안 한국의 수도는 부산으로 남하하였습니다. 제한된 세계인 답답한 공간 안에 가둬진 듯, 길거리 양지 바른 구석에 모여있는 고아로 보이는 세 소년의 꼬질꼬질한 모습과 각기 다양한 표정을 몸서리쳐지도록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누추하고 허름해 보이는 차림의 아이들은 추위에 대한 공포와 현실에 대한 고통으로 한결같이 울상인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맨 앞 쪽 아이의 얼굴에 나타난 불확실한 표정을 통하여 그 당시의 상황과 두려움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비숍은 한국전쟁 뿐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아시아의 어린이들도 이런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이전에 비숍이 찍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생겨난 유럽의 고아들과도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그가 전쟁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주요 주제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그 무엇으로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힘주어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거제도 유엔 재교육 캠프(Island of Koje, U.N. Re-education camp) ⓒ 2008 Bischof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이 사진도 마찬가지로, 유엔이 중국과 북한 포로들을 재교육하는 수용소와 그 수용소를 지키며 보초를 서고 있는 막사의 풍경 일부입니다. 그 막사를 배경으로 저녁 햇살이 떨어고 있으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찬거리로 보이는 것들을 묶어 머리에 인 채, 그 곁을 무심히 지나가고 있는 인근 마을 주민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대조적으로 묘사한 영상입니다.

   산새와 3층 높이의 초소를 뒷배경으로 배치한 구도, 전체적인 윤곽과 실루엣, 그 실루엣을 비추는 빛의 처리가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저녁 어스름 집으로 향하는 저고리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흑색으로 어둡게 강조하여 표현되어 무척 푸근하고 따듯하게 느껴집니다.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대조적인 풍경이 서로 현존한다는 사실이 더욱 서럽고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입니다. 전쟁 가운데에서도 가족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모성애를 발휘하는 어머니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어 보면 볼수록 가슴과 기억에 오래오래 남게 되는 작품입니다.

     고통스런 인간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비숍의 작품들

   이렇듯, 비숍은 다양한 보도사진들을 통하여 전쟁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그 내부에 숨겨진 고통의 진실과 전쟁의 참상을 소리높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전쟁은 슬픔과 고통 뿐만 아니라 그 뒤에 감춰진 인간의 희망과 아름다움도 함께 담아내고 있습니다.

   38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여 사진의 역사에 이름을 일찍 올렸으나 앞에서 소개한 여러 작품들에서도 확인하였던 것처럼, "인간의 고통스런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예술가"로,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살아 남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후대들도 그렇게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사망한 이튿날인 1954년 5월 25일에 로버트 카파(Robert Capa, 헝가리, 1913-1954)도 불인전선에서 지뢰를 잘못 밟아 사망하였습니다. 카파가 철저히 대상의 현실성을 냉엄하게 표현했던 반면, 비숍은 종교적 평화주의자처럼 이기고 진 나라에 상관없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실상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가슴으로 사진에 담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의 작품 활동 초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로 표현했으나, 각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그의 눈과 관심을 현실적인 세계로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민중의 생활 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들의 내면적인 기쁨과 슬픔을 몸소 느끼고 묘사했던 것입니다.


   위의 전쟁의 현실과 그 진실을 그대로 전해주는 베르너 비숍의 작품들을 감상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와 광복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보았습니다. 다시는 온 누리에 이렇게 가슴시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이 되살아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디지털 화면의 제한으로 비숍의 더 많은 전쟁사진들을 다 감상할 수 없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세계전쟁 사진을 다음 연재기사로 한번 더 함께 감상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부탁합니다.
   

** 비숍사진 관련 글 **  ★ 여행을 재촉하는, 서정 깊은 풍경사진 - 비숍 사망 54주년 기념
                                  ★ 비교감상, 비숍과 밀레의 전원풍경은 어떻게 닮았을까
                                  ★ 일상, 그 아름다움과 희망을 포착한 비숍의 사진들


정보공개, 사용조건 : 저작관련 표식 없는 펌은 불법이며, 제발 삼가해주세요!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초하(初夏)

트랙백 주소 :: http://chohamuseum.net/trackback/67

  1. Subject: 책으로 되돌아보는 6.25 한국전쟁

    Tracked from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블로그 2008/06/25 17:48  삭제

    '중고교생에게 전화로 6.25를 물어본 경우' 란 글을 보니 청소년의 과반 이상이 6.25의 발발년도를 모르고 있더군요. 이를 두고 사람들은 청소년들에게 6.25에 대한 교육이 시급하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곰곰이 다시 생각해 봅니다. 1950년이라는 6.25 발발년도가 중요한 것일까요? 6.25가 북한의 남침이라는 것이 중요할까요? 이런 사실들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6.25 한국전쟁이 어떻게 발발하게 된 건지? 6.25는 우리나라에..

  2. Subject: 오늘은 6.25입니다.

    Tracked from 청풍명월(靑風明月) 2008/07/02 14:22  삭제

    그런데, 구글, 다음, 네이버, 포탈 어디에도 특별한 표시가 없네요.그냥 우리 모두 우리나라와 시대에 희생된 모든 분들께잠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마무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이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분들이 고이 잠들기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한국 전쟁'....
    '사변'이라는 괴상한 단어로 이념과 이념이 충돌한 분명한 '전쟁'을 묘사하곤 했었죠.
    여전히 6.25 사변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긴 합니다만....
    그림을 보니 참 슬프군요. 특히 자유의 여신상이요.... ㅋ
    음.... 다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꺼내 읽고 싶어집니다.

    • 쌀국수님, 저도 태백산맥 전권을 간직하고 있답니다.
      한국전쟁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읽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

  2. 사진으로 보고나니.. 얼마나 슬픈 전쟁이엇는지.. 알수 잇겟네요.

    • jyudo 님 말씀처럼, 학생들에게 교과서 같은 길잡이로 도움이 될 작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산 증인이 되는 중요한 의미도 있구요.
      작품성에서도 어느 것에서 결코 빠지지도 않구요.

  3. '사진'으로만보면 더할수없이 좋습니다.
    하지만...그 내용을 보면 우리 땅에서 일어난 참혹한 전쟁상황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보면 아..좋다라고 말할 수 없기도 합니다.
    저는 삼국지나 우리 삼국시대를 배경으로한 전쟁소설을 즐겨보는데요, 어릴땐 마냥 재밌게만 봤는데 요즘은 그 전쟁을 수행한 힘없고 죄없는 그 시대의 젊은 아버지들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전쟁터에 끌려가야하는 젊은 아버지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치료를 기다리는 포로들'의 눈빛이 가슴을 짠하게 하네요.

    • 상천님의 댓글에 참 많은 공감을 합니다.
      이런 역사의 진실을 담아두고 후대에 전해준 비숍의 집념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지기도 합니다. 그의 실천과 평화정신이 존경스럽고 감사하구요.
      좋은 감상 적어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 오늘이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날이군요
    전쟁은 참혹한 것입니다.
    저의 오라버니도 6.25 발발 다음날 6월 26일 옹진 전투에서 꽃다운 20세에 사망했습니다.
    어려운 시대에 참상을 생생이 기록에 남긴 사람이 있어 후세 사람이 조금은 느낄까요?

    • 우록님이 여자분이셨군요??
      이렇듯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삼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이 모든 진실의 되새김도 비숍을 통해 가능했으므로, 후세에 적쟎은 영향을 미쳤음은 확실하지요...?? 또 느낄 것이라 확신합니다.

  5. 역시 초하님도 6.25에 맞춰 관련 글을 올리셨군요. 덕분의 비숍의 사진들을 통해 한국전쟁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6.25 한국전쟁에 관한 책을 추천하는 글을 하나 썼는데, 엮고 갑니다.

  6. 저의 집은 광주 산곡마을에 있기 때문에 친척 30여분이 저의집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아침은 밥 점심 저녁은 죽을 쑤어 먹었답니다.
    1.4 후퇴때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남의 집 방한칸을 얻어살았습니다.거기 범일동에서 이북포로수용소가 있어 포로들을 보았습니다.
    포로들은 양식이 싫어 단 밥이 먹고 싶어 비누 과자 쵸코렛을 들고 떡으로 바꿔갔습니다.
    제머리속에도 한국 동란의 사진이 있습니다. 비숍의 사진을 보니6.25 비참함이 연상됩니다.
    전쟁 고아 남편 잃은 젊은 아낙 불행 했던 그 시절

    • 우록님의 글들 모두 구구절절이 현실처럼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오히려 제 글이 그 어려운 기억들을 되살려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고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 정도입니다.
      사실 저는 그 전쟁을 겪지 못하고 말로만, 이런 기록으로만 전해 듣고 알고 경험한 세대여서 현실감이 덜한 것이 사실인 듯 합니다. 이렇게라도 되새김 하는 것이 도리인 듯 하여 참여하고자 노력했구요.
      다시 한번, 그 고통에 늦은 조의를 표하며, 아픈 우리 역사에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또한 지금의 우리네 허술한 역사인식과 미흡한 자기 성찰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 크므로 마음 깊은 때늦은 반성을 해봅니다.
      하지만, 오늘 주말로 가는 금요일은 좋은 날되시길 바랍니다~~

  7. 신이 내린 가장 심한 저주가 전쟁이 아닌가 합니다. 쓰나미, 지진, 태풍은 신이 내린 벌이라 쳐도 신 마저 포기하고 인간이 인간을 죽게 만든 것이 전쟁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인간에게 경고를 하는데도 무지한 우린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푸른 유월에...

    • 나무님의 말씀 모두 전적으로 공감을 합니다.
      자연재해는 전쟁의 고통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전쟁은 더 잔인하며,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재앙이라는 점에서 그 횡포와 가혹함은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이 푸르고 맑고 화창한 유월에 말입니다. ^^
      유월의 마지막 금욜입니다. 좋은 일 가득하시길~~

  8. 종군 사진 기자는 로버트 카퍼외에는 잘 모르고 있었는 데, 베르너 비숍은 카퍼와는 다른 스타일로 전쟁을 비추고 있었군요...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키치너님, 반갑고 감사의 댓글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위 맨 첫 사진에서도 보듯이 한국전쟁에도 상상보다도 상당히 많은 종군기자들이 다녀갔음을 알 수 있지요. 그 사진작품들을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확인할 수 없을 뿐이지요.
      카파의 사진도 사실 소개하고 싶은데, 아직 저작권이 그에게 유효한 상황이라서 허락을 받지 않으면 싣기 어렵습니다. 조금 많이 아쉬운 게 사실입니다. ^^
      앞으로도 종종 놀러오시고, 안부 들으며 뵐 수 있길 기대합니다~~

  9. 트랙백 감사합니다~ 그냥 글만 적었는데...

    사진들을 보니 역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것을 생각합니다...
    그게 어떤 이유든 말이지요...




   누리꾼들 가운데에는 "사진"을 좋아하거나 전공한 독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또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여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일상의 순간을 담아두거나 그 이미지나 기록을 블로그에 활용하는 사례도 종종 보곤 합니다. 

   저도 취미로 시작하여 점차 관심이 많아지면서 특별히 더 선호하는 사진작품들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프랑스, 1908~2004)"과  "로버트 카파(Robert Capa, 헝가리, 1913-1954)",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 스위스, 1916 - 1954)" 등의 작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특히 더 좋아합니다.  

    인간의 깊은 내면을 담은 정감어린 작품사진들

   그 이유는 그들 모두 처절한 삶의 현장 속에 숨겨진 아름답고 고귀한 "인간의 모습과 내면"을 사진이란 매체를 통하여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하고 함께 감상할 작품들도 그런 모습을 담고 있는 비숍의 대표적인 기록, 10점입니다.

   
그의 아래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고달픈 삶 가운데서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과 희망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의 화려한 풍경이 아니라 차분하고 매력적인 정경을 그 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담아낸 다른 작품들도 준비하고 있으므로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비숍의 옆 초상과 약력, 사진작품과 그에 대한 설명은 "사진의 세계역사(A World History of Photography)"란 책과 "비숍의 누리집", 그리고 "매그넘 포토(Magnumphotos)"에서 도움받아 실었고, 번역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직접 찾아가셔서 더 많은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숍은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지의 피난민들과 인도, 심지어 1950년대 우리 대한민국의 부산, 최전선의 상장리 마을 등 같은 세계의 전쟁터를 누비며 생생한 현장과 인간의 깊은 내면을 담아냈으며, 따듯하고 호소력 짙은 사진을 보도한 평화주의자이자 종군기자로도 잘 알려진 사진작가입니다. 1949년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보도사진가 단체 "매그넘포도(Magnum Photos, 세계대전과 9. 11 사태를 비롯하여 세계의 사건들을 보도하는 사진가들의 모임)"에도 가입하여 활동하였습니다.

      ▲ 1951년 인도(INDIA)에서 무스브루거(Bernard MOOSBRUGGER)가 찍은 비숍의 모습
      ⓒ 2008 Werner Bischof


     비숍은 스위스의 쮜리히(Zürich)에서 태어나 1932-1936년까지 그 곳에서 예술과 기술공부도 했으며, 1942년 광고사진 작업실을 열어 활동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1945년에,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지의 피난민을 취재하였고, 유럽의 그 전쟁참상을 보도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1948년에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를 여행하며 취재한 작품들이 "라이프(LIFE)" 잡지에 실리면서 대호평을 받았습니다.

     38세라는 젊은 나이로 사진에 대한 열정을 거두어야 했던 예술가, 비숍

   멕시코를 취재하고 칠레를 거쳐 페루를 여행하던 가운데 1954년 5월 16일, 안데스의 한 낭떠러지로 추락하면서 불행하게도 큰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치료 받던 가운데 며칠 후인 5월 24일, 마침내 그의 나이 겨우 38세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사진에 대한 젊은 열정과 희망, 삶에 대한 따듯하고 아름다운 시각을 닫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흑백사진으로 표현된 비숍의 예술적 재능은 정평이 나 있는데, 사건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력하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조형적인 바탕 위에 국제적인 감각과 시인적인 감정이 고도로 융합되어 있다는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INDIA. 1951, May, Town of Jamshedpur ⓒ 2008 Werner Bischof


   1951년 5월 인도 잠쉐드푸(INDIA, Jamshedpur)시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타타 철제가구와 철강회사에 고용되어 아침에 일하러 가는 세 여인들의 모습과 자태를 담고 있습니다.

  이 공업단지는 1907년에 타타(Jamshedji Nassarwanyi TATA)가 세운 것이며, 해를 거듭하면서 직물과 강철, 전력, 화학, 농기구, 기관차, 그리고 시멘트를 생산하는 거대한 복합단지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타타는 인도에서 기술교육과 과학 연구능력을 보유한 가장 큰 사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부가 설명이 없다하더라도, 물에 비친 거대한 공업단지와 뒷 배경의 모습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곳에서 품어 내고 있는 거대한 연기와 드높은 하늘을 배경삼아 일하러 가는 여인들의 옆모습과 걸음걸이에 활기가 넘쳐납니다.

    발걸음과 그 보폭도 가벼워 보이며 흔드는 팔에도 생기가 넘칩니다. 화면 아래의 넓은 도로에 난 그림자를 이끌고 태양을 마주보며 걸어가는 세 여인의 모습과 뒷배경의 살아움직이는 듯한 공장을 통하여 희망찬 미래를 보여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HUNGARY, 1947, Budapest ⓒ 2008 Werner Bischof


   1947년에 찍은 이 작품은 아래 프랑스 루앙의 실직자들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뒷 배경이 되는 왼 쪽 위의 밝고 넓은 포장도로와는 달리 헝가리 부다페스트(HUNGARY, Budapest)의 한 거리 정경을 어두운 명암으로 담아낸 사진입니다.

   길 가의 포도(포장도로)를 안식처 삼아 졸고 있거나 쉬고 있는 고단한 실직자들의 모습과 기둥에 기대어 서서 내일을 고민하고 있는 노동자의 심지 굳은 일상을 함께 엿볼 수 있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사진기를 응시하고 있는 오른 쪽 맨 앞, 노동자의 눈 빛이 날카로우면서도 인생을 달관한 듯 고요해 보입니다. 고단한 노동 가운데서도 꿈과 목표를 부여잡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FRANCE, 1945, Seine Maritime department, City of Rouen ⓒ 2008 Werner Bischof


   1945년, 프랑스 북부 세느강 연안의 상업도시 루앙(FRANCE, Rouen)에 있는 해상무역국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새벽 미명으로 보이는 이른 시각, 철도역에서 많은 실직자들이 분주하게 일을 찾고 있는 모습입니다.

   안개낀 희뿌연 배경이 노동자들의 불확실한 내일을 연상케 합니다. 이는 지금의 우리 현실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마치 알 수 없는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새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는 열차가 화면 속에서 앞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희망을 안고 달려오는 듯 보이며, 삶 속에 던지는 꿈의 작은 씨앗으로 다가옵니다. 고개돌려 사진기를 응시하고 있는 왼 쪽 아래, 모자쓴 노동자의 눈동자와 눈빛이 뚜렷고 힘이 있어 굳은 의지와 삶에 대한 애착을 던져줍니다.

  그렇기에 실직자들의 표정을 담고 있는 위 두 작품에서 비숍의 인간에 대한 애착과 애정을 느낍니다. 더불어 우리네 다양한 인생이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노동자의 시선을 통한 인간에 대한 애착과 따듯한 시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베어 있어 오래오래 가슴에 젖시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기억에서조차 쉽게 지워지지 않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INDIA, 1952, State of Tamilnadu. Town of Madras ⓒ 2008 Werner Bischof


   1952년 인도 타밀나두 주에 있는 마드라스(INDIA, Tamilnadu, Madras)시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종교 행사가 다 끝난 뒤의 고요한 한 사원 앞에 누워 쉬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오늘의 작품 가운데 가장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정교하면서도 신들의 다양한 모습이 장식된 사원의 예술적인 벽면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선으로 쏟아지는빛으로 인하여 잘 드러나 있습니다.

    빛의 명암과 그림자의 크기에 따라 매우 아름답고 감각적으로 보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박하면서도 고상한 그 벽면의 구조물 밑에는, 얇은 천을 뒤집어 쓰고 맨바닥에 모로 누워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가난해보이기(Beggar)도 하고 수도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사람의 모습은 시체인 양 싸늘하게 느껴집니다.

   매우 정밀한 예술적인 작품으로 보이는 뒷 배경은 화면의 80%를 차지할 만큼 크고 거대하게 배치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단순한 그림자 하나 정도로 보이는 아래 주인공의 크기는 매우 극단적일 만큼 작고 대조적입니다. 우리 인생과 삶의 무게를 설명하는 듯 보이며, 내 삶의 단면을 보는 듯 숙연하게 만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ROMANIA, 1947, Village of Homorod ⓒ 2008 Werner Bischof


   1947년, 루마니아 호모로드(ROMANIA, Homorod)란 마을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찍은 사진입니다. 오고가거나 무심히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과 바쁜 발자국들 사이에서 궁색한 주인공은 혼자만 시간을 정지시켜 놓은 채, 거리 한 가운데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거지의 행색은 누추하고 초췌하며 궁색하고 고달픈 모습입니다. 이 남자 주인공을 사진 중앙에 아주 작게 배치하였습니다. 반면에 화면의 전방 양쪽에 크고 건장한 두 남자의 어깨와 후방 뒷 배경으로 행인의 묵직하고 건강한 다리를 대치시켰습니다.

   이렇게 대조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폐나 음식으로 보이는 작은 무언가를 들고 있는 남자의 초라한 얼굴은 앞 모습을 아주 작게 잡았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건장한 행인들은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아주 크게 배치함으로써 무심한 일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위 두 구걸하는 가난한 이들을 통하여 주변의 고통에 무심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또한 초라하고 고달픈 우리네 인생을 떠올리게도 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위 사람들의 이런 고통스런 모습과 주변의 바쁜 일상, 그리고 사원의 아름다운 벽면장식에서 다양한 인생과 각기 다른 우리네 일상을 엿보는 듯 합니다. 먼 훗 날의 내 인생이나 뒤안길을 생각해보게 하며, 우리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INDIA. 1951, Bengal region. The port of Calcutta ⓒ 2008 Werner Bischof


   1951년 봄 어느 날, 인도 북동부 벵골(INDIA. Bengal)주의 항구 도시, 캘커타(Calcutta)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방금 쏟아놓은 이 곡물들은 기아에 굶주린 지역을 돕기 위해 자루에 담아 나눠서 다시 다른 교외의 시골로 보내며, 그 작업 과정과 정경을 포착해냈습니다.

   1952년 비하(Bihar) 지방은 홍수의 범람이나 가뭄으로 인한 기아 문제로 심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구 소련의 사회주의연방(USSR)이 5만톤의 밀가루를 보낸 반면, 미국은 1억 3천 6백만 톤의 밀가루와 1억 9천만 달러의 융자금을 지원하였습니다.

  화면의 뒷 배경이 되는 위에서 쏟아지는 곡물을 창고 안에서 자루에 나누어 담고 있는데, 빛을 역광으로 처리하여 열 명 정도의 건강한 청년들의 모습을 참 아름답게 보이게 합니다. 실루엣(silhouette)으로 처리된 인체의 곡선을 잘 드러내서 그들의 노동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뚜렷하게 보이진 않아도 일하는 젊은 이들의 표정이 담담하고 담백해 보입니다. 그리고 사선으로 반사되어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이 창고의 큰 문 안을 미약하나마 잔잔하게 비춥니다. 그들의 어두운 현실과 빛의 들어오는 희망을 대조시켜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JAPAN. 1951, Tokyo ⓒ 2008 Werner Bischof


   1951년 일본 도쿄(JAPAN, Tokyo)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한 일간신문사인 빅데일리(big daily)라는 관공서 건물 밖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어려운 한 노동자가 하루를 마감하며 세상 소식을 보고 정리하는 절차의 한 일상으로 보입니다.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이나 작은 키와 짧은 머리, 목에 두른 수건과 남루한 옷차림, 그리고 등에 메고 있는 커다란 바구니로 보아 그의 고달픈 일상을 짐작코도 남습니다.

   한 노동자의 상반신을 앞 쪽 중앙에 큰 실루엣으로 배치하였습니다. 그러나 벽보 신문 앞에 집중하고 서있는 남자를 부드러운 그림자로 어둡게 처리하여 감상하는 독자의 시각을 밝은 뒷 배경으로 분산시켜줍니다. 이로써 관객의 시선을 부담없는 감상을 오래토록 잡아두는 효과를 보고 있으며, 주인공의 일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밝은 벽보를 올려 바라보고 서 있는 주인공을 포함한 뒷 배경의 남자들의 굳은 시선에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열망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벽보를 비추고 있는 밝은 빛의 근원을 중앙에 둠으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다시 찾게 만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HONG-KONG. 1952, Rickshaw man ⓒ 2008 Werner Bischof


   1952년, 비숍이 생을 달리하기 2년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홍콩(HONG-KONG)에서 인력거를 끄는 한 남자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포도의 바닥과 인력거꾼, 그리고 인력거가 번들거리는 빛의 산사로 보아 비오고 난 바로 다음이거나 지금도 비가 내리고 있는 거리 풍경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포도의 질감이 잘 드러나 있으며, 인력거를 끄는 자의 모자와 비옷, 맨손과 맨발, 그리고 인력거의 손잡이나 지붕, 바큇살까지 매우 선명하고 깨끗하게 담아냈습니다.

   그러므로 손님을 태운 인력거를 끌고 있는 남자는 비가래개 용으로 모자 하나만을 쓴 맨발의 간편한 차림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주인공의 앞을 주시하는 눈매와 노동으로 다져진 종아리나 45도 정도 몸을 앞으로 기울여 비에 젖은 도로를 질주하는 힘찬 발걸음에서 생동감 넘치는 그의 삶을 충분히 공감하게 만듭니다.

   특히 물고인 포도 위에 비친 그림자와 그 도로의 뒷 배경은 흘러가는 것처럼 속도감 있게 표현하였으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젖은 인력거꾼의 모습은 마치 정지된 것처럼 순간을 포착하여 담아냈습니다. 그러므로 피사체인 주인공에게 운동성을 부여하였으며, 달리고 있는 힘찬 움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배경은 촛점을 흐리게 하여 시선을 무시하게 한 반면에, 피사체인 인력거꾼은 비옷에 그 빛이 반사되어 밝고 선명하면서도 강렬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이는 배경에 대비하여 주인공을 강조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얻어낸 것입니다.

    이 사진은 인력거꾼의 모습을 통하여 인생의 어떤 역경과 고난도 맞서 이겨가는 인간의 희망찬 삶을 떠올리고 공감하게 만듭니다. 위 작품은 비숍이 사망하기 두 해 전에 찍은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시각적이고도 감각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을 투영해보는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INDOCHINA. 1952, Barau, a Meo (or Hmong) village ⓒ 2008 Werner Bischof


   1952년 인도차이나 바로시의 미오(INDOCHINA, Barau, Meo)란 마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시장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인들의 뒷 모습을 역시 역광으로 포착하여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대각선을 강조한 곧은 철길과 그 옆 좁은 길, 그리고 그 사이의 작은 돌맹이들과 잡초들이 힘겨운 노동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반면에 그 직선을 따라 걸어가는 여인들의 자태와 몸이나 바구니의 실루엣이 만들어내는 그 곡선은 그 배경과는 다르게 부드럽습니다.

   이렇게 배경과 주인공의 모습을 대조시켜 묘사함으로써 피사체인 여인네의 고단한 일상과 힘겨운 삶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작품입니다. 위의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주인공들은 배경이 되는 중앙의 밝은 끝 점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그들의 희망과 삶에 대한 의지를 암시합니다.

    맨 앞 왼 쪽 여인의 땀에 젖은 윗 저고리나 머리에 두른 수건들, 허리를 동여맨 여인들의 편리한 옷차림이나 맨발의 모습에서 그들의 힘겨운 노동과 고달픈 하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의 먹거리나 물건이 담겨 있을 큰 바구니를 이고 있는 뒷모습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과 포근한 온정이 묻어납니다.

   또한 한 손은 머리에 인 바구니를 올려잡고, 또 한 손은 철로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옆 집 아낙네와 함께 맞잡고 걸어가는 모습에서 그녀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몸은 무거울지라도 마음은 가벼운 듯 밝게 웃는 모습이 보입니다. 가족이나 이웃 가정사에 대한 얘기로 수다를 떠는 여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비숍은 이렇게 귀가하는 여인들의 뒷모습을 통하여, 힘겹고 소소하지만 따듯하고 정겨운 우리네 일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의 꼿꼿한 뒷 모습과 활기찬 발걸음에서 밝은 미래와 희망을 보여주며, 다시 꿈을 꾸고 의지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고달픈 노동을 희망과 아름다움으로 승화해내다

  비숍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그의 초기 활동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세계 각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접하게 되면서 그의 관심은 현실적인 세계에 집중하게 됩니다.

   위 오늘의 작품들에서 감상하신 것처럼, 비숍의 시선은 민중의 생활 속을 깊이 파고 들어갑니다. 인간의 기쁨과 슬픔, 애정과 고통의 삶 속에 숨어있는 내면적인 아름다움과 희망을 몸소 느끼고 함께 체험하면서 그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해냈던 것입니다. 지면의 제한으로 여러 좋은 작품들을 더 나누지 못함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주관적인 그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느낌의 사진을 더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는 사진은 우리네 삶의 현장성과 사실성을 주관적인 느낌을 최소화하여 객관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성격과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진솔한 삶과 어떤 한 순간에 내포되어 있는 희망과 아름다움을 함께 담아낼 수 있다는 사진의 장점 때문입니다. 또한 백 마디의 말보다도 더 호소력 짙은 우리네 삶의 애착과 표정을 포착하여 보고 듣고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감상한 비숍의 인간적인 사진들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현재 그의 사진들을 모은 8권의 작품집이 이미 출간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 Phaidon 출판사)"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는 그의 사진집을 볼 수 있습니다. 위 비숍의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다시 또 인간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 관련 목록 :  "베르너 비숍의 세계 전쟁사진 9점"
                            "베르너 비숍, 홈페이지(Zonezero)"


                                                            추천


정보공개, 사용조건 : 저작관련 표식 없는 펌은 불법이며, 제발 삼가해주세요!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초하(初夏)

트랙백 주소 :: http://chohamuseum.net/trackback/7

  1. Subject: ★ 비숍의 한국전쟁 사진을 통하여 되새겨보는 광복절

    Tracked from [初夏 미술관] sophia virus 2008/01/26 18:44  삭제

    비숍의 한국전쟁 사진을 통하여 되새겨보는 광복절 [즐거운 사진읽기 3] 베르너 비숍의 한국전쟁 사진작품 9점 (1) 고지혜(sophiako) 오늘이 8월 13일이니, 2일 뒤면 광복 60주년 기념일입니다. 광복이란 대한제국이 붕괴되면서 1910년 8월 22 일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국권을 빼앗겼으며, 그 뒤로 200만명의 인원이 참가하였던 1919년 3·1운동을 비롯하여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35년간 민족해방을 위한 독립운동..

  2. Subject: Steve McCurry - 컬러 다큐사진의 대가

    Tracked from Journey 2008/01/31 23:46  삭제

    먼저번에는 흑백사진에 능통한 Michael Kenna를 소개해 드렸는데 오늘은 반대로 컬러다큐사진의 대가라고 존경해마지 않는 Steve McCurry를 소개해 드릴까합니다. 뭐 워낙 명성이 높은 작가라 사진이나 여행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설령 이름은 모른다해도 어디서 한번쯤 봤다 싶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대중성이 높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고 본받고 싶은 작가이기도 합니다. 케나가 흑백으로 감동시켰다면 맥커..

  3. Subject: 매그넘(MAGNUM)이 본 KOREA

    Tracked from 사진이야기 - 장대군 2008/02/15 11:40  삭제

    먼저 매그넘(MANGNUM)이 무엇이길래 대한민국(KOREA)을 봤을까? 매그넘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두산동아대백과사전(사이버, 웹 사전)의 글을 옮겨 봅니다. 총 50여 명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고의 자유 보도사진 작가그룹이다. 1947년 프랑스의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헝가리의 카파(Robert Capa), 폴란드의 시무어(David Seymour) 등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창립하였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요즘 조금씩 사진에 대한 흥미가 생기고 있는 시점에서 자극이 되는 글과 사진들이었습니다^^
    한순간에 저런 장면을 포착해서 사진에 담는 작가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Clarence 님, 비숍이 자극이 되었다는 말씀이 참 기뻤습니다. 영혼을 담아 사명으로 찾아다니지 않으면 위 작품들을 포착해내지 못했을 것이며, 이렇게 우리가 감상하지도